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28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노들아 안녕]

사람이 사람에게

 

 

 

가을

 

 

가을아 왜 전화를 안 받아. 노들바람 원고 좀 써줘. 써줄 수 있지?’

네 그럼요.’

 

노들야학의 큰형님. 명학형님의 부탁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소위 바쁘다는 핑계로 몇 가지 이유를 찾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의 부탁이 고맙고 기분 좋았기 때문이다. 매학기 노들을 찾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할당된 원고. 언제나 투쟁현장에서 특유의 묵직함을 보여주는 사람의 부탁. ‘노들아 안녕을 쓰며, 노들야학에서의 지난 10개월을 되돌아본다.

 

 

안녕하세요. 가을이라고 합니다.

 

20192. 나는 낮수업에 처음 참여하였다. 일주일에 두 번씩 노래방과 체육수업을 할 것이고, 개구쟁이 학생도 있다는 낮수업. ‘내 나이가 어때서는 역시나 인기곡이었고, 줄다리기의 줄은 팽팽하지 않았으며, 개구쟁이 학생의 손은 너무 작아 쉬이 잡을 수 없었다.

 

우리 같이 이거 해볼까요?’

‘... ...’

 

저랑 화장실 가실래요?’

싫어

 

손잡고 갈까요?’

‘... ...’

 

어색한 공기, 서먹한 인사, 아직은 손을 잡고 싶지 않은, 사람 대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기 위한 첫 단계, 나는 그 서투름이 좋았다. 당시 내가 교사회의에서 낮수업에 대해 항상 하던 말은 친해지기 위한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괜찮아요. 저도 천천히 친해지는 걸 좋아해요.’

 

 

가을 선생도 오나?

 

매주 한 번씩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고, 매주 한 번씩 으쌰으쌰 줄다리기를 하고, 눈치를 보며 손을 잡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먹을 것을 챙겨주고,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수업을 하고 집에 돌아갈 때쯤..

 

, 이거 가을 선생이야

 

노들아안녕_가을_장기님그림.jpg

 

한 학기를 끝낸 교사가 받을 수 있는 선물이었다. 분명 사무실 벽에도 붙어 있던 그림, 이미 누군가에게도 주었을 그림. 그러나 종이 한 장이 주는 뭉클함은 야학이었기에 가능했다.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봐요.

 

다시 시작된 가을학기. 여전히 내 나이가 어때서는 인기곡이었고, 줄다리기의 줄은 팽팽해졌으며, 개구쟁이 학생은 하나 둘 늘어났다. 조심스레 무릎베개를 하고. 먼저 화장실을 가자고 손을 내밀고, 수첩에 이름을 써달라며 펜을 주고, 웃음이 많아지고, 눈물도 많아지고.. 처음 타는 한강유람선, 그 설레고 신났던 날. 헤어지며 한 학생이 얘기했다.

 

월요일에 봐요.’

 

올해 들은 얘기 중에 가장 따듯했던 말.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한 모두에게 주는 선물 같은 말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시간. 즐겁고, 슬프고, 속상하고, 즐겁고를 한 사이클처럼 묵묵히 지켜내야 하는 시간. 지난 10개월은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즐겁고, 슬프고, 속상하고, 즐겁고를 반복해야 하는, 그러나 서로에 대한 존중은 잊지 말아야 하는, 노들야학에서의 내년을 기대해 본다.

 

. 월요일에 봐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620 2019년 겨울 121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노들이여 끝까지 살아남으라 / 고병권 [고병권의 비마이너] 노들이여 끝까지 살아남으라        고병권 /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 file
619 2019년 겨울 121호 - 곁불 쬐러 오시라 / 최경미 곁불 쬐러 오시라    최경미 | 사이다라고 불린다. 다시 정처를 찾기 위해 암중모색 중이다.       9년 동안 일했던 대안학교를 그만두었다. 외부 사람이 되었다.... file
618 2019년 겨울 121호 - 퍼레이드진진진 / 다이애나랩 퍼레이드진진진   다이애나랩       안녕하세요! 저희는 다이애나랩입니다. 다이애나랩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신다구요? 저희는 목요일 낮수업 <진zine수업>을... file
617 2019년 겨울 121호 - 2019 동북아 이해관계자 SDGs 포럼 참가 후기 / 종헌 2019 동북아 이해관계자 SDGs 포럼 참가 후기 숨겨진 도시들 1 : 블라디보스톡     종헌 / 잘 살려고 했는데 잘 못 살아왔습니다. 아래 글은 <보이지 않는 도시들... file
616 2019년 겨울 121호 - 그래서 우리는...... / 장선정 그래서 우리는......   장선정 | 사회적기업 노란들판     기로에 서 있어요, 노란들판이.   2015년, 10주년을 지나면서 버는 돈과 쓰는 돈이 비슷한 정도가 되었...
615 2019년 겨울 121호 - [형님 한 말씀] 후원자님께 드립니다. [형님 한 말씀] 후원자님께 드립니다.   명학 / 노들야학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2019년 한 해도 이젠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엊그제 ... file
614 2019년 겨울 121호 - 이 사람들 정말 문학이 체질이다! ‘백일장이 체질’ 심사 소감 / 박정수 이 사람들 정말 문학이 체질이다! ‘백일장이 체질’ 심사 소감         박정수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이라는 멋진 직함을 갖고 있지만 연구는 안 한다. 가끔씩... file
613 2019년 겨울 121호 - 2019 노들야학 백일장 “백일장이 체질” 수상작 여섯 편 대공개 2019 노들야학 백일장 “백일장이 체질”       ★수상작 여섯 편 대공개★     수상작 1_끝사랑 *이영애   수상작 2_일자리 *김희자   수상작 3_비 와도 눈 와도 *이... file
612 2019년 겨울 121호 - [교단일기] 바야흐로 대세는 BTS가 아니라 NTS다! / 야마가타 트윅스터 [교단일기] 바야흐로 대세는 BTS가 아니라 NTS다! 노들테크노전사들과 함께한 일년을 돌아보며     야마가타 트윅스터 | 자립음악가 한받의 테크노투쟁음악 분신... file
611 2019년 겨울 121호 - 전국 피플퍼스트 참가기 / 박송이 전국 피플퍼스트 참가기     박송이 | 노들야학 교사. 언론사에서 뉴미디어를 담당합니다. 아날로그적 삶을 지향해요. 노들과 함께 울고 웃고 싶습니다. 피쓰-   ... file
610 2019년 겨울 121호 - 처음 가본 노들야학 모꼬지가 좋았습니다 / 김상현 처음 가본 노들야학 모꼬지가 좋았습니다     김상현 | 깊은 생각 없이 노들 야학에 한 번 왔다가 올 때마다 충격을 받으며 점점 빠져들고 있는 신입 교사입니다.... file
» 2019년 겨울 121호 - [노들아 안녕] 사람이 사람에게 / 가을 [노들아 안녕] 사람이 사람에게       가을     ‘가을아 왜 전화를 안 받아. 노들바람 원고 좀 써줘. 써줄 수 있지?’ ‘네 그럼요.’   노들야학의 큰형님. 명학형... file
608 2019년 겨울 121호 - [노들아 안녕] 탈시설하고, 노들을 만나서 너무나 기뻐요 / 최원진 [노들아 안녕] 탈시설하고, 노들을 만나서 너무나 기뻐요   최원진       안녕하세요. 저는 최원진입니다. 20년 가까이 인강원이라는 거주시설에서 생활을 하다가... file
607 2019년 겨울 121호 - [노들아 안녕] 노들에서 발버둥치는 중 / 박상희 [노들아 안녕] 노들에서 발버둥치는 중     박상희     안녕하세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지원팀 박상희입니다. 2019년 2월 겨울의 끝자락 노들을 만나, ... file
606 2019년 겨울 121호 - [노들아 안녕] 저는 들다방 바리스타 윤준한입니다 / 윤준한 [노들아 안녕] 저는 들다방 바리스타 윤준한입니다   윤준한       자기소개서   안녕하세요? 저는 들다방 바리스타 윤준한입니다. 제 나이는 24살입니다. 들다방... file
605 2019년 겨울 121호 -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매일 새롭게, 함께 보내는 8시간 / 임해정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매일 새롭게, 함께 보내는 8시간     임해정 | 연옥 수진 활동지원인       집에만 콕 박혀있던 저에게, 친구가 세상에 한 발짝만 나오... file
604 2019년 겨울 121호 - 전동휠체어 처방전을 받기 위한 질문! 100 빼기 7은? / 김상희 전동휠체어 처방전을 받기 위한 질문! 100 빼기 7은?       김상희 | 노들센터 김상. 얼마 전에 읽었던 소설에 나온 문장이 너무 멋져서 옮겨 봅니다. “혼자라는 ... file
603 2019년 겨울 121호 - [뽀글뽀글 활보상담소] ‘장애인활동지원제도 개선 모색 토론회’를 다녀와서 / 서기현 [뽀글뽀글 활보상담소] ‘장애인활동지원제도 개선 모색 토론회’를 다녀와서         서기현 | 7년동안 집안에서 거지꼴로 살다 IMF때 반강제 자립(자립생활 아님 ...
602 2019년 겨울 121호 - 열사와 지속가능한 운동 / 박상빈 열사와 지속가능한 운동     박상빈 | 시민사회단체 근처에서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노들장애인야학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평생 사회운동을 할 수...
601 2019년 겨울 121호 - [노들 책꽂이] <장애학의 도전>과 함께 장애학에 도전해 보자! / 허신행 [노들 책꽂이] &lt;장애학의 도전&gt;과 함께 장애학에 도전해 보자!       허신행 |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4년간 광야를 떠돌다 노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12월부터 다시...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54 Next
/ 54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