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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노란들판입니다’

- 구멍이 숭숭 진행요원의 뒷이야기

 

민아영


노들 활동가. 자기소개 글이 <노들바람> 글 중에 제일 어렵네요. 뭘 소개해야 할까. 나를 소개할 만한 게 무엇일까. 나는 뭐지 모 그렇습니다. 천성은 한량인 것 같은데, 구르는 재주가 있어 활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노란들판의 꿈’의 시작은 내가 운영위 회의를 통해 준비팀을 준비하는 팀장이 되면서였다. 준비를 위한 준비라니, 총대를 메는 기분과 살짝 들뜬 기분이 교차했다. 여차저차 ‘노들공동체’ 소속 단위 1명씩 구성해서 꾸렸다. 사실, 첫 회의 날 모여서 인사하고, 언제해도 민망한 자기소개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서로 하고 싶은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구성원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중견활동가와 신입활동가, 그리고 신입활동가라기엔 (장애인권익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애매하지만 어쨌든 ‘노들’신입활동가인 사람들까지 재미있게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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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 노란들판의 꿈 기조는 1년간 노들을 지지해주고 함께해준 이들에게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활동하고 있고,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성원 서로에게 ‘우리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해왔네, 고생 많았다. 오늘은 놀자’라는 목적도 있었다. 그 기조에 맞게 춤과 노래, 공연이 주를 이루었다. 또 한 켠에 우리의 일상을 차분히 볼 수 있는 부스도 기획했다. 내가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은 노들공동체 소개영상 제작이었다. 처음 기획은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대형프로젝트를 왜 한다고 했을까 수많은 번뇌를 했다. 그렇다고 해서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을 만나는 재미도 있었다. 또 매번 바쁘다, 바쁘다는 이야기만 듣다가 왜 그렇게 바쁜지,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실제로 다들 바빴다. 넘치는 서류더미들을 제어할 수 없어 책상과 책장에 서류가 넘치는 광경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쉼없이 울리는 전화벨소리는 BGM. 그렇게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희미한 눈썹을 휘날리며 촬영했다. 내 책상에 기하급수적으로 쌓여가는 서류더미들이 보였지만^^! 촬영은 잘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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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것은 합창으로 준비했던 ‘시간을 달려서’와 ‘노래만큼 좋은 세상’ 연습장면을 영상 안에 녹이지 못한 것이다. 파격적인 선곡이었던 ‘시간을 달려서’는 호불호가 크게 나뉘어졌다. 유명인 박0석 교장선생님은 선곡에 대해 ‘망했다. 너무 어렵다.’ 등등 온갖 구박을 하시며, 바꿀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나는 고집을 피웠다. 조금은 새롭고 발랄한 노래도 선곡해보고 싶었다. 결국 이 노래를 합창으로 올렸다. ㅎㅎ 그리곤, 수지학생의 애창곡이 되었다. (뒤풀이가 반을 차지했던) 기획회의 속 내용을 실현할 당일이 되었다. 8시 30분까지 도착해야만 했던 가쁜 일정의 시작, 조금 무서웠다.

 

10월 21일, 대학로에서 태극기집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화문 농성장에서 위협을 받았던 적이 있기에, 행사 중 시비가 붙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두려움이 아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경찰 6~7명이 본인들 소개를 하며 왔다. 주 내용은 오늘 행사가 잘 마무리되길바란다는 것이었고, 실제로 우리 행사 팻말을 만들어오기도 했다.

 

경찰과 같은 마음을 가질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또 소심하게 행사를 진행할 순 없지 않은가. 노들의 친구, 하자작업장학교 공연팀과 동네 한바퀴를 시작했다. 예정된 코스보다 축소해서 진행을 했지만, 공연팀의 악기소리와 사람들의 춤사위는 대학로에 놀러온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리 행사를 알리는데 성공적이었다. 물론 욕도, 항의도 빗발쳤다. ^^! 사실 행사가 시작된 이후로는 태극기집회가 무엇을 하던 신경이 안 쓰였다. 다음 순서와의 시간을 맞추느라 태극기집회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 집회의 효과일지도 모르겠는데, 커피를 통해 후원금이 많이 모였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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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작업장학교 공연팀 덕분에 마로니에 공원 야외 무대장이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이어서, 노들‘피플-퍼스트’가 쿨레칸과 함께 아프리카댄스를 췄다.몸짓으로 표현하는 감정들, 그리고 발산되는 에너지. 끕, 진행요원만 아니었다면 춤을 더 추었을 텐데, 이때 좀 많이 아쉬웠다. 야학 낮수업팀에서 보여준 몸짓, 그리고 그림들은 볼수록 사람마다 다른 면이 있고 색깔이 있다. 이게 참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자꾸 보게 하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나는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따라 그리거나 몸짓을 할 때면, 속 시원한 부분들이 있다. 근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사회적 억압에 대한 해방으로부터 오나. 뭐 그렇게까지 거창하진 않고 생각지 못한, 나도 몰랐던 틈새로 훅 들어오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ㅎ0ㅎ 그 매력이 궁금하면 노들야학으로 놀러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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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코너 하나하나를 설명하기엔 글이 너무 지루할 것 같으니 주요한 몇몇 부분만 꼽아야겠다. 기획을 하면서 몇 가지는 의도를 심기도 했다. 노들이라면 달랐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다. 누구와 비교해서 무엇이 달라야할지는 모르겠지만. 무튼 내가 바라보는 노들은 평등을 추구하고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애증이든 애정이든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축사에 좀 의도를 담았다. 그저 형식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축하인사를 받고 싶은 곳에서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험난하고도 바꿔나갈 게 많은 사회에서 어깨 부비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올해도 고생했고 앞으로도 서로 열심히 하자고 이야기 듣고 싶었다. 그렇게 축사는 대학로 2번 출구 떡볶이 사장님, 이음책방지기, 피플퍼스트 활동가들, 시네마달 문예활동가들에게 감사히 받았다.

 

야심차게 준비했는데, 조금 애매한 코너가 있긴했다. ‘~노란들판의 기원을 찾아서~’였다. 단위별로 초창기 멤버나, 힘든 시기를 견디기 위해 애쓴 노들 활동가들을 모아서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잡담회를 왜 뜬금없이 넣었냐고 하면, 옛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나 같은) 신입활동가에게 귀감이 되는 시간을 가지려는 목적이었다. 근데 이게 앞에 흥을 열심히 돋운 공연들 다음에 하니까, 좀 애매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뭐 내용이 별로였던 것은 아니다. 워낙 다들 입담이 좋으니까. 내가 더 춤을 추고 싶어서 애매하다고 느낀 건가. (흠흠)

 

그 땐 생각해둬야지 했던 말들이 많았는데, 안 써두니까 이렇게 잊어먹는다. 그럼에도, 내 기억에 남았던 것은 참 많이도 싸웠을 텐데, 재밌게 기억하고 있구나 였다. 재미있을 때까지 싸운 걸까 ㅎ0ㅎ 낮 행사는 태극기집회를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이 잘 끝났다. 그러나 태극기 집회를 나는 좀 더 심도 깊게 고민했어야 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사고가 터졌다. 낮 행사를 끝내고, 노들공동체 활동가들의 친목도모 시간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밤 행사에 앞서 저녁식사를 자-알 먹고 싶었다.

 

그 욕심에 야심차게 케이터링(소규모 뷔페)을 시켰다. 행사하는 것도 너무 힘든데, 우리의 노동력을 최소화하자는 목적으로 했건만, 교통체증은 생각도 못했다. 자본의 속도를 멈추기 위한 그린라이트 투쟁을 그렇게 열심히 해놓고, 이런 것조차 예견하지 못했다. 갑자기 비워진 시간에도 단위별로 서로를 소개하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잘 보냈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때워서 많이 배고팠을 텐데, 이 때 진심으로 활동가들에게 고마웠다.

 

다들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고 2부, 노들+넌센스 퀴즈쇼로 시작했다. 사회자가 당황할 정도로, 활동가들이 열성적이라 무섭기도 했다. 어색할까봐 준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어색함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었다. 기획팀에서 잘 기획한 건지, 아님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들이었는지는 몰라도 즐거웠다. 올해 노란들판의 꿈 행사가 유독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노들에서 처음으로 책임지고 맡은 행사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일적으로만 연결된 것은 아님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가끔은 왜 이렇게 힘든 이야기를 지속해야만 할까, 왜 일은 끊임없이 쏟아질까 등등의 생각을 (많이) 했다. 나만 했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아닌 노들활동가의 고생했다는 말에 울컥하는 것을 보면 내가 심적으로 기대고 있는 곳은 이 곳이구나 싶다.


노란들판 안에서 논쟁하고, 싸우고, 갈등을 맺기도 한다. 근데 그건 그 사람이, 그 단위가 못미더워서 혹은 싫어서가 아니라, 노란들판이라는 공간을 더 잘 만들어가고 싶은 각자의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조금 많이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지지고 볶고 싸우는 그 과정들이 더 반짝이는 가치와 활동을 만들어오고 있음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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