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겨울 121호 - 2019 노들야학 백일장 “백일장이 체질” 수상작 여섯 편 대공개
2019 노들야학 백일장
“백일장이 체질”
★수상작 여섯 편 대공개★
수상작 1_끝사랑 *이영애
수상작 2_일자리 *김희자
수상작 3_비 와도 눈 와도 *이미경
수상작 4_탄진씨에게 *장애경
수상작 5_노들을 권유함 *박송이
수상작 6_투쟁인 듯, 춤인 듯 *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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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1
끝사랑
이영애 ┃불수레반
제가 17살 때 친오빠는 학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오빠가 친구랑 같이 집에 왔습니다. 같이 온 친구가 되게 잘생겼습니다. 키도 크고, 코도 오똑하고, 몸매도 좋고 무엇보다 연예인 주진모를 닮았습니다. 그 오빠가 저를 좋아했고, 저도 좋아했습니다. 매일 올 때마다 안아주고, 과자도 사다주고 재밌게 놀았습니다.
어느 날 헐레벌떡 와서“어디 잠깐 갔다 올게.”하고 나갔습니다.
“오빠 어디가?”
“잠깐 갔다 올게.”
30, 40분이 지나서 돌아왔는데, 저를 번쩍 안았습니다.
“영애야 어디가자. 오빠랑 같이 데이트하자”
“어디가는데?”
“널 위해 준비했어.”
그러자 눈을 감으라고 했습니다.
“왜 눈을 감아야 해?”
“놀래켜 주려고.”
눈을 감았더니 저를 안고 대문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눈 떠봐 영애야.”
밑을 내려다 봤더니 리어카 있었습니다. 그 위에 돗자리와 푹신푹신한 이불이 놓여있었습니다. 또한, 기타와 간식거리도 놓여있었습니다. 햇빛을 막아주려고 우산도 세워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빠가 리어카를 땀 뻘뻘 흘리면서 끌어줬습니다. 오빠의 마음에 너무 고마웠습니다.
“오빠 안 힘들어?”
“너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괜찮아.”
30분 걸려서 한강 뚝섬유원지에 도착했습니다. 큰 나무가 있었는데, 거기에 돗자리랑 이불을 깔고 저를 눕혀놓았습니다. 오빠가 머리맡에 앉더니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무릎위에 제 머리를 올려놓았습니다. 같이 노래 부르고, 먹기도 하고, 오빠가 머리 쓰다듬어 주고... 노래를 들으면서 살며시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지나서야 눈을 떴는데, 제 뒤로 오빠가 저를 꼭 껴안고 팔베개 해주면서 같이 잠들었습니다. 너무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3년 후에 오빠가 집에 계속 안 왔습니다. 친오빠한테 물어보니, 왜 물어보냐고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이야기를 안했습니다. 며칠 후에 친오빠가 양복을 빼입고 나가길래 어디 가냐고 물어보니깐 그냥 얼버무렸습니다. 그때 촉이 왔습니다.
“혹시 그 오빠 결혼해?”
“맞아...”
“왜 말 안 해줬어?”
“너가 상처받을까봐...”
“나도 데려가줘!”
“안 돼.”
“왜 안 돼? 전철로 데려다주면 되잖아!”
그 뒤로 대성통곡하고 몇날며칠을 울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물도 못 넘겼습니다. 그렇게 3년 넘게 음식을 잘 못 넘겼습니다. 화가 많이 났습니다. 친오빠한테 결혼 이유를 물어보니깐 부모님이 반대해서 집안에서 정해준 아가씨랑 결혼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저희 아버지가 3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그 오빠를 만났습니다. 반가워서 인사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왜 이야기 안했어?”
“상처받을까봐...”
“그래도 이야기 해줘야지. 내가 오빠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
“나도 널 사랑했어. 그런데 부모님 반대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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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2
일자리
김희자 ┃청솔1반
청소하는 일 하고 싶어요
청소하는 것 좋아해요
물건 나르기 좋아해요
집에 물건 나르는 것 좋아요
손님한테 커피 주는 것 좋아요
커피 주는 것 시험보기도 좋아요
좋아요. 행복해요
일하고 돈 받고 싶어요
하루 일하면 3만원 받고 싶어요
머리끈, 머리핀, 시계 사고 싶어요
좋아요
강미애 선생님한테도 선물 사주고 싶어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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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3
비 와도 눈 와도
이미경 ┃한소리반
노들, 비 와도 눈 와도
학교에 간다.
친구들도 하루종일 있고
명학이 할아버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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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4
탄진씨에게
장애경 ┃청솔2반
요새 우리가 좀 다퉜죠. 탄진씨는 나에게 기억을 잘 못한다고 했어요. “그런 것도 기억 못하냐고....”그래요. 아침에 일어나 게임하면서 오늘 뭐 해야겠다 뭐 해야겠다 해 놓고는 막상 움직일 때면 깜빡 잊어버릴 때 많아요. 미안해요. 나도 잘 기억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그런데 할 말이 있어요. 나는 요즘 그래요. 나는 우리가 혼자 있는 시간들도 좀 있으면 좋겠어요. 저녁 8시 반 이 후로 활동보조가 없으면 항상 같이 있게 되죠. 그러면 낮에는 서로의 활동보조인이 있으니 따로 시간을 가질 때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활동보조인하고 마트를 간다든지, 공원을 간다든지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해요. 그리고 각자 활동보조인이 있으니 꼭 탄진씨 가는 모임에 나를 데리고 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보기에 내 활동보조인하고 나는 둘이 나가서도 잘 노는데 탄진씨는 그렇게 못하는 것 같아요. 남자 둘이서도 잘 놀아봤으면 좋겠어요. 또 때로는 집에서 청소도 하고 반찬도 하고, 나한테는 그런 시간도 필요해요. 그러니까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가고 싶지 않을 때도 있어요. 꼭 자기와 함께 있어야 하는 약속 기억 못 했다고 너무 구박하지 말아요. 저한테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수업시간에 배운 건데 ‘니체’라는 사람은 하고 싶은 것, 자기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래요. 나는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뜨개질해보기, 커피 집에서 활동 보조인하고 수다 떠는 것, 큰 글씨로 된 책 읽고 글도 써 보고 싶어요. 이런 것들 해보고 싶어요.
시설에서 나와서, 결혼도 하고, 같이 시위 나가고, 집 문제도 해결했죠. 잘 살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같이 시위 나가고 모임들에 같이 나가는 것 좋아요. 다만 서로에게 떨어져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해 나가는 그런 연습도 이제는 해 봤으면 좋겠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것도 좋아해요. 얼마 전에 나는 멘티였던 지적장애가 있던 친구와 꽃구경 갔던 것도 좋았어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남은 동안 아프지 말고 몸 건강하게 이제는 독립적인 생활도 가져보며 지내봅시다. 탄진씨, 앞으로 들은 이야기 잊어 먹지 않도록 하겠어요. 그런데 하고 싶지 않은 건 안 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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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5
노들을 권유함
박송이 ┃교사
자 눈을 감아봐
넌 지금 네가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있어. 편한 신발을 신은 두발은 너의
몸을 바닥으로부터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지
시원한 바람에 날리는 앞머리가 이마를 간지럽히고 하늘도 푸르게 맑아. 따
뜻한 햇볕은 적당해.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딱 가을 날씨야
눈앞에는 흐뭇하게 따뜻한 빛깔을 띠는 노란 한 무리가 있어. 혹시 우리가
보이니?
우리 중 누군가는 키가 작고, 더러는 느리게 크기도 해. 바람 때문에 앞뒤로
몸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바람을 타고 춤추기도 하지. 몸이 꺾이면
친구들이 받쳐줄 거야
여기선 아무도 우리를 쭉정이라고 부르지 않아
가라지는 더욱 아니지
함께라서 우리는 노란 물결이 됐어
함께 있으니 우리는 부끄럽지 않았고
함께 있을 때는 모르는 것도 용감해지지
여기선 누구도 세상에서 지워진 것처럼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우리 너무 오랫동안 추웠잖아
너도 봤지? 별거 없는 거
같이 놀자. 우리랑 놀 때 제일 재미있지는 않아도 심심하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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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6
투쟁인 듯, 춤인 듯
천성호 ┃교사
거리의 투쟁, 우리는 하루를 거리에서 보낸다.
우리의 많은 공부는“현장”의“수업”이고,
현장은 거리이다. 또는“농성장”이다.
농성장에서“집회”는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낮수업 학생들은“거리의 투쟁”을 알 듯, 말 듯
이해 한 듯, 말 듯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보는 것처럼, 때론 보지 않는 것처럼
눈들은, 몸들은 흔들리면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선은 춤을 추며, 원주는 노래를 부르며
장기는 노래와 춤을 함께, 수진은 무언가를 가리키며,
연옥은 궁금함으로, 소민은 귀신을 보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배가 고프다고..
승미는 자기의 다리를 만지며, 희숙은 술래잡기를 하듯,
현상은 중얼거리며, 주희는“싫어”를 외치며,
원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승연은 끝없는 질문으로
재형은 자신의 박수 소리에 들떠, 경남을 몸으로 춤추며
임실은 좀 더 넓어지는 보폭으로
두려움을 넘어서, 아니 조금은 낯선 두려움으로
용기를 내어, 아니 조금은 힘겨운 용기를 내어
투쟁은 같아도, 저마다 방식은 다르다.
저마다 몸짓은 다르다.
그래, 우리는
투쟁인 듯, 춤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