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봄여름 104호 -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김철수 님

by 노들 posted May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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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나는 왜 이곳에 와 있는가, 묻고 또 물었다
활동보조인 김 철 수


활동보조인_김철수.JPG

내가 장애인 활동보조를 직업으로 택하여 시작한 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하루는 길지만 세월은 꽤나 빠르게 지나갑니다. 지금이면 한 번쯤 그간 겪어왔고 살펴왔던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나 자신을 다듬어야 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이 일을 왜 택했던가 후회가 된 때도 있었고 보람 있었던 때도 있었는데, 그 일들을 그간 간간이 메모해두었습니다. 추려놓은 쪽지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아! 그때는 그랬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레 느껴보기도 하고 또는 왜 그렇게 했을까, 좀 더 고민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을 입속에서 웅얼거려 봅니다.

그간 여러 명의 이용자들을 겪어보면서 활동보조인으로서의 생활에 힘들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대변으로 어지럽혀진 실내에 들어설 때의 황당함이 있었고, 술병과 엎질러진 술잔들과 안주들이 뒤섞여 엉망이 된 실내에 들어설 때의 곤혹스러움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여 마시고 싶었던 물병이 엎어져서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고 방바닥에 쏟아진 물로 흥건히 젖은 바닥과 그 주변에 생활용품들이 널브러진 실내로 들어섰을 때 절절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또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이용인의 말을 받아주면서 방을 청소할 때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때그때마다 나는 활동보조 이용자 입장에서 나 스스로 이해하려고 했는그럴 때면 내가 내게 물어보게 됩니다.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느냐고 스스로 묻고 또 묻습니다.

답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때그때의 대답들은 혼란스럽거나 어지럽혀진 그 공간들과는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그 대답들은 분명했습니다. 그 답들은 간단하고 명료했습니다. 그간 간간이 메모했고 사색했던 것들에 의하면 그 대답은 두 가지로 정리되더라구요.

우선 나는 이곳에 대접받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고, 그 다음은 내가 이곳에서 할 일이 있어서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말해봅니다. 그러려면 그때그때마다 먼저 나는 나를 온전히 내려놓고 산만하게 어지럽혀진 곳들을 깔끔하고 청결하게 정리 정돈하면서 이용자들 개개인이 활동보조인에게 많은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이용자들이 원하는 일은 개개인이 다 다르지만, 그 끝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활동보조인이 이용자 입장에서 세심하게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것입니다. 결국 개개인의 활동보조 이용자들은 주변 생활환경의 청결과 정리 정돈, 이를 테면 목욕할 때 몸부터 씻을지 아니면 머리부터 감을지, 밥을 지을 때 물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또는 원하는 찌개를 요리할 때에 식재료를 닦고 씻어서 어떻게 썰고 으깨어 넣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원하는 대로 끓여진 찌개 맛을 보고 음미하면서 “원하는 그 맛이에요”하며 좋아하는 것과 같은 살아가는 데 가장 기초적인 욕구가 충족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장애인들이 하고 싶어도 만들고 싶어도 되어지지 않는 것들을 활동보조인이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여 주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크고 원대한 것이 아닌 우선 일상생활에서, 신체 활동 지원에서 어디가 불편해 하는 곳이고 어떻게 보완해 주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식사보조를 할 때 흘리지 않고 제대로 먹을 수 있도록 보조해주고, 면 종류를 식사할 때 종이컵에 면을 국물과 같이 덜어 넣어 마시듯이 먹게 하여 맛을 즐길 수 있게 한다든지, 국은 빨대를 이용하여 빨아 마시도록 한다든지, 밥을 뜬 수저에 다른 반찬을 얹어주는 것을 좋아하는지 따로따로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를 살펴본다든지 하는 것들처럼, 사소하지만 세밀한 것들의 살펴봄이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일이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봅니다.

규칙적인 의복 세탁과 침구 세탁, 음식물쓰레기와 생활쓰레기를 분리해서 내놓는 일들이라든지, 식수관리를 어떻게 해야 위생적으로 원하는 물을 마시게 할 수 있다든지, 시장에서 가격흥정을 할 때 이용자 입장에서 알뜰하게 챙겨준다든지, 외출할 때 많은 사람으로 혼잡스러울 때 앞장서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길을 터주어 무리 없이 가도록 한다든지,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저상버스와 일반버스를 구분하여 저상버스가 진입할 때 정류장 입구에서 장애인이 타야 함을 미리 알려 장애인 이용자가 무리 없이 버스에 승차하도록 한다든지... 이런 일상적인 것에서 서로의 의지가 확인되고, 그 확인되는 과정에서 믿음의 싹, 다시 정확하게 말해서 활동보조 이용자와 제공자 간에 서로 이해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그 싹들의 잎이 펴질 때가 활동보조인이 그저 장애인 이용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활동보조인으로서 나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 이용자는 몸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지만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움직일 수 없는 몸을 누군가 보조해준다면 삶을 제대로, 스스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또렷이 살아있는 눈동자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나는 내가 해야 할 역할을 보았습니다. 또한 이용자와의 대화에서 느끼는 것들이 있는데, 즉 대화를 하면 할수록 대화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 잘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이용자가 스스로 자학하고 포기하려는 생각과 처신에서, 삶의 의지를 다시 되살리려고 처절하게 노력하는 삶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활동보조 제공자로서 뚜렷한 방향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나의 활동보조 하루 일과가 끝나갈 때쯤, 이용자의 전동휠체어 배터리 충전상태를 확인하여 충전기를 꼽아놓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 수첩을 꺼내봅니다. 내일 나의 일정은 어떻게 되지? 다시 한 번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 보면, 내가 내려야 할 곳에 다 와 가고 있음을 알리는 멘트가 흘러나옵니다. 백팩을 챙겨 버스에서 내려, 왼 손목을 들어 시계를 봅니다. 밤 12시 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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