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
여기 장애인도 있다!
글 박지호 노들야학 학생, 전장연 활동가 박지호입니다
조력 영희
저는 작년 12월, 여의도부터 쭉 갔어요. 노들야학 총회로 한 번 정도는 빠졌어요. 이건 비밀인데.. 사실 그날 날씨가 너무 추워서 가기 싫었어요.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날 집회 끝나고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세계장애인의날이라서 사람들이 여의도에서 1박 2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시간에 갈 수도 없고 어떡해요. 그냥 TV로 보고 있었어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비상계엄이 이유가 있어야 하잖아요. 지금 북한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쿠데타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윤석열이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비상계엄을 선포한거잖아요.
그 다음 날 병원 예약이 있었는데, 병원 갔다가 여의도에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냥 집으로 갔어요. 그래서 그 주 토요일 부터 ‘장애인도 여기 있다’고 보여 주고 싶었어요. 여의도 진짜 추웠는데, 마음먹고 그렇게 계속 나갔어요.
3월 말쯤 헌법재판소 앞에서 일이 있었어요. 그날이 헌법재판소가 시간을 질질 끌어서 분위기가 안 좋은 날이었어요. 그래서 어떤 할아버지가 기분이 안 좋았는지 저에게 장애인 비하하면서 시비를 걸더라구요. “장애인 복지가 예전보다 좋아졌다” 그러면서 “좋은데 집에나 있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그냥 무시하고 가자고 활동지원사가 이야기를 했어요. ‘거기서 싸우면 뭐할까’하고 저도 무시하고 왔어요. 괜히 장애인은 약자라고 생각해서, 장애인인 저에게 시비를 걸었던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야학 선생님에게 이야기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이야기해 봤자 다 비장애인이고 그 할아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그냥 넘어 갔어요.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경복궁역에서 농성장 지킴이를 할 때였어요. 탄핵 지지하는 분이 “고생 많이 하시네요”라고 하며 간식도 주면서 응원을 해주시더라구요. 피곤하고 그랬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안 피곤하고 힘이 나요. 지하철 선전전도 나 혼자 있을 땐 힘이 없고 괜히 짜증나는데,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괜히 신나고 힘도 나고, 고맙고 그렇잖아요. 고맙고.. 아직은 우리 투쟁을 모르는데, 사람들이 많이 오면 우리 투쟁이 빨리 끝날 것 같아서 힘이 나요.
장애인도 사람이고, 일하고 이동해서 연대까지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많은 국민들이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곳에 중증장애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매주 토요일에 집회를 나갔어요. 그럼에도, 저도 가기 싫은 날이 있었어요. 감기 걸려서 너무 아픈 날이었는데, 너무 가기 싫었지만 저도 모르게 나간 것 같아요. 어느 순간 탄핵집회에서 조끼를 입고 피켓을 들고 있더라구요. 감기약을 먹으면 또 조금 괜찮아져서 나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아프고. 그래서 같이 사는 부모님께 욕도 먹었어요. 감기 걸렸는데, 그 추운 날 밖에 나간다고. 그래도 그 현장에 계속 나갔던 것 같아요. 빨리 탄핵시켜, 장애인의 삶이 조금 나아지길 희망하면서 나갔어요.
그리고 조금 섭섭한게 있었어요. 노들야학에 학생들이 많이 있잖아요. 공공일자리도 다시 복직시키고 해야하는데, 저도 모르겠는데 조금 섭섭해요. 야학 학생들에게 섭섭했어요. 나만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탄핵 집회 때, 학생들이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서 그게 섭섭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만 욕을 먹을까봐 학생들에게 말을 해보진 못했어요. 학생들의 마음이 이해는 가는데, 몸이 아프고 피곤할 때는 학생들에게 더 바라게 되는 것 같아요. 같이 많이 나가서 힘도 되주고, 많이 나온 날은 아픈 사람들은 한 주 쉬기도 하고.
4월 4일, 광화문에 있었는데 기각이 될까봐 걱정이 되었어요. 언론이 너무 기각될 수 있다고 하니깐 걱정이 되더라구요. 기각되면 윤석열 메모지에 민주노총, 전장연 등이 있어서 죽을까 봐 걱정되었어요. 기각되면 다시 기자회견하는 비장애인 활동가는 다 잡아가고, 장애인 활동가들의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다 없애버리고 그럴 것 같아서 걱정되었어요.
다행히 분위기 보니깐 기각이 안 되고 인용될 것 같았어요. 인용이 되어서 모든 사람이 동지가 되어 다 울고, 껴안고 그랬어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이상해서 기분이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기분이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어요. 4월 한 달 동안 한 번 빠지고 나갔으니깐, 어떤 활동가는 저에게 축하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구요. 그러니깐 슬프더라구요. 왜 슬펐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렇게 탄핵이 인용된 날, 저는 서울대병원 앞에 가서 장애인 고용 안하고, 전담창구 마련도 안하는 장애인차별 대학병원 피켓팅을 했어요. 그래도 기분은 좋더라구요. ‘이제 오세훈만 아웃시키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오세훈이 대통령 선거에 안나와서 그건 좀 아쉬워요. 아웃시키지 못해서.
빨리 오세훈은 전장연과 대화하고 공공일자리 복직시키는거, 그게 저의 바람이에요. 그래서 혜화역 아침선전전에 나오는 활동가들과 지하철공사 걔네들도 다같은 노동자인데 서로 고생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아침마다 치열하게 싸우기 싫은데, 공사 직원들도 지령을 받아서 그러는 거잖아요. 마음은 우리 모두 똑같겠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의 이야기가 담긴 글을 봐주신 후원자들께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