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142호 - [조선동이 돌아왔다] 열 길 물속도 모르겠고 조선동 한 길 사람 속은 더 모르겠다 / 한명희

by 루17 posted Dec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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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이 돌아왔다

열 길 물속도 모르겠고 조선동 한 길 사람 속은 더 모르겠다 

 

 

 

 한명희

다시 노들야학으로 돌아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조선동1.jpg

 

  조선동이 돌아왔다. 주정뱅이 호식의 친구, 노들장애인야학(노들야학)의 영원한 악동으로 기록되었던 그. 나는 조선동을 모른다. 노들야학의 학생이었던 그가 2000년도 어느 시점에 대규모 거주시설인 꽃동네로 스스로 입소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간혹 가다 호식에게 들었다. 노들야학이 정립회관에 얹혀살던 시절, 언덕배기 건물 아래 포장마차에서 술을 진탕 함께 마시던 친구 한 명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함께 꿈꾸며 낄낄 웃었던 호식이 떠난지 10년이 되었다. 그렇게 추억 속의 인물인, 조선동이 노들야학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무려 노들야학 1층 주차장에서 농성을 하겠다고 선포하면서 김포의 모든 짐을 바리바리 싸서 말이다.

 

  조선동. 김호식이 나에게 준 숙제 같았다. 악당이라 불리운 선동은 2008년 교통사고 이후 목디스크를 포함하여 장애/건강이 악화 되면서 꽃동네 시설로 입소했다. 현재만큼 장애인 자립생활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못했던 그 시절, 선동에게 인사를 하러 온 그 자리에 선동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언어장애 때문인지 성격 탓인지 말을 떼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고 하는 선동은 그 당시의 마음을 여러 갈래로 묻자, “노들야학 너네들 잘먹고 잘살아라”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래, 나라도 그랬겠다. 마음껏 도로를 활주하며 살던 당신이 그 꽃동네 거주시설로 걸어서 들어갔는데, 왜 6년만에 휠체어를 타며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나는 좀 억울해졌다. 

 

  선동은 가평 꽃동네에서 김포로 탈시설을 했다. 서울이 고향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서울에 노들이 있기 때문인지, 아무튼 서울의 중심 종로구로 오고 싶어 했다.(이 이유가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마음은 매일 파도가 친다.) 선동은 자립 이후 집에서 매일 술만 마셨다고 했다. 이유는 서울로 오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 정도면 서울시장만큼 서울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와도 매일 술을 마시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도 선동은 서울로 오는 중인 걸까.

 

  그가 좋아하는 서울, 종로구에 살고 싶다라는 의지로 다시 노들로 3년만에 트럭을 불러왔다.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 없이,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이.

 

  그런데 당연히, 서울살이는 어떠한가. 쉽지 않다. 지역을 이전했다고하여 장애 한 끗, 달라지지 않았다. 김포시에서는 24시간 지원을 받았으나, 서울로 이전하며 활동지원시간이 깎였다. 최소 한달 120시간의 지원 공백이 발생했으니 이 사람 어찌 살란 말인가. 

 

  거주지를 옮기며 활동지원사분들의 근무 공간도 바뀌었다. 그리고 선동의 노들을 대상으로 하는 농성의 꿈은 실제 책임 주체인 서울시로 집을 옮겨간다. 서울시에 선동의 간이침대를 폈다. 선동이 살고 싶은 종로구는 구도심으로 지원주택1)이 1채도 없다. 

 

1) 지원주택이 뭐냐고? (출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https://www.youtube.com/watch?v=UW4iQMnSdqI

 

  땅값이 비싼, 종로구이다. 서울시는 지원주택이 자체적으로 불가하다고 한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지자체의 책임으로부터 시작한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행정적으로 어떠한 지자체도 책임지지 않았다. 거리에서 선동은 그렇게 침대와 함께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3월, 윤석열탄핵과 함께 그렇게 선동이 우리에게 왔다. 

 

  주거도, 활동지원도 선동을 둘러싸고 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일단 집에서, 거리에서 살아도, 지자체의 최대 지원을 받아도, 종합점수표2) 한계로 인한 지원 공백이 발생한다. 그렇게 선동은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로비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종합점수표의 문제는 2019년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에 실제 활동지원서비스의 주요한 근간이다. 개인의 삶을 보지 않는 종합점수표는 장애로 인한 자신의 몸의 손상을 스스로가 증명해야한다. 종합점수표의 심사는 5분도 안되어 일상생활에 대한 지원을 묻고 “알겠다”라고 한다. 무엇을 대체 알았다는 걸까?

 

2) [알고 싸우자, 알싸하자!] 장애등급제 3편: 장애인서비스지원종합조사표는 종합조작표!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

https://www.youtube.com/watch?v=ak4T4LhaGQ0

 

  누군가의 삶이 점수로 달라질 수 없다. 그렇게 선동의 개인의 요구는 모두의 구호로 만들어졌다. 

 

  종합점수표 폐지의 요구가 전국투쟁으로 촉발되었다. 보건복지부는 해당 선동의 사례로 대안이 없다라고 하였고 국민연금공단은 선동의 개별 구제방안은 적극 알아 보겠다 라고는 하지만 종합심사제 폐지는 우리의 권한 밖이라고 다들 내뺐다. 그렇게 선동은 여전히 이기적인 요구를 외친다. 알 수 없는 표정의 조선동.

 

  선동은 종로구의 100시간 활동지원서비스의 유일한 당사자이다. 25개 자치구별 구비 추가지원기준 및 지원 서비스양이 너무 다 상이한 것이 사실 문제였다. 시작이 되었으니, 다른 조선동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넘실될 지역사회의 조선동들이 몰려온다.

 

  나는 영원히 조선동이 이기적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노들바람을 그와 읽으며 언젠가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남겨두고, 바다 앞에서 소주 한잔하고 싶다. 나는 그가 계속 이기적이었으면 한다. 비루하게 만드는 이 야비한 사회에서 그렇게 계속 부서지고 격돌하는 선동이 더욱이 모나지게 살아가 수 있도록 함께 하고 싶다. 

 

조선동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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