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유지영 님

 

[노들아 안녕] 오랫동안 이 세계를 알아가 보고 싶다

 


유지영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2017년 초겨울, 노들장애인야학에 교사로 자원했다. 그 계기를 말하자면 상당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 같다. 특수 교육을 향한 관심은 대학서 배운 '특수교육학개론'이라는, 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론을 다루는 수업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다른 업계에 몸을 담고 있지만 당시 한참 동안 열렬히 특수교육에 몰두했던 기억이 있다. 직접 특수학급 수업 참관도 해보고 비장애인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장애인 학생들에 더 눈길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노들장애인야학을 알게 된 건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를 통해서였다. 비마이너 후원 회원이었던 나는 비마이너의 독자 인터뷰에 응하며 차츰 노들야학을 알아갔다. 장애운동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박경석 선생님이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잠시 잦아든 불씨를 다시 활활 키우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노들야학 교사 대표인 김진수 선생님 앞에 앉아 신임교사 지원서를 쓰고 있었다.

 

직장과 야학 간 상당히 먼 거리도 '하고싶다'는 생각을 이기지 못했다. 위에 인용한 문장은 노들야학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신임 교사 세미나' 자료집 맨 앞에 적힌 문장이다. 비장애인으로서 그저 장애와 장애학에 단순히 조금의 '관심'이 있다는 이유 말고도 노들야학에 되도록 오래 머물기 위해 내게는 좀 더 제대로 된 (정교한) 이유가 필요해 보였다.


사실 맨 처음에는 저 문장을 받고 막막했다.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들과 함께 했을 때 '나의 해방'이란 대체 뭘까?' 그저 선한 의지만이 아닌 '타인의 해방과 나의 해방을 연결시키려면 내가 여기서 무얼 해야 할까?' 여러 가지 물음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섞어놓았다. 며칠 전 그저 순수하게 '하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덤볐을 때와는 달리 복잡한 질문으로 엉켰다. 다른 야학 교사들이 하는 수업을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수업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잘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언어장애를 가진 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들어 과연 내가 이 세계에 제대로 접속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 장애인들만 있던 노들야학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순식간에 이 길에 장애인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낯설었다.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비장애인의 세상,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 세상이 내게 조금 더 불편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내가 언젠가는 제대로 장애를 이해할 수 있고 그 넓은 세계에 제대로 접속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아마 결국 그런 것이 '나의 해방'이지 않을까? 나름대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 글은 노들야학을 너무도 좋아하는 내가 야학에 던지는 일종의 '출사표'다. 좋은 교사가 될지 실은 아직도 자신이 없다. 그래도 치열하게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하고 싶다. 조심스럽게 한발자국씩 디디며 오랫동안 이 세계를 알아가 보고 싶다.

 

그게 '꼬꼬마' 신입 교사로서 노들을 안지 이제 몇 달 채 안 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380 2017년 겨울 113호 - 노란들판의 겨울맞이:) #벌써일년 / 진실로       노란들판의 겨울맞이:) #벌써일년   진실로 노란들판 디자인2팀 디자이너.트램폴린 위에서 뛰는 점핑 운동에 빠져있어요. 저 깊숙한 곳 어딘가 흥이 잠재... file
379 2017년 겨울 113호 - 어쩌다 보니 10년 노란들판 10년 일꾼 /조수안 · 공대식 · 이범민 · 김상희     어쩌다 보니 10년 노란들판 10년 일꾼 - 공대식, 이범민, 조수안 님 인터뷰     김상희 노들야학 학생으로 시작해서 노란들판 디자이너까지 두루두루 활동과 ... file
378 2017년 겨율 113호- [노들아 안녕] 날개 / 김영미   [노들아 안녕] 날개     김영미 1972년 10월16일생이고요. (46) 고향은 너무 어려서 인강원에 와서 잘 모르겠읍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영미라고 합니다. 제... file
» 2017년 겨율 113호- [노들아 안녕] 오랫동안 이 세계를 알아가 보고 싶다 / 유지영   [노들아 안녕] 오랫동안 이 세계를 알아가 보고 싶다   유지영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 file
376 2017년 겨율 113호 - [노들아 안녕] 드디어 페이스 친구가 되었다 / 윤민진   [노들아 안녕] 드디어 페이스 친구가 되었다     윤민진     2011년 4월에 청주에서 장애인활동보조인 교육을 받았다. 강사가 했던 말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 file
375 2017년 겨울 113호 - [교단일기] 우리의 몸을 찾아서 / 박누리       [교단일기] 우리의 몸을 찾아서     대추 청솔1반의 담임이며 학생들과 2017년 2학기에 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장애인에게 한방진료를 지원하는 장애인독... file
374 2017년 겨울 113호 - 중구난방 세미나 뒷담화 비정상 교육철학 세미나 후기 / 박준호 중구난방 세미나 뒷담화 비정상 교육철학 세미나 후기     박준호 노들야학 교사. 야학 수업 잘하고 싶어요. 새해부터 놀고 있습니다. 집이 너무 추워요.       ... file
373 2017년 겨울 113호 - 노들장애인야학의 사회복지현장 실습을 마치며 / 박성준     노들장애인야학의 사회복지현장 실습을 마치며     박성준 저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2017.10.16. ~ 11.21. 기간 동안 사회복지현장실습에 참여한 실습생 박성... file
372 2017년 겨울 113호 -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할까 / 최영은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할까 <몸의 시간> 참가 후기     최영은 안녕하세요 저는 노들야학에 다니고 있는 최영은입니다       연극공연을 하며. 내가 ... file
371 2017년 겨울 113호 - <추신>을 관람하고 나서... <추신>, 장애인문화예술판 2017년 작품 / 이은애   &lt;추신&gt;을 관람하고 나서... &lt;추신&gt;, 장애인문화예술판 2017년 작품     이은애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에서 중증장애인응급알림 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전 ... file
370 2017년 겨울 113호 - ‘여기, 노란들판입니다’구멍이 숭숭 진행요원의 뒷이야기 / 민아영  ‘여기, 노란들판입니다’ - 구멍이 숭숭 진행요원의 뒷이야기   민아영 노들 활동가. 자기소개 글이 &lt;노들바람&gt; 글 중에 제일 어렵네요. 뭘 소개해야 할까. 나를 ... file
369 2017년 겨울 113호 - 우여곡절, 노들피플퍼스트 People First! / 박임당 우여곡절, 노들피플퍼스트 People First!   박임당 노들야학 교사, 방학을 만끽 중     노들에 발달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명 “낮수업”이 생긴 지 3년... file
368 2017년 겨울 113호 - 어둠모꼬지 <노들 선감도에 가다> / 이현아 어둠모꼬지 &lt;노들 선감도에 가다&gt;     이현아 첫 학기 수업을 가까스로 마치고 스스로 대견해하는 중. 수업을 빠진 횟수와 뒤풀이를 빠진 횟수가 동일하다(...) ... file
367 2017년 겨울 113호 - 왜 어둠이라고 했을까? 이제는 알 것 같다. / 박정숙 왜 어둠이라고 했을까? 이제는 알 것 같다. - 노들야학 모꼬지를 다녀와서   박정숙 나는 노들 야학 학생(휴)이고 상근 활동가 박정숙입니다.       여름부터 기... file
366 2017년 겨울 113호 - 베이징에 다녀왔어요!! / 이형숙 베이징에 다녀왔어요!!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2017년 11월 27일부터 12월1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제3차 아시아·태평양(아·태) 장애인 10년 인... file
365 2017년 겨울 113호 -‘나도 혼자 산다’단기 체험홈을 마무리하면서 / 최정희 ‘나도 혼자 산다’단기 체험홈을 마무리하면서 - 공동모금회 지원 중증장애인자립생활모델개발사업 후기     최정희 안녕하세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남성체험홈...
364 2017년 겨울 113호 - 장애인 독립진료소를 지원, 후원해주세요! 장애인 독립진료소를 지원, 후원해주세요!     발바닥행동,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가 공동운영하고 있는 장애인독립진료소 인사드립니다. ‘한방의료활동 들풀’... file
363 2017년 겨울 113호 -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오직 운뿐이랴~! 오 지 우 뿐이다~! / 오지우 · 김진수 오직 운뿐이랴~! 오 지 우 뿐이다~! - 겁 없는 자립생활자 오지우 학생 인터뷰     김진수   얼마 전에 눈썰매를 탔습니다. 남이 끌어주는 썰매를 얼마 만에 탄 ... file
362 2017년 겨울 113호 - [나는 활동보조인 입니다] 남옥 씨랑 같이 웃고 웃으며 살렵니다 / 이경숙 남옥 씨랑 같이 웃고 웃으며 살렵니다   이경숙 - 노들야학 학생 남옥님의 활동보조인         60살이 넘었어도 일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쉬게 되자 일중독이 있... file
361 2017년 겨울 113호 - [뽀글뽀글활보상담소] 65세가 되면 하루 4시간만 살라는 건가 / 박명애 · 민아영  65세가 되면 하루 4시간만 살라는 건가 - 대구 장애인 지역공동체 박명애 대표 인터뷰     - 박명애 장애인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 54 Next
/ 54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