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
3월 8일, 기억나?
린
거북이랑 공룡을 좋아합니다
2025년 3월 8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주제는 ‘3/8 여성의 날, 태연재활원 인권참사 고발 및 공동대책위원회 출범대회, 퇴진집회 본무대로 포체투지, 정부청사 앞에 농성장 차리기 등’이었다. 이날 많은 일이 있었는데, 모든 내용을 내가 다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시연에게 물어봤다. 시연은 이번 학기 월요일 3·4교시에 ‘평등한 약속’ 수업을 하고 있다. 또 3월 8일 뿐만 아니라 다른 현장에도 많이 나가는 사람이다. 따뜻하고, 강하고, 꽤 웃긴 사람이기도 하다.
이 글은 2025년 5월 29일 국민연금공단에서 진행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종합조작 구간 박살> 투쟁 현장에서 시연과 나눈 대화다. 3월 8일의 투쟁은 한 번의 행사이기보다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변화와 그 의제들이 이어지는 흐름 속의 한 지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대화도 3월 8일 하루에 머물지 않고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5월 29일 국민연금공단 투쟁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다. 자연스럽게 오간 대화에서 내가 한 말은 이탤릭과 대화 속 괄호로 정리했다. 시연 고마워.
탄핵 광장에서 다이인과 포체투지
린: 두 달 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3월 8일은 아직 좀 쌀쌀한 때였고 일정이 많았어. 여성의 날 부스 있었고, 그다음에 4시쯤에 경복궁역 앞으로 가서 울산 태연재활원을 고발하는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참사’ 고발 및 공동대책위원회 출범대회가 있었고, 또 이동해서 탄핵집회에 합류하고, 그 안에서 다이인하고, 포체투지하고. 또 정부청사 앞에서 투쟁하는 것까지. 시연 그때 해질 때까지 있었는데, 기억해?
시연: 잘 기억 안 나는데…….아 여성대회에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 퀴어- 네트워크에서 만든 피켓 스티커 후원해서 사러 갔어요. (그거밖에 기억이 안 나?) 네……. 노회찬 재단에서 장미꽃도 줬어요. 탄핵집회부터 기억이 나. 광화문에서 태연재활원 인권참사 찌라시도 뿌렸는데, 탄핵이라는 의제 밖에도 중요한 일이 많다는 생각을 했네요. 근데 사람들이 찌라시를 받아줘도 자기가 갖고 있던 여러 전단 사이에 그냥 끼우니까, 큰 관심은 없는 느낌이었고….
아, 그리고 우리가 태연재활원 참사 때문에 다이인하고 있는데, 옆에 지나가던 집회에 온 할아버지들인지 아니면 지나가는 할아버지들인지 모르겠는데, 그분들이 왜 누워있는 거냐고 갑자기 물어보는 거야. 그래서 “장애인 시설에서 학대해서,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이러다 죽는다고 누워있는 거예요. 죽은 척하는거예요.” 하니까 아 그냥 죽지 뭣 하러 누워 있냐는 거야. 갑자기 두 명이 그렇게 폭언을 하고 나를 빤히 봤어. 그래서 “연세도 많으신 분들이 그러시면 안 되죠. 같이 잘 살자고 하는 거에요.” 했는데 아무튼, 폭언을 들었고, 황당했어.

린: 그때 다이인도 하고, 포체투지도 했잖아.
시연: 맞아. 포체투지는 탄핵집회 행렬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식으로 했었는데, 일단 너무 구간이 길어서 하시는 분들이 너무 힘들었을 것 같고, 그리고 왜 포체투지를 하고 있는 건지 다른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까? 잘 전달되고 있을까? 같은 생각을 했어. 비상행동 진행하는 사람들이랑도 마찰이 있었는데, 우리가 트러스를 이렇게 한가운데에 세우면 안 된다고 제재했어. (트러스가 뭐야?) 큰 현수막을 걸 수 있는 뼈대 같은 건데 (그 트러스가 안전상 위험하다는 얘기로 비상행동이랑 부딪혔다는 거지.) 맞아 근데 솔직히 위험해 보이긴 했어. 지나갈 공간이 타이트했어 가지고. 그래도 우리가 이 행동을 하는 이유를 전달하기 위해서 트러스를 가져갔던 거겠지. (장애운동 집회들은 간격이 좀 넓잖아.) 맞아 탄핵집회는 밀도가 너무 높고, 사람들 너무 다닥다닥 붙어있었어.
아 그것도 있어. 탄핵 한창 할 때, 국회에서는 12월 14일에 소추안이 통과됐고, 4월 4일에 파면이 됐잖아. 이날 3월 8일에 윤석열이 풀려났어. 한참 포체투지할 때 갑자기 사람들이 욕을 하는 거야. 그래서 뭐지 했는데 윤석열이 갑자기 석방됐대. 그래서 나도 욕을 했지. 그때 시민 발언에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분노가 많고 그랬습니다.
정부청사 앞에서의 천막 투쟁
린: 3.8 일정 꽤 늦게 끝났더라.
시연: 그거는 이제 천막을 치려다가 못 쳐서. (천막을 어디 치려고 했어?) 그 정부청사 앞에다가 치려고 했어. (그럼 포체투지를 광화문에서 정부청사까지 하는 거였어?) 아니야. 광화문에서 동십자각 이 정도까지 포체투지로 가고 여기에서 해산해서 한 바퀴 돌았어요. 한 바퀴 돌아서 정부청사 앞에서 다시 걷거나 굴러서 만났지.
린: 정부청사로 한 이유는 뭐였는지 기억해?
시연: 아니……. 근데 이런게 사실 다 공유되지 않잖아. 어디서 뭐 하는지, 장소 선정 이유 같은 게 막 그렇게 상세하게 전달받지는 않아요. (어느 정도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약간 그런 것 같아요. 정부청사에 가서 데모를 이어간다 해가지고 아 데모를 거기서 이어가는구나, 그런갑다, 했지.
정부청사 앞에 가서 원래는 농성장을 치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경찰이 텐트를 뺏고, 엄청나게 방해를 했어. 정부청사 앞에서 태연재활원 참사에 대해서 책임을 져라, 응답하라고 농성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경찰이 천막인가, 텐트를 뺏으려고 했어요. 활동가들은 청사 바로 앞에 있고, 그 밖에 그거를 지키는 다른 활동가들이랑 제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 주위로 경찰이 척척척 와서 스크럼 짜고. 대치를 꽤 오래 했고, 지나가던 시민, 집회 온 시민도 되게 많이 구경하고 가셨어요. 구경하고 연대 발언도 하고.
한 분이 진짜 발언을 잘하셨는데! 내가 열심히 큰 목소리로 경찰한테 항의하고 있으니까 철균이 나한테 발언을 시킨 거야. “발언할 수 있겠어요?!”이러고 마이크를 갑자기 딱 내밀었어. 내가 “아뇨?!” 이러니까 뒤에 있던 연대 시민분이 제가 할게요 하고 가져갔어. (멋있다.) 그분이 “저는 전장연이랑 아무 상관도 없고, 그냥 연대 시민인데 경찰들 진짜 너무 한 것 같아요.” 이런 연대 발언을 했어요. 멋있었어요.
린: 신기한 경험이네, 탄핵 광장에서 할 수 있었던 경험이다.
시연: 그리고 이때 조선동 님이 김포에서 서울로 오기 시작하셨던 때라, 3월 7일 전날에 서울시청 1인 농성을 하고 계셨어. 그래서 3월 8일에 여성의 날이기도 하고, 탄핵 집회이기도 하고, 태연재활원 인권참사도 알리고, 잘 모르는 어떤 아저씨도 갑자기 서울로 자립하신다고 해서, 왜 서울로 자립하려고 하시지, 뭐 이런 많은 생각이 드는 집회였어요.
린: 전반적으로 어땠어? 하루가 길었는데.
시연: 참 힘들었다. 근데 왜 이렇게 힘들었냐면, 아까 말한 것처럼 여러 상황이 섞여 있어서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여성의 날은 내 안에서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사실 3월 8일이구나, 와, 장미꽃, 끝. 그땐 탄핵이 엄청 큰 이슈인데도, 그 태연재활원 인권참사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힘에 대단했던 것같아요. 탄핵이라는 이슈에 집어삼켜지지 않는 거.

아 천막 하니까,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도 생각난다.
시연: 420 날에도 혜화동에서 고공농성하고 있는 동지들 응원하러 갔다가, 앞에 천막을 치려다 실패했는데, 그때는 즐겁기보다는 힘들었어요. 그냥 그런 생각을 했어요. 농성장을 친다면, 이게 왜 필요한지 좀 알고 싶다. 일이 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정부청사 바로 앞에서 이 사람들을 지속해서 압박하는 데 필요한 거겠지 싶은데. 그런 것을 사전에 듣고 함께하는 게 아니라, 같이 화내고, 같이 싸우면서 깨닫게 되는데. 어떨 때는, 그냥 처음부터 농성장이 필요하다는 믿음 같은 게 잘 잡힌 채로 가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그 뒤로 이어진 투쟁의 방향들은 다 좋다고 생각해요. 다 필요하고 생각하고.
아, 또 420 때 재밌었던 게, 그 DIY 깃발 만들기 했던 거. ‘나는 몇 구간이 아니라 OOO입니다.’ 이거 깃발 만들기를 했는데, 그거를 장기형이랑 인혜 언니랑 했어. 근데 장기형도 인혜 언니도 너무 구간이, 활동보조 시간이 안 나오는 거야. 더 많이 필요한데. 그래서 처음에는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가 안 됐다고? 아, 그래.’ 정도로 알다가 ‘정말 폐지가 안 됐구나. 말도 안 되게 복잡해지기만 했구나.’ 같은 생각을 그 사이에 했던 것 같아요.


린: 깃발 멋있었어.
시연: 그니까 깃발 멋있었는데. 장기형 10구간인데, 인혜 언니는 15구간이래. (왜? 진짜 모르겠네.) 레알. 나도 모르겠어. (그래도 매번 나오네 현장에.) 내가 직업적 데모꾼도 아니고. (비직업적 데모꾼이다.) 더 수상해. 비직업적 데모꾼? 이것 뭐예요? 근데 아는 사람들이 제도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차별을 당하는 게, 보다 보면 속상하잖아.
레알 처음 본다
시연: 근데 뭔가 중요한 내용이 없네, 뭐가 필요할까? 포체투지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린: 뭐, 근데 그걸 알고 싶었으면 활동가 인터뷰를 했겠지.
시연: 그럼 왜 나를 한 거야.
린: 그냥 같이 한 사람이 궁금했어.
시연: 이런 얼레벌레 인터뷰를 어떻게 쓰려고 하는 거지. 잘해봐요. 아 뭘 쓰는 거야. 개무섭다.
린: 어떻게 마무리하지? 오늘 여기 현장에 대한 이야기로 끝내볼까?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종합조작 구간 박살> 투쟁.
시연: 너무 좋다. 조선동님 나왔을 때, 거기서 천막 치는 게 실패하고 그 앞에 솔라티에서 조선동 님이 노숙을 시작하셨잖아. 그래서 뭔가 그때부터 <장애등급제 이제 완전폐지> 시동이 드릉드릉 걸렸던 것 같은데, 두 달 동안 여기 국민연금공단 남부지부까지 왔네요. 정말 대단한 것 같고요.
린: ‘정말 대단하다’로 끝내면 돼?
시연: 그러지 말고 잘 정리해주세요…. 종합점수표가 아닌 장애인의 삶을 봐야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정말 그래. 6등급을 폐지해놓고, 15구간으로 나누는 거 이거 정말 황당하거든요. 이딴 것도 폐지? 이딴 거 처음 봐. 레알 처음 보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