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을 격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노들야학으로
by 노들야학 영 선
야학은 통상적으로 ‘밤에 공부하는 학교(夜學)’를 뜻한다. 노들야학의 야학은 밤에 공부하는 학교라는 의미도 있지만 ‘들 위의 학교(野學)’를 뜻하기도 한다. 즉 벌판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공부를 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나에게 야학은 후자의 의미가 상당히 강했다.
나의 대학교 생활은 전공이 ‘노래패’이고 부전공이 ‘사회복지’라고 할 만큼(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가지고 있는 전공 책은 딱 2권이었다. 그것도 새것으로 모셔져 있던.) 소위 말하는 운동권 노래패가 전부인 생활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학교를 다니다 3학년이 되니, 우리가 항상 평등을 외치지만 학교생활 내에서는 오히려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면이 많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선후배 간의 위계, 토론은 거의 없는 노동운동에 대한 일방적인 학습 등. 이것이 내가 지닌 반항적인 기질 탓이건 실제로 그런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건, 어쨌든 약간의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노들장애인야학이라는 단체를 발견했다. 그것도 민주노총 홈페이지에서. 뭔가 ‘필’을 강하게 받은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노들야학 교사 지원을 했다.
그렇게 당시에는 구의동 정립회관에 자리를 잡고 있던 야학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노들야학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개념을 내가 예상했던 바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정말 가당치도 않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나이·성별·장애 등 모든 것을 떠나서 누구나 평등하게 얘기하고 경청하고, 반박과 비판이 이어졌다. 마치 헤겔의 변증법처럼 반박과 반박에 의한 최고의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은 비합리적으로 보일만큼.
사실 이러한 과정은 업무나 활동에서 비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어떤 결론을 도출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합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나의 잘못된 타성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원리인 소수의 의견과 다양성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아왔던 타성.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타성은 내가 제도권 교육을 통하여 오랫동안 몸으로 익혀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노들야학은 나에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평등이라는 개념을 알게 해주었다.
군대를 가게 되면서 야학 활동은 자연스럽게 중단되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도 점점 세상과 어느 정도 타협도 하고 합리성도 따지면서 좀 더 둥글게 살게 되었다. 늘어난 몸무게와 뱃살만큼이나. 그러다 문득 이렇게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10여 년 만에 다시 야학을 찾게 되었다. 교사는 물론 학생도 대부분 모르는 얼굴들이었고, 야학의 운영 시스템도 많이 바뀌었다. 특히 지자체로부터 일정한 지원금을 확보하면서 ‘휠체어를 밀고 아차산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환경과 공공성을 쟁취했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더욱 인상에 남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참여했던 교사회의 시간에 예전과 똑같은 소통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이런 활동이 있었기에 노들야학이 굳건히 버텨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또한 바뀌지 않은 것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여전히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나는 문화 쪽 일을 하고 있는데, 문화시설들의 장애인 접근권이나 여러 환경들이 예전보다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관점에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한다면 좀 더 많은 평등을 이룰 수 있을 텐데. 하얀 집과 파란 집에서 정책을 만드는 분들, 그리고 우리가 머리로만 배워왔던 평등의 개념을 몸으로 배우며 실천하고 싶은 대중들은 꼭 노들야학에서 활동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사진 : 홍영선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