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차와 산책
김진수
노들야학 교사 진수입니다
저는 산책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차를 배우고 있습니다. 자동차 아니구요.
마시는 차. 흔히 말하는 ‘다도’라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교단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노들바람에 글을 쓰게 되면 자기 소개 글을 두세줄 정도 추가로 써야 하는데, 예전 글을 보니 제 소개를 이렇게 했더군요. ‘전 산책을 좋아합니다. 산책이라는 글자를 가만 보니 산도 있고 책도 있네요.’ 이번 학기 제가 맡은 과목의 주제는 ‘산책과 차’ 입니다. 학생분들과 차를 마시고 많이 걷고 싶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런 마음으로요. 청솔 1반 학생들과는 여러 주제로 수업을 함께 했습니다. 수학 국어 과학 등등. 학생분들이 모르는 글자와 수 개념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학생분들이 평상시 많이 사용하고 보는 글자 위주로 수업을 했고, 수 개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들다방을 자주 이용하시니 들다방에 적혀 있는 가격이라든지, 통학할 때 타고 다니는 버스 번호라든지 이런 것들을 함께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야학에서 수업을 하려니 막막했습니다. 기존에 했던 것들을 반복해서 하기는 싫었습니다. 예전, 수업을 할 때면 경남누나는 이 말을 자주 했습니다. ‘다른 것, 새로운 것, 안 해본 것’ 야학을 오래 다닌 학생들에게 매번 같은 내용의 수업이 얼마나 지루할까라는 생각이 수업 계획 할 때마다 떠올랐습니다. ‘무엇을 함께 해야 재밌을까?’라는 고민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요즘 학생분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했습니다. 학생분들께 야학에서의 생활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일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상에 한 부분은 어떤 것도 하지 않는 쉼의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그게 수업이 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걷고 차를 마시는 일이 그런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학생분들과 함께 해야겠다. 일종의 쉼 수업. 쉼을 배우는 시간을.
수업이 시작되면 출석을 부르고 자기 이름이 호명된 학생분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합니다.
그렇게 출석부르기가 끝나면 함께 차를 마십니다. 차를 마시고 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5분 있기, 아무것도 하지 않고 10분 있기. 잠깐의 시간 동안 그저 가만히 있기.
가만히 있는 시간 동안 학생분들은 몸을 꿈틀거리고 하품을 하고 손가락을 놀리며 말을 하고 싶어 안달합니다.
그러다 아주 잠깐 고요한 시간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길지 않은 그 몇 초의 시간이 참 평안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건 제 느낌일 수 있지만)
그 짧은 찰나의 시간속에서의 쉼. 그 시간의 소중함을 학생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끝나고 학생분들에게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다들 가만히 있는게 너무 힘들다, 지루하다 어렵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등등의 소감을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왜이리 힘들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겠네요.”
어떤 날은 밖에 나가 산책을 합니다.
성북천, 광화문, 열린송현, 서순라길, 세운상가, 을지로, 북악스카이웨이, 낙산공원 등등을 걸었습니다.
함께 걷고 어느 곳에 앉아 음료를 마십니다.
그리고 다시 걷습니다.
걷고 쉬고의 반복.
인생의 대부분을 시설에서 혹은 집에서 무엇도 하지 못하고 살았던 학생분들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공부하는 일이, 쉼을 배우자는 제안이,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겐 그런 시간이 끔찍한 시간이진 않을까 라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그럼에도 투쟁으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찾은 지금 학생분들에게 쉼은 꼭 필요한 배움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와 함께 수업했던 학생분들이 일상의 한순간만이라도 쉴 수 있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