2025년 가을 143호 - 모두에게 포기하지 않는 힘을 전하고 싶어요 / 서영우
모두에게 포기하지 않는 힘을 전하고 싶어요
서영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 활동가

안녕하세요 노들센터 서영우라고 합니다.
여름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침이고 저녁이고 상관없이 땀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지네요. 우선,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저는 뇌병변 장애인입니다.
어떤 말을 쓸지, 또 어떻게 모두에게 포기하지 않는 힘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람들은 가을이면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죠?
그런데 아직도 장애인이 차별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참 많은 거 같아요. 당장에 집 앞에만 가도 보이는 모든 건물에는 턱이 있어요. 아직 우리나라는 배리어프리 시설이 충분하게 있지도 않고, 또 지방 쪽으로 조금만 나가도 장애인 편의시설.... 참 없죠. 있어도 장애인 화장실은 반쯤 창고로 쓰이고 위생 문제 또 노후화된 시설들이 장애인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시대이죠.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툭 하면 나가는 투쟁, 백번 천번 십만 번 얘기 하고 투쟁해도 당장에 바뀌는 건 그렇게 많지가 않죠.
그래도 우리가, 센터가 야학이 투쟁해서 조금 조금은 바뀌는 것 같고.... 또 정권이 바뀐 건 다들 아실 거고 바뀐 정권은 우리들의 소리를 조금 더 많이 들어주는 느낌이네요.
모두에게 뜻깊은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지하철 탑니다
지하철 승강장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오늘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었다
그래도 승강장은 아무렇지도 않을 예정이다
군데군데 모여 군락지를 이룬 휠체어들
승강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가 생각보다는 넓다고 생각했다
여러 번 왔다갔다 하며
지하철 승강장에서 경찰들은 일방적인 얘기를 한다
스크린도어가 열린다
지하철 문도 열린다
의자에 앉아 있는 승객들
대다수가 가방을 끌어안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잠시 꿈을 꾸었다면 다음 정류장은
커다랗고 아름답기를 바란다
때리는 사람도 없고
가짜 약사도 없는 아름다운 우리 집처럼
샤워
매일 아침마다 비가 내릴 거 같아.
화장실에 들어가 칫솔 위에 치약을 짜고 이를 닦아 거품을 걷어내며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아 거품이 머리 위에서 태어나 자라고 또 흘러가
몸에 물을 묻히고 바디워시로 만든 거품으로 몸 구석구석을 닦아
난 습기로 뿌예진 거울을 보며 몸을 닦아
습기로 가득 찬 화장실에서 마른수건을 잡고 온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
닦아도 닦아도 몸은 축축하기만 해
습기에 구속 된 채 수건으로 몸을 닦아도 여전히 몸은 축축한 거 같아
마른수건도 습기에 지배당한 듯 젖어 버리고
마른수건이 더 이상 몸을 닦아내지 못하고 난 뿌예진 거울을 보며 한숨만 쉬고 있어
날 구속 시키는 이 습기가 정말 싫어
거리에 있는 만리장성
도로 가장 자리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턱이 있다. 그 턱을 넘어야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찢어진 사진 한 장을 들고 건널목으로 뛰어 든다. 주위 사람들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낮은 높이의 턱. 그 하찮은 높이 일지라도 그 사람에게는 만리장성 같은 높이였다.
턱이 높던 낮던 넘을 때마다 ‘덜컹’이며 턱 하나로 세상에 경계선을 긋는다.
덜컹이는 화물들을 한 쪽으로 치워둔다.
턱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다.
턱은 언제나 피해야하는 장애물이 되었고 피 묻은 현수막은 우리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도 턱은 우리에게 있어선 커다란 벽이었고 만리장성 같이 높게만 보였다.
늘 돌아가는 길에는 하수구가 있다.
하수구에서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깨 옆으로 지나가는 차를 본다.
‘오늘도 잘 살아 남았다’는 말을 가슴으로 씹었다.
이대로 죽기는 싫어 만리장성에 올라 피 묻은 현수막을 깃발처럼 흔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카메라들이 모여 든다.
모두가 아는 것만을 찍는다.
이유 있는 바람이 분다. 깃발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깃발을 조용히 접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