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119호 -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투쟁,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향해 / 김윤영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투쟁,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향해
송파 세모녀 5주기를 맞아
김윤영
빈곤이 아니라 빈민을 철폐하는 세상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며 가난한 이들의 연대가 바꾸는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10년 전 사고로 일자리를 잃은 뒤 기초생활 수급신청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금융정보동의서가 필요하다고 해서 신청을 포기했습니다.
저는 지금은 수급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보니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신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사이 노숙도 하고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만약 10년 전에 수급자가 되었다면 이렇게 몸도 나빠지지 않고 일자리도 얻고 부모님도 뵐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픕니다.”
- 송파 세모녀 추모제 참가자 박00
지난 2월 28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송파 세모녀 5주기 추모제에서 홈리스야학 학생 박00님은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을 받지 못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 했다. 가난으로 부모님과 왕래하지 않고 지냈던 그는 수급신청 때문에 오랜만에 연락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급신청을 포기하고 노숙을 전전하던 어느 날, 가족관계 증명서에 홀로 남은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이제 부모님께 말씀 드리지 않고 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부모님을 뵐 수 없었다.
송파 세모녀가 “죄송합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 라는 편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지 5년이 흘렀다. 전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도, 문재인 대통령과 많은 정치인들이 ‘다시는 송파 세모녀와 같은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지만 올 1월에도 서울 망우동에서 가난한 모녀의 주검이 발견되었다. 세상에 아무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살던 가난한 이들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야 비로소 발견된다. 생활고로 인한 죽음, 고독사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송파 세모녀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한 우리의 투쟁
2014년 2월 송파 세모녀의 죽음 이후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은 ‘분홍 종이배 접기 운동’을 시작했다. 빈곤과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의 보트를 띄우는 ‘분홍종이배’를 만들고자 하는 소망이었다. 닫힌 문 안에서 각자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세상을 바꿔보자는 호소였다. 송파 세모녀의 죽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우리의 실천은 여전히 또 다른 송파 세모녀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투쟁이다.
송파 세모녀 5주기 추모제를 진행한 광화문 광장에서는 3월 1일,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3·1운동 기념식장에는 ‘함께 만든 백년, 함께 만드는 미래’ 라는 거대한 구호가 나부끼고 있었다. 대한 독립은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부랑인과 장애인을 시설에 가둔 100년,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해방은 없었던 지난 100년이었다. 청와대로 행진하던 우리의 발걸음은 3·1절 대회장 앞에서 멈췄다. 우리 역시 100년을 함께 살아왔으되 한 번도 주인인 적 없었노라고 이야기했다.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위해
지난 4월 16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2020년 발표될 2차 기초생활보장제도 종합계획안에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를 담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17년 광화문농성장에서 이뤄진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과 장관의 면담에서도 밝혔던 내용이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다가 다시 한 번 약속 이행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광화문농성에 돌입했던 2012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법 개정을 요구하며 조계사 앞마당에 농성장을 꾸렸던 2010년, 최옥란열사가 명동성당 앞에서 투쟁했던 2001년으로부터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시작된 변화다. 부양의무자기준이라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옹벽이 우리의 투쟁을 통해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전면 폐지로 만날 새로운 세상
부양의무자기준은 박00님에게서 건강도, 생전에 부모님을 뵐 기회도 빼앗았다. 여전히 곳곳에서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극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리지만 자녀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될 때까지 이혼을 미루는 장애 여성이 있고, 자신의 소득 때문에 가족들의 수급이 탈락될까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청년들이 있다.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한다는 것은 이들 의 가슴에 드리워진 멍에와 한을 폐지하는 것 이다. 개인과 가족들에게 가난의 책임을 전가한 부끄러운 역사를 끝내는 일이다.
“투쟁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지만, 우리의 승리는 세상의 일상을 바꿀 것입니다”
1842일의 광화문 농성을 마치며 우리는 이런 구호를 외쳤다. 과연 세상의 일상이 바뀌는 날이 오고 있는 것일까? 부양의무자기준이 완전히 폐지되는 그날까지,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도 함께 살 수 있는 날까지 우리의 투쟁이 계속된다면 그럴 것이다. 우리의 승리가 변화시킬 세상의 풍경을 상상하자. 송파 세모녀를 기억하며 끝까지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