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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볼트의 100m와 

소민-영애의 이어달리기 사이에서

2018 인권체육대회/모꼬지 참가기

 

 

 유기훈 |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공학, 인류학, 의학 등을 떠돌다가 노들장애인야학에 입성하였다. 야학과 병원의 언저리에 머물며, 억압하는 의학이 아닌 위로하는 의학을 꿈꾸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바로 앞에 사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지난 10월 27일-28일, 가을의 한복판에서 노들야학이 들썩였다. 노들야학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함께 춘천으로 모꼬지를 갔던 것이다. 그 이름은 “춘천 가는 인권 특장차” 휠체어가 탑승 가능한 두 대의 버스와 몇 대의 봉고, 여러 대의 자동차가 노들야학에서 춘천으로 출발했다. 소양강에서 내려 소양강댐과 장난감박물관을 보고, 선선해진 가을바람을 맞으며 늦은 점심 도시락도 까먹었다.

 

 

특장차에 타는 야학 학생들

 소양강에서 다시 인권 특장차에 탑승하는 야학 학생과 교사들

 

소양강댐에서 찍은 기념사진

 소양강댐에서 기념사진

 

 

인권체육대회, ‘잘’ 달리지 않는 이어달리기

 

모꼬지의 백미는 인권체육대회였다. 넓은 체육관이 학생들과 교사들로 가득 찼고, 큰 공들 사이로 휠체어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있는 힘껏 달렸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함께 성화를 봉송하고 노들야학의 역사와 인권과 관련한 OX게임이 진행된 후, 청팀 백팀으로 나뉘어 이어달리기가 진행되었다. 이어달리기는 휠체어 이용자와 비-휠체어 이용자가 1개 조가 되어, 설치된 여러 단계의 관문을 넘어서 같은 팀의 다음 조에게 바통을 넘기는 형식이었다. 장애의 종류와 중증도를 넘어서 모두가 이어달리기의 레일 속에서 어우러졌고, 휠체어의 두 바퀴와 두 다리가 합을 맞추어 달렸다. 누구도 달리기를 ‘잘’하지 못했지만 이어달리기는 끊어지지 않았다. 노들야학의 ‘2018 인권체육대회’는 그 이름처럼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어우러져 함께 즐길 수 있는 종목과 편의시설 속에서 이루어졌다.

 

인권블럭 통과하기. 결승 선 모습.

한 팀이 되어 달린 수연영희 & 지민 팀. 이어달리기 중 볼링 관문을 통과하고 있다.

 

줄에 매달린 과자를 따먹는 게임

이어달리기 중, 손을 쓰지 않고 줄에 매달린 과자를 먹는 관문. 

 

 

올림픽, 패럴림픽, 중증장애인의 생활체육  

 

너무나 평범한 체육대회였지만, 한국 사회 속에서 이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인권체육대회’의 개최는 너무나 평범하지 않았다. 2018년 한국에서는 올림픽도, 이어진 패럴림픽도 진행되었지만, 선수가 아닌 장애인이 즐길 만한 ‘생활체육’은 여전히 너무 적었던 것이다. 특히 중증장애인의 체육활동은 더더욱 적었고, 문제는 복합적이었다. 첫째는 접근성과 이동권의 문제였다. 

 

체육시설 접근성과 이동권

 

여러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공공체육시설 중 장애인 접근성 5개 지표를 충족시킨 시설은 전체의 22.5%뿐이었고, (문화체육관광부(2018), ‘2018년 장애인체육시설 운영 지원 계획’) 서울시 공공체육시설 14개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배리어프리(BF) 점수는 58.3%에 그쳐 ‘일반 등급’ 기준인 70%에 한참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승엽, 조항진, 이병권, 김동학(2018), ‘장애인 생활체육의 제약요인 및 활성화 방안에 대한 고찰’, 2018 서울대학교 학생인권연구프로젝트 자료집.) 이러한 접근성 문제로 인하여 2017년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은 20.1%로 비장애인의 59.1%에 비해 1/3수준이었고, 그나마도 장애인 이용의 대부분은 경증장애인 위주로 구성되었다. 한 연구에서의 관계자와의 인터뷰 결과는 이러한 상황을 잘 대변한다.

 

“장애에도 등급이 있잖아요. 중증장애인 분들은 이용하지 못하고, (장애등급이) 낮은 분들에 한해서 이용하고 있어요.” “(샤워실에 휠체어가 못 들어가기에) 1층에 휠체어를 놔두시고, 지팡이를 짚고서 혹은 본인 스스로 걸어가셔요. 아예 못 걸으시는 분은 아예 오지를 않으셔요.” (한승엽 외(2018)에서 재인용.)

  

접근성의 문제는 단지 ‘시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중증장애인이 생활체육을 하기 위한 체육지도사의 배치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큰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 경우는 상담을 통해 일부는 계속 받아들였다. 그런데 중증을 가지신 분들은 전문적이지 않기 때문에 (등록이)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 강사(장애인스포츠지도사)들은 1시간에 3만원을 줘야하는데 우리 예산은 그렇게 잡혀있는 예산이 없고 ...”

 

그나마 장애인스포츠지도사가 배치되어 있는 체육관에서도, 장애와 체육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함양된 지도사는 드물었다.

 

“장애인 지도사 딴다고 장애인 알지도 못해요.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나은데 그게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냐. ... 이게 정말 장애인체육전문가가 맞느냐? 아닌 거지. ... 현장실습도 물론 있어요. 있는데, 없는 거보다는 나은데 실제적으로 대표되지 못한다는 거죠.” (한승엽 외(2018)에서 재인용)

 

장애인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의 취득을 위해서는 일반 체육과목 4과목과 특수체육론 1과목에 대한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90시간의 연수과정을 거치지만, 단 한 과목의 필기과목과 이어지는 경증장애 위주의 연수시간을 통해 중증장애인 체육과 관련된 노하우를 익히는 것은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남형, 노형규(2018), ‘장애인스포츠지도사의 이상과 현실 – 자격증 취득 후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특수체육학회지”)

 

우사인볼트의 달리는 모습

100m 달리기 경주에서 가장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하는 우사인 볼트.

 

보치아 사진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스포츠 경기인 보치아.

 

 

2018년 기준 서울시의 장애인전용체육시설 8곳 중 중증장애인 프로그램은 5곳에만 존재하며, 프로그램 내용은 5개소 전부 ‘1:1 수영’ 뿐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중증장애 생활체육 시설과 프로그램, 지원인력의 부재를 반영한다. 

 

한편, 장애인 이동권의 침해는 생활체육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장애인 휠체어리프트가 구비된 셔틀버스는 극히 일부 시설에만 존재하고 있으며,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여 체육시설을 이용한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처럼 생활체육이 중증장애인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장벽들을 넘어야만 했다.

 

- 스포츠란 무엇인가?

 

그러나 중증장애인의 체육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막아선 것은, 단지 접근성과 이동권만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패럴림픽에서 드러나듯, 장애인의 스포츠와 운동은 ‘잘 운용되는 정상적인 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올림픽과 비장애인 스포츠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왔다. 시각장애인의 재활에서 출발한 ‘골볼’과 뇌성마비장애인 사회에서 고안된 ‘보치아’가 패럴림픽 종목에 포함되어 있지만, 사실상 장애인의 몸의 운용을 중심에 놓고 행해진 스포츠 종목은 매우 드물다. 비장애인의 소위 ‘정상적’인 몸을 상정하고 만들어지고 행해진 수많은 스포츠 종목들 앞에서, 중증장애인의 체육에의 권리는 ‘체육시설에의 접근성’, ‘이동권’을 넘어선 보다 근본적 고민들을 불러일으킨다.

 

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우사인볼트의 100m 달리기.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달리기 선수의 모습은 올림픽의 상징적 장면이다. 그렇다면 중증장애인의 스포츠는, 운동은, 체육은 이처럼 몸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작업이어야 할까? 아니면 일상생활 속에서 몸을 잘 쓸 수 있는 방식을 함양할 수 있는 과정이어야 할까? 그렇다면 중증장애인의 체육은 비장애인의 스포츠와, 병원에서의 재활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야 할까? 중증장애인의 체육활동에의 권리는 ‘다양한 스포츠 종목 개발의 필요성’에서부터 ‘스포츠란 무엇인가?’, ‘몸을 잘 운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스포츠와 운동, 체육, 재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새로운 중증장애인의 ‘생활’ ‘체육’을 상상하며

 

그렇기에 ‘인권체육대회’를 기획하며, 어떤 종목이 보다 ‘인권적’일지를 고민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그 고민의 산물로 휠체어 이용자와 비-휠체어 이용자가 짝을 이뤄 여러 관문을 돌파하는 인권-이어달리기가 고안되었지만, 이것이 중증장애인의 일상적 운동이 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체육대회가 아닌, 일상의 생활체육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새로운 상상과 새로운 권리가 필요할까. 

 

인권체육대회 팀 순서를 정하는 가위바위보

인권체육대회에서 팀 순서를 정하는 가위바위보

 

 뒤풀이 사진 

인권체육대회가 끝난 뒤, 모꼬지 뒷풀이에서 야학 교사와 학생들, 활동지원사 분들이 건배를 외치고 있다.

 

 

노들야학 인권체육대회가 끝나고, 춘천에서의 모꼬지의 밤은 길게 이어졌다. 마로니에 공원의 교실을 오랜만에 벗어나,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2018년의 추억을 장식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노들야학 체육대회와 모꼬지는 이어질 것이다. 함께 모인다는 ‘모꼬지’라는 말의 의미처럼, 서로 다른 몸과 마음으로 함께 모여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내년의 체육대회와 모꼬지가 새로운 몸과 마음, 새로운 권리를 상상하며 더욱 ‘인권적’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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