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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 책꽂이]

창조와 한나, 그리고 나

<한나 아렌트, 사유의 전선들>을 읽고

 

최재민 | 노들야학 휴직교사.

 

한나 아렌트 사유의 전선들 표지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다른 사람과 나누는 얘기를 엿듣는 것만큼 재미난 일이 있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이 인문학계의 샐럽이라면? 나의 친구 창조가 한나 아렌트에 관한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 창조가 한나 아렌트와 나눈 얘기를 듣는 기분이겠거니 기대했다. 그런 기대감으로 창조의 책 <한나 아렌트 사유의 전선들>을 서점에서 집어 들었고, 이 둘의 수다를 엿볼(읽을) 생각에 약간 설렜다. 

 

설렘을 갖고 시작했으나 책읽기는 쉽지 않았다. (351쪽 ㅠㅠ) 다만 책을 읽다가 위로가 된 것은 책을 읽어보니 한나 아렌트란 사람은 내가 책읽기로 고생하는 현실에 비하지 못할 정도로 고생깨나 한 사람이었다. 한나가 살아가던 시대는 유대인들을 잡아다가 죽이는 시대여서 한나는 유대인이면서 난민 무국적자로 여기저기 떠돌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치 이 땅에서 장애를 갖고 태어났으나, 자기 몸을 누일 이부자리 공간 없어 장애인거주시설에 격리된 시설 거주인의 삶처럼 삶이 답답했을 것 같다. 

 

그런데 한나는 반유대주의로 억압받고 타국에서 눈칫밥 먹으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비(非)-시민으로서의 정체성 ; 난민 무국적자이지만 유대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인정했다. 그 정체성의 토대 위에서 살면서도 유대인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고자 분투했다. 어디까지나 아무리 무슨 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정체성으로서 살아야한다는 명확한 현실인식 속에 있었던 사람. 

 

한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 한나는 라자르가 정의한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라는 의미의 파리아라는 개념을 가져와 파리아의 삶에 관해 말했다. 파리아의 삶은 억압적 현실 그 자체와 맞부딪히며 현실성을 더욱 드러내준다고 말하면서, 파리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똑바로 인정하고 의식적으로 자신의 유대인이란 정체성 도태 위에서 자기 해방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정치적 책무를 말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나가 창조의 친구이지만 나의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27개 뼈를 가진 오른손과 다르게 왼손 뼈를 15개 정도만 갖고 태어났는데, 사람들은 나를 장애인이라 부른다. 지하철을 타면 힐끔거리고, 비장애인 중심의 세계에선 나는 파리아가 된다. 사람들의 시선의 저 편에는 ‘너는 나보다 하등한 존재야’라는 의식이 있다. 귀찮고 싫은 일이다.

 

2007년, 언젠가 장애를 가진 아들을 낳으시고 하늘이 노랬다고 고백한 나의 어머니는 허리 디스크에 걸리도록 열심히 식당을 운영한 돈으로 내 손가락을 비장애인으로 만드는 수술을 시켜주겠노라고 대학병원에 나를 데려갔다. 이천만원. 그 당시 의사는 모양은 오른손과 동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서, 이천만원을 들여 수술해보겠냐고 말했다. 그때 나는 말했다. ‘아니오. 나는 내 손이 좋아요.’

 

나는 비장애인처럼 살아가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냥 이질적인 손을 갖는다는 게 싫었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고집을 부려서 이런 손을 갖고 태어났는데, 지금에 와서야 장애인으로 딱지 붙고 마음에 안 든다고 바꾼다고 노력하는 게 싫었고 그냥 이 손을 갖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실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졌기 때문인지 나는 어느 시공간에 태어났어도 장애를 갖고 있었을 것만 같았다. 뭔가 이러한 정체성이 나에게 주어진, 내 삶을 반짝거리게 만드는 뭔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거창한 정치적 용어로 그걸 해방이라고 하나보다. 

 

내가 얼마나 해방적 삶을 살아가는지 자신 없고, 대단치 않지만 나는 나를 포함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인권 활동가다. 한나는 유대인의 자기 해방을 위해 분투했고 나는 장애를 가졌으니, 한나의 삶에 나의 삶을 빗대면 장애 해방을 위해 분투하는 셈인데 아무튼 한나가 나랑 뭔가 통하는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꾸역꾸역 <노들바람>에 내 삶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도 기억과 이야기를 강조한 한나가 말한 활동적 삶의 작업에 해당하는 일인 것 같고, 갈팡질팡하지만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는 것도 단순 돈-벌기가 아닌 뭔가를 남기겠다는 활동이니 노동이면서 작업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한 가지는 한나가 우정의 관계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슈테른뿐만 아니라 발터 벤야민과도 깊은 우정을 나눴고, 야스퍼스라는 괜찮은 스승을 두기도 했다. 이런 한나가 시간과 공간의 먼 길을 건너 창조와 멋진 우정의 관계를 맺었고, 또 그 이야기를 엿듣고 나 또한 한나와 어느 정도 친구 관계를 맺었음을 이 지면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 

 

한나가 전체주의 운동이 승리했던 사회적 조건에 대해서 언급했던 것,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얘기하며 ‘직업인들’로 가득한 현대 사회를 꼬집은 것들도 얘기하고 싶지만, 지금 나는 함께 장애 인권 운동을 하는 동료들과 M.T.에 와서 조촐하지만 성대한 마지막 뒷풀이 자리를 남겨두고 있기에(사실은 지금 뒷풀이 자리에 빠져나와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한나가 우정의 관계를 중시한 것을 기억하며 술자리로 이만 가려한다. 

 

창조 형이 우정의 천재 아렌트를 정말로 좋아한다면 글쓰기를 이만 줄이고 술자리로 신나게 향하는 나를 이해하고, 또 내 글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멋진 저녁 식사를 한 끼 사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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