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26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홍은전 | 노들야학 휴직교사입니다.

노들야학 스무해 이야기 <노란들판의 꿈>을 썼고요,

그 책을 쓴 덕분에 이러저러한 인권 기록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산재 노동자, <반올림> 황상기 님 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있어요.

덜 바쁜 날엔 야학에 복직할 수 있을 것 같고 좀 바쁜 날엔 복직하면 망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좀 바쁜 날들의 연속이네요.

 

 

홍은전.jpg

 

3, 기정(가명)의 어머니가 쓰러졌다. 85살의 어머니는 병원에 실려 갔다가 그길로 돌아오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마흔에 낳은 딸이 마흔다섯이 될 때까지 어머니는 단 하루도 이날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 이별을 하루라도 더 지연시키는 일. 버티고 버티던 어머니는 별안간 사라졌다. 덩그러니 혼자 남은 기정은 중증 발달장애인이었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어렵고, 혼자서는 밥을 먹고 씻고 화장실을 가는 일이 불가능했다. 기정이 먼 친척의 부축을 받으며 노들장애인야학을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그들은 가족이 없는 중증 발달장애인이 시설에 가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방법을 몰랐으므로 방법을 찾아보자며 노들은 기정의 상황을 서울시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접수시켰다. 2015년 시행된 발달장애인법에 의해 센터는 개인별 지원계획이란 것을 수립해야 했다. 5, 기정이 사는 광희동, 중구, 서울시의 장애인복지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야학 교사가 말했다. “그 회의가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그들이 가져온 개인별 지원계획이란 다름 아닌 시설 입소였다. 문제는 서울시가 탈시설 정책의 일환으로 2016년부터 장애인시설의 신규 입소를 금지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그들은 정신병원이나 비서울지역 장애인시설을 알아보는 중이라며 자신들의 노력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절망적이었던 것은 순진하고 무례한 공무원들의 태도였다. 기정에겐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국가 예산으로는 지원할 수 없으니 사비로 쓰도록 하라며, 친절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금액을 알려주더라는 것이었다. 그게 얼마냐고 내가 묻자 야학 교사가 대답했다. “한달에 500만원이 넘죠.” 나는 새삼 놀랐다. 그것은 늙은 어머니가 홀로 감당해온 노동의 무게이자 국가가 가족에게 떠맡긴 복지의 무게였다. 그 책임자들은 미안해하기는커녕 가족의 고통을 깎아내리며 말했다. “어머니가 간혹 때렸다고 하던데, 맞고 사는 것보단 시설에 들어가는 게 더 낫죠.”

 

그사이 기정은 천덕꾸러기처럼 이 보호시설에서 저 보호시설로 옮겨졌다. 낯선 환경에 던져진 기정은 식사를 거부했고 잠을 자지 않았고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를 찾았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계속 강제로 먹어야 했다. 5월 말, 야학 교사가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기정은 식물인간처럼 무력했다. 음식을 삼키지도 못했고 엉덩이엔 욕창까지 생겨 있었다. 그대로 두었다간 죽거나 정신병원에 가게 될지 몰랐다.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어요.” 야학 교사가 말했다. ‘방법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 석달이 걸렸다. 그 말은 새삼스럽게 뼈아팠다. 방법이 있었다면 어떤 부모가 자식을 시설에 보냈을까. 방법이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어떤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기를 기도했을까.

 

6, 방법이 없었으므로 노들은 기정의 손을 잡았다. 함께 살아보기로, 함께 싸워보기로, 그 불확실한 미래에 함께 휩쓸려보기로 한 것이다. 기정은 석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딸을 위해 만들어둔 누룽지와 매실액, 온갖 약재가 가득한 집에서 기정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노들은 대책위를 꾸렸다. 그리고 24시간 활동지원 계획을 수립했다. 여성 활동가 스무명이 조를 짜 기정의 낮과 밤을 함께 채웠다. 그리고 구청과 서울시에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를 요구하며 싸웠고 드디어 쟁취했다. 7, 기정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2009, 8명의 신체장애인이 시설을 뛰쳐나와 탈시설 권리를 요구하며 싸운 뒤 10년이 흘렀다. 그들이 온몸을 던져서 만든 길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었다. 2019년의 나는 2009년의 내가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에서 살아간다. 2019년의 최전선엔 기정이 있다. 처음 기정이 친척의 부축을 받고 찾아왔다던 그날처럼 나는 노들의 활동가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기정은 어떻게 살아야 돼요?” 폭풍을 함께 견뎌낸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말했다. “~ 기정 언니는 일단 밥을 먹어야 해요.” 기정이 어서 건강을 회복하기를, 그리고 노들과 함께 이 사회의 수많은 기정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기를 응원한다.

 

*이 글은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600 2019년 겨울 121호 - <장애학의 도전> 저자에게 보내는 편지 / 김성희 &lt;장애학의 도전&gt; 저자에게 보내는 편지 이 책이 꼭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힐 수 있기를       김도현 님, 안녕하세요. 저는 평택에서 자폐증이 있는 아들을 키우고 ...
599 2019년 겨울 121호 - [노들은 사랑을 싣고] 야학에 파묻혀 지낸 20대 청춘, 이후 _박여송 인터뷰 / 명학 [노들은 사랑을 싣고] 야학에 파묻혀 지낸 20대 청춘, 이후 인터뷰_야학 휴직교사 박여송 님     명학 | 노들야학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명학 : 안녕하... file
598 2019년 겨울 121호 - [동네 한 바퀴] 투쟁 현장 동지들 밥 챙기는 ‘십시일반 밥묵차’ / 조재범 [동네 한 바퀴] 투쟁 현장 동지들 밥 챙기는 ‘십시일반 밥묵차’ 밥묵차 대표 유희 님 인터뷰   조재범 | 안녕하세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에서 자립생활지원팀장... file
597 2019년 겨울 121호 -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현장에서 자주 뵈었어요! 록밴드 ‘허클베리핀’ / 명희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현장에서 자주 뵈었어요! 록밴드 ‘허클베리핀’   [#노들바람_고마운 후원인] 허클베리 핀 인터뷰(12.16) 이기용(기타, 코러스), ... file
596 2019년 겨울 121호 - 고마운 후원인들   2019년 12월   노들과 함께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CMS후원인   (주)머스트자산운용 강경희 강남훈 강명 강미자 강미진 강미희 강병완 ...
595 2019년 가을 120호 - 노들바람을 여는 창 / 김유미 노들바람을 여는 창 김유미 | &lt;노들바람&gt; 편집인 석암재단이 운영하는 베데스다요양원에 살던 이들이 시설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시설 권력에 문제 제기하는 ... file
594 2019년 가을 120호 -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 장선정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장선정 | 사회적기업 노란들판     당신이 잘 계시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lt;라틴...
593 2019년 가을 120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 고병권 [고병권의 비마이너]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고병권 |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으... file
592 2019년 가을 120호 - [장판 핫이슈] 장애등급제 폐지가 “가짜”라던데 진짜인가요? / 노들 편집위원회 [장판 핫이슈] 장애등급제 폐지가 “가짜”라던데 진짜인가요? &lt;여러분의 궁금증을 팩트체크 해보았습니다.&gt;     노들 편집위원회         축하해!!             갑... file
591 2019년 가을 120호 - 석암투쟁 10년 기억 기록 석암비대위, 노들, 발바닥 멤버들의 이야기 / 노들 편집위원회 석암투쟁 10년 기억 기록 석암비대위, 노들, 발바닥 멤버들의 이야기   노들 편집위원회           ‘2009 임소연’ 임소연에게 이야기를 청하자, 자신이 2009년에 ... file
590 2019년 가을 120호 - [노들은 사랑을 싣고] 석암투쟁 10년 그리고, 기옥과 용남의이야기 / 명희 [노들은 사랑을 싣고] 석암투쟁 10년 그리고, 기옥과 용남의이야기     명희 | 애쓰며 삽니다.      8/12(월) 기옥과 용남네 집에서 명희가 만났습니다. 인터뷰의... file
589 2019년 가을 120호 -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 故 황정용을 보내며 / 노들 편집위원회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 故 황정용을 보내며     노들 편집위원회     석암투쟁 1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마치고, 7월 13일 석암비대위 황정용 님이 유명을 달리했습... file
» 2019년 가을 120호 -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 홍은전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홍은전 | 노들야학 휴직교사입니다. 노들야학 스무해 이야기 &lt;노란들판의 꿈&gt;을 썼고요, 그 책을 쓴 덕분에 이러저러한 인권 기록... file
587 2019년 가을 120호 - 새로운 도전이었던, 어느 발달장애인 자립 지원에 대하여 / 박미주 새로운 도전이었던, 어느 발달장애인 자립 지원에 대하여   박미주     이제는 나에게 너무 익숙한 이름이 돼버린 언니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5월, 지금으로부... file
586 2019년 가을 120호 - [노들아 안녕] 목요일이 기다려져요 / 박경인 [노들아 안녕] 목요일이 기다려져요   박경인 | 노들야학 학생입니다.     저는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있는 26살 박경인입니다.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에게 버... file
585 2019년 가을 120호 - [노들아 안녕] 노들과 상빈의 만남 / 박상빈 [노들아 안녕] 노들과 상빈의 만남   박상빈 | 사회적 기준에 따른 삶을 살다가 가치관이 변해 대안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현재 노들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하면... file
584 2019년 가을 120호 - [노들아 안녕] 산재운동에서 장판으로! / 박영일 [노들아 안녕] 산재운동에서 장판으로!     박영일       나는 1998년 4월 17일 오전 9시 57분 인천 남동공단 내에 있는 한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250T 프레스라... file
583 2019년 가을 120호 - [노들아 안녕] 노란 : 들판 / 한예인 [노들아 안녕] 노란 : 들판   한예인 | 이것저것 다 하느라 바쁜 와중에 노란들판 입사해서 더 바빠진 무지개 예술맨(현직 디자이너, 5개월 차).       노란색이 ... file
582 2019년 가을 120호 -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활보로 자립하고 공감하다 / 정지원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활보로 자립하고 공감하다   정지원     나는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할 시간을 확보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 file
581 2019년 가을 120호 - [교단일기] '선'과 '속도' / 충근 [교단일기] ‘선’과 ‘속도’     충근 | 디자인하는 것을 좋아하는 디자이너. 사회 속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이를 시각...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 54 Next
/ 54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