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전국장애인대회
3월 26일에 대한 나의 의미
조승화
걷기와 식물을 좋아하고 책모임 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출근한 지 2개월 되었습니다
2002년 3월 26일
최옥란 열사의 기일인 3월 26일이 되면 전국장애인대회, 420공투단 출범식, 장애 열사 합동 추모제 등 다양한 집회, 다양한 목소리 그리고 다양한 직접행동들이 진행된다.
나에게 3월 26일은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의 이름 ‘최옥란’을 기억하게 하는 날이다. 최옥란 열사는 여성 중증장애인이자 도시 빈민으로서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장애인 생존권을 요구하는 투쟁을 했던 인물이다. 2001년 12월, 최옥란은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너무나도 적은 기초생활수급비(생계급여) 28만 6천 원으로는 살 수 없음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복지부 장관에게 찾아가 낮은 생계급여 ‘이 돈으로 복지부 장관이 한번 살아보라’고 항의하며 자신의 수급비를 반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 3월 26일 최옥란 열사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최옥란 열사의 명동성당 농성 투쟁을 기점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격화되면서 ‘기초법연석회의’가 구성이 되었고 이는 2004년 ‘빈곤사회연대’ 창립으로 이어졌다.
2005년 어느 여름밤
2005년 어느 더운 여름밤. 나는 강남구의 철거가 예정되어 있던 한 판자촌에 있었다. 이 판자촌 한가운데에는 주민들이 대책 없는 철거에 항의하며 세운 망루가 있었다. 그 망루 꼭대기에 오르면 당시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라고 말이 많았던 타워팰리스가 더욱 예쁘게 보였다. 나는 그 때 빈곤사회연대가 주최하는 ‘여름빈민현장활동’의 참여자로 이 망루에서 지내고 있었다. 여름빈민현장활동은 홈리스, 노점상, 철거민, 장애인 등 다양한 현장의 투쟁하는 당사자들과 연대하며 운동을 경험해보는 활동이다.
거기서 사람들과 함께 본 영상에서 나는 ‘최옥란’을 처음 알게 되었다. ‘최옥란’이라는 여성 장애인이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하고 복지부 장관에게 복지수급비를 반납하는 영상을 보고 나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과 모여 잘 알지도 못하던 ‘최옥란’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아,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불평등한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투쟁하는 사람의 이야기. 이전까지 내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최옥란을 비롯해 처절하게 ‘생존권’이라는 이름으로 투쟁하는 도시빈민을 목격하면서 일종의 인간적 경외심, 그리고 나의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 해 나는 이 복잡한 맘의 결과로 사회운동단체 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2005년, 서울시 강남구 포이동 판자촌, 그 너머로 강남의 빌딩 숲이 보였다
이런 운동과 만나고 싶다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관련된 투쟁은 오랜 시간 계속되었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이 기초법관련 투쟁이 유의미한 성과를 낸 것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독소조항인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하며 진행된 투쟁을 통해서였다. 최옥란 열사가 돌아가신지 딱 10년이 되던 해, 2012년 8월 빈곤사회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운동 및 반빈곤운동 단체들은 광화문 지하도에서 1842일 (2012년~2017년) 동안 농성을 진행했다.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약속을 받아내며 농성은 마무리되었다. 이후, 이 독소조항은 일부 폐지되었지만, 완전 폐지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이 농성을 마무리하며 농성 물품을 정리하는 자리에서 (나의 개인적 생각이지만) 이 농성 투쟁이 최옥란의 명동성당 농성 투쟁에서 비롯되어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더 뭉클했던 것 같다.
이후에도 나는 활동을 하면서 문득문득 영상에서 본 최옥란의 명동성당 농성 투쟁 장면과 그녀의 처절하고 절실한 표정 하나하나가 생각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반빈곤, 장애인 당사자들의 투쟁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25년 3월 26일
올해 3월 26일에도 여전히 장애인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장애인 운동이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고 얘기라도 하듯이. 이 속에서 나는 더욱 선명하게 영상 속 최옥란의 표정과 목소리를 듣고 본다. 그리고 최옥란을 비롯한 지난 선배들의 이야기들은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건데’라는 부담스럽지만, 중요한 질문과 고민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