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봄여름 104호 - 83일간의 장례투쟁을 마무리하며

by 노들 posted May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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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5년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

83일간의 장례투쟁을 마무리하며
아직도 시설에서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면서.. 
잊지 않겠습니다.
by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조 경 미


올해 4월 20일은 지난해 12월 25일에 발생한 인천 해바라기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인 의문사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대책위 활동을 벌인 지 83일 되는 날이자, 희생자 장례식이 진행된 날이다. 장례 준비를 위해 단상에 어떤 물건을 놓을지 고민하였다. 아버님께 평소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과 물건에 대해 여쭤보았고,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에 조금의 위안이라도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정성스레 준비하였다.

당일 단상에는 평소 고인이 좋아하던 초콜릿 과자와 요플레, 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고인을 위한 사인펜 등을 준비해서 올렸다. 꽃다운 나이 27살, 마음껏 펴보지도 못한 채 억울하게 죽어간 상황과 맞물려 평안해 보이는 고인의 영정사진, 그와 함께 놓여있는 물건들이 한 눈에 들어오니 마음이 아려왔다.


해바라기 1.jpg

사진 : 인천 해바라기 시설에서 의문사한 고인의 영정



따뜻한 봄을 함께 맞이하지 못하고... 그는 왜 먼저 떠나야 했을까? 그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남은 과제들을 잊지 않고, 끝까지 싸워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83일간 힘들게 해서 미안해요. 남은 일들은 신경 쓰지 말고 이제 편안히 쉬세요.

장례를 치르고 보니, 어느새 83일라니... 그동안의 장례투쟁 기억이 아득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2015년 초 겨울,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조아라 활동가의 목소리. “얼마 전 티비에서 방송으로 나온 모 시설에서 장애인이 폭행으로 인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내용 보셨어요? 그 시설이 인천 소재래요......”

2014년 12월 25일 인천의 한 시설에서 이용인 한 분이 응급실로 실려 갔고,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에 입원한 일이 발생했다. 물론 이 사건은 TV 방송으로 나왔고, 나도 언론을 통해 보았다. 당시에는 “시설에서 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구나” 하고 가슴 아파했던 기억만 어렴풋이 난다. 일상적으로 수없이 많이 발생하는 사건 중 하나로 스쳐지나간 일이었는데, 그날의 전화 한 통으로 비로소 남의 일이 아닌 내 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다가왔던 것 같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시설비리를, 그리고 거주시설 이용인들이 겪는 반인권적 삶의 모습을 보아왔다. 그 10년의 시간 동안 내 마음이 덤덤해진 것 같다.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에 비해서 반감된 느낌이랄까? 실제 악몽 같은 고통을 겪었고, 그것을 헤쳐 나가야 하는 당사자들은 점점 선명해지는 고통과 마주하게 되지만, 반면에 그들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점점 둔감해진다. 나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또 이런 일이 생겼구나. 아이고, 어쩌나”하며, 소리 없이 죽어간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무감각해져가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다가온 해바라기 대책위 활동, 무감각해진 내 일상에 균열을 내주었다. 굳건한 시설 정책에 찬물을 끼얹고, 균열을 내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해바라기 3.jpg

사진 : 인천 해바라기장애인거주시설 이용인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2월 2일 정부서울청사 앞 기자회견


해바라기 4.jpg

사진 : 보건복지부는 즉각 진상규명에 책임 있게 나서라! 인천 해바라기 장애인거주시설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면담 요구 기자회견, 2월 17일 반포동 장관 집 앞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


12월 25일 병원에 이송된 후 급하게 연락을 받고 오신 고인의 아버지는 당시 아들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들의 전신에(입원 당시 오른쪽 눈과 몸, 옆구리, 허벅지 안쪽, 정강이, 발등 등) 피멍 자국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시설 측에 상처의 원인에 대해서 물었더니 ‘넘어져서 생긴 상처’라고 답변했다.


도대체 어떻게 넘어져야 전신에 피멍이 들 수 있을까? 12월 25일 이전에도 이미 수차례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고인의 부상은 이날 처음이 아니었다. 여러 진료 기록들을 살펴보아도 고인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없다. 더군다나 직접적인 사인이 된 경막하 출혈1)에 대한 진단 및 치료 기록이 전무하다. 사망에 이르도록, 의식불명이 될 때까지 경막하 출혈에 대한 치료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백번 양보해서 넘어져서 다쳤다고 가정한다면, 왜 이런 상태가 될 때까지 방치되어야 했을까? 시설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시설에서는 본인들의 잘못을 회피하기 바쁘니, 복지부가 책임지고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해야 할 부분이었다. 처음 대책위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할 당시 복지부는 경찰수사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자 하고, 관할 군청에서 해야 할 부분이라고 한 발 물러서기 바빴다. 그런데 이후 시설조사를 통해 작년 폭행으로 인한 추가 사망자가 확인됐다. 최근 경찰 수사 결과, 고인을 포함한 중증장애인 9명을 폭행한 혐의로 전·현직 생활재활교사 9명이 입건되었다. 진상조사를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대책위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조용히 지나갔을 것이다. 시설의 민낯을 또 한 번 보게 되었다.



수용시설 중심의 장애인복지정책은 이제 STOP!!


시설에서는 장애인이 자해 혹은 남에게 해를 가할 때 생활교사가 폭력으로 제압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쯤 아무것도 아닌 곳이다. 경막하 출혈이 발생해도 모르고 그대로 방치하는 곳, 생활교사들이 거주인에게 일상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곳, 그곳이 바로 장애인거주시설이었다. 중증장애인에게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란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시설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장애인거주시설 내 인권침해를 근절하겠다며 인권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거주시설의 인권침해는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문제가 된 해바라기 역시 지난해 인권실태조사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시설로 조사됐었다. 보건복지부의 인권실태조사가 무의미했다. 이것으로는 인권침해가 근절될 수 없다. 한 건물에 수십 명을 같이 살게 하면서, 그들을 케어할 종사자 수도 적다. (그들의 노동환경 또한 문제가 많다.) 지역사회와는 떨어져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위치한 시설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심지어 죽어도 모르고 지나친다.


고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시설 수용 중심 장애인정책이 만든 사회가 만든 죽음이다. 장애인도 학대받지 않고 안전한 삶을 영위할 기본적 인권이 있지만 대규모 시설 수용 중심의 장애인정책 속에서 학대와 관리 부실은 지속적으로 재발되고 있다. 때문에 이제 보건복지부는 시설 수용 중심 장애인정책이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탈시설-자립생활 중심의 정책과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


고인에 대한 장례일정은 끝났지만, 인천 해바라기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인 의문사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는 앞으로 이번에 문제가 된 곳에 대한 시설폐쇄와 그곳에 계신 거주인분들에 대한 탈시설-자립생활 대책 마련 등 남은 과제를 위해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관심과 연대를 해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함께 힘을 모아주시길 바라면서,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투쟁!


*경막하 출혈 : 뇌를 둘러싼 경막 안에서 외부 충격 등으로 혈관이 파열돼 출혈이 일어난 상태. 


해바라기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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