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울 113호 - ‘버림받은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 정창조
‘버림받은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노들장애학궁리소 ‘한나 아렌트’ 강좌를 마치면서
정창조
노들야학 신입교사다. 장인이 만든 간식과 대한극장 카라멜 팝콘을 좋아한다.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잘하지는 못한다. 강여사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산다. 마피아와 야쿠자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운명했다.”
지난 7월 28일, 고장선생님이 살짝 쉰 목소리로 박종필 감독님의 죽음을 전해 왔다.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강좌를 시작하기 얼마 전이었다. 나는 박종필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고작 몇 번 스치듯 나눈 어색한 인사들만이 흐릿하게 기억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박종필’이 ‘누구’인지를 마주하기도 전에 그가 떠나버렸기 때문에, 여전히 그는 내게 단지 ‘감독님’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어떤 이야기를 남겼는지 안다.
그는 여느 이야기꾼들처럼 청자들에게 자신은 남겨두지 않고서, 단지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들의 행위와 그들이 겪은 사건들만을 세계에 남겨두었다(그와 함께 울고 웃으며 싸우고 논쟁하고 부둥켜 안아본 이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겠지만). 그가 온갖 투쟁 현장에 출몰했음에도,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그나마 찍힌 사진들에서도 그는 대개 카메라로 자기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 대신 장애인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이, 노들야학에서 학업과 투쟁, 조직 운영을 두고 서로 논쟁하던 이들이, IMF 이후의 실직 홈리스들이, 그리고 세월호의 원혼들이 지금 여기 우리들에게 남아 있다.
화려하고 거대한 것만을 기억하는 역사는 박종필이 기록한 ‘사소하고 작은 것들’을 기껏해야 신문 기사 한 구석에 보일 듯 보이지 않게 배치해놓는다. 이 사회에서 억압받고 차별받아 온 자들이 살아가는 장소들처럼 초라하고 비루한 그 위치에. 그나마도 이 ‘정보화된 파편들’은 하루만 지나면 폐지함 속에 구겨져 쌓여간다. 다른 파편들의 잔해 더미에 뒤섞여 그 정체를 알아볼 수 없어질 때까지. 타임라인이 매순간 바뀌어대는 SNS에서는 심지어 몇 분 만에 휙 흘러가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하며 더 거대한 정보들이 이내 우리를 사로잡아 버린다. 그러나 (단순 정보가 아닌) 이야기는 소진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이야기되고 있는 사건 및 행위를 청자들의 상상 속에서 되풀이 하게 만들며, 해석과 또 다른 이야기의 연쇄를 유발한다.
탁월한 이야기꾼은 이 연쇄를 위하여 이야기되기를 기다리는,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망각될 위협에 처해 있는 작고 사소한 것들의 진귀함을 반영구적으로 세계에 남겨둔다. 그리고 그가 한 이야기는 어쨌든 가상이자 허구, 기껏해야 실재하는 사건들의 흐름을 첨삭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청자들의 현실 세계를 구성하곤 한다. ‘기억의 공동체’는 그렇게 형성된다. 즉 현실 세계를 공유하는 이들의 사이-안(in-between)에서. 출현하자마자 사라져 버린 행위들과 죽은 이들, 즉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비로소 현실성을 획득하는 바로 그 장소에서. 그렇다면 노들이란 공동체에서 박종필이라는 이야기꾼은 어떤 존재인가? 그의 작품들은? 그렇잖아도 아렌트는 이야기가 인간 실존에서 갖는 의미, 이야기가 정치 세계에서 갖는 의미에 깊이 천착한 이였던지라, 아렌트 강좌를 준비하는 내내 나는 이 질문에 과도하게 신들려 있었다.
(어느 철학자의 말을 표절해 보자면) ‘누구’인지도 모르는 박종필이라는 유령이 시간의 이음매를 끊어내고선 강의록을 작성하는 내내 내 앞으로 출몰해 왔던 것이다.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자유, 혁명, 인권, 노동, 작업, 행위,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세계소외, 악의 평범성……. 아렌트를 다룰 때 핵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비교적 거대하고 체계화 된 형태의 이 개념들 사이로 내가 굳이 ‘파리아’(pariah)라는 거칠고 애매한 개념을 강좌의 핵심 소재 중 하나로 삼은 이유도 아마 이 유령의 요구 탓이었으리라. 파리아는 ‘버림받은 자들’을 의미하며, 박종필은 이런 이들을 기록하며 일생을 보냈다. 더군다나 이 강좌는 파리아들로 가득한, 그것도 꽤나 멋진 파리아들이 함께 삶을 꾸려가는 노들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질 사건이 아닌가.
아렌트도 ‘버림받은 자’였다. 그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 나치 독일을 떠난다. 그러나 이 유대인을 공식적인 시민으로 받아들여 주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아렌트도 당대 많은 유대인들처럼 무국적 난민으로 살아간다. 무려 18년이나 말이다. 무국적 난민은 국가로부터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며, 심지어 국가는 그들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억압하기조차 귀찮아한다. 그들은 인간이지만, 단지 그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지 인간일 뿐인 이들”은 사회에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 시민의 자격을 갖춘 이들이 공유하는 세계가 그들에게는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비시민’으로서 겨우 ‘단지 인간’이라는 초라한 타이틀만을 유지해 갈 수 있을 뿐이다. 방구석에, 장애인 수용시설에, 형제복지원에, 선감학원에 갇힌, 혹은 고향을 떠나 인도양과 지중해를 표류하며 그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되어 버린, 아렌트가 죽은 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이 시대의 ‘비시민 인간’들처럼.
아렌트는 자신이 이러한 처지에 내던져진 이유가 단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일 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로부터 도피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도리어 더 강조하고 다녔다. 물론 아렌트의 이러한 태도는 역사적, 생물학적으로 고정된 ‘유대인성’을 설정하고, 거기에 자신을 합치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유대인 난민이 억압받고 있다는 혹은 ‘무국적자’로서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로부터 억압 받을 자격조차 갖지 못하다는 ‘정치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사실에 대한 책임을 떠맡고자 했던 것뿐이다. 아렌트가 강조한 삶의 태도, 즉 ‘의식적 파리아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의식적 파리아는 자신이 선 그 시좌(視座)에서 주류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며 저항하는 길을 걷는다. 그는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은 채 억압받는 자기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현실적’이며, 주류 사회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도리어 그 주류 사회를 더 예민하게 바라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A가 A라는 이유로 공격받는다면, 독일인, 프랑스인,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A로서 싸워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많은 파리아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매력을 인정받아 주류 사회에 ‘동화’되려 한다. 그리고 조금 안정적인 상황이 도래하면 자신의 비참한 과거, 자신과 같은 정체성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망각하고서, 이제 자신은 주류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낙관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렌트에 따르면 파리아들은 주류 사회에서 대개는 여전히 파리아로 남아있을 것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언제든 다시 억압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 아무리 자신의 과거와 역사를 망각하려 해봤자, 과거는 딱지처럼 계속 그에게 따라 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프랑스에 간다고 곧바로 프랑스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가 한국에서 일한다고 한국인과 동일해질 수 없는 것처럼,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정체성은 망각이나 자기기만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방인 및 소수자가 자신을 여전히 ‘국외자’, ‘내부의 외부’로 취급하는 주류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작정 편입하려 하거나, ‘자신도 (추상적인)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만을 강조하며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다수자들에게 해방을 애원하는 것은 결국 아렌트에게서 현실도피에 불과한 것이다. 파리아는 도리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로, 아니 그것을 전면에 내걸고 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것이 비로소 그에게 자유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며, ‘인간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던 이’에게 참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간, 즉 세계를 열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버림받은 이들의 정치가 시작된다. 이 새로이 세계로 오는 자들을 통해 더 다양해진 시좌를 가진 사이-공간이 구성된다. 역량은 부족한데, 욕심은 넘쳐났다. 악덕도 이런 악덕이 없다. 강의를 준비할 때마다 출몰해대는 온갖 유령들의 요구를 감당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강의 시작 직전엔 항상 식은땀이 등 뒤로 흘러내렸다. 수강한 분들께 그저 감사하고 미안할 뿐이다. 도리어 내가 너무 많이 배웠고, 덕분에 향후 연구할 주제들을 참 많이도 얻어간다.
궁리소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