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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당신이 빠져있습니다

고(故) 이종각 선생님을 추모하며

 

 

홍은전 |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야학에서 상근 활동을 했다. 노들의 오랜 후원자였던 이종각 선생님을 참 좋아했다. 서른 살 생일에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책 다섯 권(『삼십 세』, 『헤로도토스 역사』, 『전선기자 정문태』, 『벽암록』,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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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평원재 앞에서 이종각 선생님과 명학이형

 

 

1 _ 작년에 이종각 선생님 추모제를 마친 후, 행사 순서가 적힌 종이를 집으로 가져와 창문에 붙여 놓았습니다. 선생님 사진이 있어서 쓰레기통에 버릴 수가 없었거든요. 문득 선생님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날이면 깨닫습니다. ‘아, 돌아가셨지. 이젠 못 보지.’


그런 순간이면 심장이 조금 아래로 꺼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건 호식이형이 떠오를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누가 들으면 서로 되게 친했나 보다, 하겠네요. 이종각 선생님과는 1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했으니, 다 해야 열댓번쯤 만났을까요. 호식이형하고는 15년을 만났는데, 따로 밥 한 번 술 한 번 먹어본 적이 없네요. 그런데 왜 그렇게 수시로 마음의 구멍이 느껴졌을까 생각해보니, 우리는 모두 2001년에 노들야학을 시작한 동기였더라고요. 저는 교사로, 호식이형은 학생으로, 이종각 선생님은 후원자로. 제가 사랑했던 노들엔 항상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어로 ‘I miss you’는 ‘나는 당신이 그립다’는 뜻인데요. 거기엔 이런 뜻도 있답니다. ‘나에게서 당신이 빠져 있다.’ 그래서 문득문득 그 구멍이 느껴지는 순간, 그걸 그립다고 표현하나 봅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 시절에서 당신들이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그립습니다.


2001년 어느 날 야학으로 전화가 한 통 왔었습니다. 노들야학 학생 스물다섯 명에게 매달 10만원씩 후원을 하고 싶다고요. 1년이면 3천만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후원이었죠. 전화를 건 사람은 ‘중생원’이라는 사회복지재단의 이종각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학생들에 대한 기본적인 서류만 요청한 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장학금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야학 상근자들은 생각했습니다. ‘이 재단이 급히 처분(?)해야 할 돈이 있나보다. 몇 차례 하다 말겠지.’


예상과 달리 후원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야학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새 학기가 되면 변동 사항에 대한 서류를 보내달라고 전화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것은 정말 검은 돈일까.’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중생원에 대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2 _ 몇 해가 흐른 어느 날, 이종각 선생님께서 불쑥 전화를 하셔서는 물었습니다. “매실 보내주면 술 담가먹을 수 있습니까?” 보내준 장학금이 1억은 넘었을 것 같은데, 그런 분이 하는 질문이라는 게, ‘매실 주면 술 담가먹을 수 있냐’라니요. 아마 제가 이종각 선생님께 반한 것은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그렇게 사랑스런 질문은 처음 들어봤습니다. 선생님은 야학의 최신 정보에 훤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데모를 했는지도 알고 계셨고, 우리가 얼마나 술을 좋아하는지, 누가 제일 많이 먹는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몇 해, 초여름이면 항상 초록색 매실 두어 상자가 야학 앞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2005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선생님은 또 불쑥 전화를 해 이렇게 물었습니다. “에어컨 생기면 전기세 내면서 살 수 있습니까?”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멍해졌다가, 잠시 후 그것이 며칠 전 제가 홈페이지에 쓴 글에 대한 이야기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 해 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더위를 잘 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저조차도 견딜 수 없을 정도였지요. 교실엔 낡은 구식 에어컨이 한 대 있었지만 전혀 기능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홈페이지에 “더워서 살 수가 없어요. 누가 에어컨 후원 안 해주나. 전기세도 같이”라고 썼습니다. 온갖 잡담을 홈페이지에서 나누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저 일하기 싫어 징징댄 것이었죠. 진심도 아니었던 것이, 당시엔 상근자 활동비 주는 것도 버거워, 그걸 보고 누가 진짜로 에어컨을 사줄까봐 오히려 걱정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교실이 몇 개냐, 사무실은 몇 평이냐, 물어보시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연락해, 돈을 부쳤으니 에어컨을 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실은 몇 평형, 사무실은 몇 평형 에어컨이면 충분할 거다’라고, 미리 알아보신 내용을 꼼꼼히 일러주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셨습니다. “삼성 에어컨으로 사세요. 당장은 비싼 것 같아도 AS가 가장 잘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에어컨 다 사고 나면 얼마쯤 남을 겁니다. 올해 전기세는 될 거예요.” 이종각 선생님의 후원은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선물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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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대구 질라라비야학 사람들과 이종각 선생님

 

 

 

3 _ 2007년 어느 날, 얼굴 없는 후원자, 노들의 ‘키다리 아저씨’가 돌연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야학 사무실로 성큼 들어선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6년 만에 나타난 사람답지 않게 걸음걸이에도 목소리에도 주저함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상황이 신기했고, 선생님은 왜 그렇게 쳐다보냐는 듯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첫인상이 좀 놀라웠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그렇게 곱게 잘생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날 선생님은 장애인이 자립해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공간은 관(국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관과 손잡고 일을 해선 안 된다고, 보조금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기하게도 그 일을 노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물었습니다. 야학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본 적 없는 우리를 어떻게 믿었는지요. 선생님은 이동권 투쟁에 대한 뉴스를 보다가 노들야학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자신이 가진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노들에 대한 뒷조사(?)를 하셨고, 믿어도 좋겠다고 판단하셨대요.


2008년 야학이 동숭동으로 이사를 온 후, 평원재단(중생원의 새 이름)도 곧바로 자립주택을 짓기 시작해, 이듬해 가을 문을 열었습니다. 자립주택의 이름은 ‘평원재’. 첫 입주자는 그해 여름, 석암 베데스다 요양원에서 뛰쳐나와 탈시설 투쟁을 이끌었던 8명의 장애인들이었습니다.


이종각 선생님도 그곳 꼭대기 층에서 함께 살기 시작하셨습니다. ‘장애인일수록 좋은 걸 써야해. 그래야 AS가 잘 돼.’ 그건 선생님의 지론 같은 것이었습니다. 평원재는 온갖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누구나 살아보고 싶은 꿈의 집이었습니다.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고요, 한여름에 추울 만큼 에어컨을 틀어도, 한겨울에 더울 만큼 보일러를 틀어도 선생님은 절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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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17년 야학에서 연 고 이종각, 김호식 님 추모제의 홍보물. 정구형이 만들었다.

 

 


4 _ 작년 4월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01호에 차려졌습니다. 그곳은 정치인 김근태 님이나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열사 같은 유명한 분들의 빈소였던 곳이었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비싼 곳이죠. 저는 그곳에 앉아서, 어쩐지 이곳은 이종각 선생님답지 않은 빈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사람 많은 곳에 절대 나타나지 않고 요란스러운 걸 질색하셨으니까요. 빈소는 한산했습니다.


20년 동안 사회복지재단의 이사장이셨는데, 친지들이나 몇몇 지인 외에는 조문객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301호의 공간이 여느 빈소들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한편에 작게나마 입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겁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커다란 전동휠체어를 몰고 방바닥에 앉은 조문객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느라 눈치 볼 필요도 없고, 그게 불편해 복도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얼른 자리를 뜨지 않아도 되는 곳이죠. 우리는 하루 종일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녁이 되어 퇴근 후 찾아온 조문객들로 다른 빈소들이 북적거릴 때에도 301호의 저편, 방으로 된 빈소는 여전히 한산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 이곳은 우리를 위해 마련된 자리구나. 선생님께서 우리 밥 한 끼, 술 한 잔 대접하려고 준비하셨구나. 오지 말래도 올 사람들이니 이왕 온 거 편히 있다 가라고.’ 그제야 그 넓은 빈소가, 그 비싼 공간이 참으로 ‘이종각 선생님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종각 선생님이 소중했듯이, 그에게도 우리가 무척 소중했구나.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랬구나. 그에게 우리는 중요한 동지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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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고 이종각, 김호식 님의 영정

 

 

 

 

 


5 _ 평원재단이 있어, 수급자가 될 수 없었던 ○○언니가 돈을 모아 조용필 콘서트를 갈 수 있었고, 호식이형이 그 좋아하는 최신형 전자기기들을 살 수 있었을 겁니다. 평원재단이라는 뒷배가 있어, 2009년 장애인운동의 흐름을 바꾼 탈시설 투쟁이 가능했고, 평원재가 있어 ‘서울시민이 아니면 체험홈이나 자립생활가정에 입주할 수 없다’고 서울시가 밀어낸 사람들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평원재가 권력으로부터 어떤 보조도,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그곳이 너무나 ‘이종각스러운’ 공간이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그는 오랫동안 사회복지재단의 이사장이었습니다. 우리는 돈이 필요했고, 집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가졌고, 우리에게 그것들을 주지 않을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앞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그게 싫어서, 그렇게 도깨비처럼, 불쑥 찾아와 선물을 주고 재빨리 사라졌나 봅니다.


눈이 오면 새벽부터 눈을 치우고, 새해가 오면 멋진 달력을 걸어주고, 감이 열리면 감을 따주고는 사라졌습니다. 평원재 옥상에서 사람들이 고기 파티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그러라고 옥상까지 엘리베이터를 연결했지’라며 무척 뿌듯해했다던 선생님의 표정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는 군림하지 않았고, 간섭하지 않았고, 애정도 충성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디딤돌처럼, 징검다리처럼 그저 자신을, 평원재를 딛고 지나가게 했습니다.


4년 전 이맘때 저는 야학 20년을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었습니다. 3개월 동안 고군분투해서 처음으로 글 몇 편을 쓴 후 그걸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조마조마하게 사람들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읽어봐 주질 않더라고요.(ㅜㅜ) 성격이 소심하여, 읽어보라고 닦달하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었지요. 그때 이종각 선생님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다른 건 기억이 안 나는데 딱 한 문장이 기억납니다. ‘말씀이 비단 같습니다.’ 그 말씀이 저에겐 비단 같았습니다.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많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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