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연과 시 쓰는 사람들, 호시인입니다
이야기 호시인 (조호연, 황시연, 이예인)
정리 황시연, 이예인
글 황시연
질문
언니는 언제부터 시를 좋아했어요?
나는 쓰게 됐어. 답답하거나 울고 싶을 때나. 그럴 때. 아플 때 일기를 쓰게 되면서.
이 모임은 광진구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이제 까마득히 멀게 느껴지는 설 연휴였다. 혼자 설을 보내느라 외롭다는 한소리반 호연 언니 집으로 교사 몇 명이 찾아갔다. 언니가 내주는 과자와 과일을 먹고, 책 대신 뜨개실이 빼곡히 쌓인 책장을 구경했다. 이름으로 사주를 보고 옛날 영화를 보며 명절을 즐기던 중이었다. 갑자기 호연 언니가 컴퓨터에 저장해둔 파일을 보여줬다. 2018년부터 쓴 시가 한 페이지에 두 편씩, 몇 백 페이지가 저장되어 있는 파일이었다. 이상하고, 슬프고, 괴팍하고, 누가 내년이면 환갑 아니랄까봐 어르신 같은 표현에 탄식이 나오다가도 솔직한 문장 하나가 쿡 가슴을 찌르는 호연 언니의 시를 보며 생각했다. 아, 언니 시집 만들고 싶다.
호연 언니와 단 둘이 시집을 만들 자신은 없었다. 설날 호연 언니 집에서 함께 언니의 시를 읽었던 예인쌤을 끌어들여 호연, 시연, 예인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가져와 ‘호시인’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2월부터 2주에 한 번 정도 만나 언니가 지금까지 쓴 시를 읽고 이야기 나누면서 새로운 시를 쓰고 있다. 동료가 있으면 더 다양한 각도로 읽고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와 예인쌤도 시를 보여주고 있다(언니는 주로 재밌네, 또는 뭔소린지 모르겠어 같은 소감을 나눠준다). 호시인은 주중에 야학 근처 언니의 단골 카페에서 만나기도 하고, 낙산공원 중턱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아예 집 근처에서 만날 때도 있다.

낙산 공원으로 모임을 가서 같이 시집을 읽은 날, 예인과 호연
호시인은 내년 겨울 호연 언니의 환갑에 맞추어 시집을 내는 것을 목표로 차곡차곡 시를 추리고 있다. 언니가 지금까지 쓴 시를 인쇄하니 매번 들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의 양이었다. 올해 초부터 쌓인 시를 읽어가며 나오는 장소, 다뤄지는 소재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시집에 꼭 넣었으면 하는 시도 추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언니의 시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
5월 31일, 국회의사당역 농성장
호시인에 대한 글을 쓰려고 호연 언니와 일정을 잡았다.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만날 수 있는 날이 토요일 뿐이었고, 그마저도 예인쌤이 국회의사당역 농성장을 지키는 날이었다. 주5일 새벽같이 병원에 출근하느라 잠이 밀린 호연 언니는 늦잠을 잤다. 근처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고 농성장 의자에 앉아 시에 대해, 시 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꾸 샛길로 빠졌던 우리의 산만한 수다 중에 오로지 시에 대한 대화만 다듬어 실어본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 ] 괄호 안에 덧붙였다.
예인 § 호연 언니, 오늘은 언니가 쓰는 시에 대해서나 언니가 시를 왜 쓰는지 얘기해줄 수 있을까요?
시연 § 언니는 학생 때부터 시 좋아했어요? 문학 수업 같은 거.
호연 § 그거 절대 안 했어. 재미 없어서. 선생님이 항상 어디부터 어디까지 외워, 이렇게 시켰는데 내가 [뇌전증 때문에] 외우는 거를 못 해서.
시연 § 그럼 언제부터 시를 좋아하게 됐어요?
호연 § 좋아하게 됐다기보다는, 나는 쓰게 됐어. 답답하거나 울고 싶을 때나, 그럴 때. 어렸을 때부터 아플 때 일기를 쓰게 되면서.
예인 § 일기는 어쩌다가 썼어요?
호연 § 그냥 중고등학교 때 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왜 잠이 안 올까? 자고 싶다. 그런 걸 쓰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처럼 넘어가더라고요. 일기를 쓴 건, 예를 들어서 의사한테 가면은 내 얘기를 해야 되는데 내가 자꾸 까먹어. 그러다가 생각을 했는데,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이나 발작하기 전의 상태를 쓰기 시작했어요.
예인 § 언니 상태에 대해 기록을 시작했구나.
시연 § 언니 그거 집에 있어?
호연 § 아뇨, 없어. 버렸을 것 같아요.
시연,예인 § 아깝다.
호연 § 야학 다니면서 그 프린트를 해달라고 그랬어요. 그래가지고 그거를 의사 선생님한테 보여줬어. 그랬더니 더 잘 알더라고. 내가 왜 발작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그런 걸 다 썼나 봐. 나는 이상하게 의사 선생님 앞에 가기 전까지는 다 기억해. 근데 이상하게 의사 선생님만 만나면 다 까먹어.
예인 § 그러면 처음으로 언니가 의사 아닌 사람한테 글을 보여주고 싶었던 계기, 이거 내 글 읽고 누가 얘기해 주면 좋겠어 했던 기억이 있어?
호연 § 아니. 그냥 보여 달라고 그러면 다 보여주고 있어요. 많아서 누구누구인지 기억은 안 나고.
시연 § 그럼 언니는 시집을 왜 내고 싶어?
호연 § 모르겠어요.
시연 § 저번에 시집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는 언니가 언니를 모르는 사람한테도 시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잖아. 왜 보여주고 싶었어요?
호연 § 궁금한 마음이 있는 사람한테는 소개를 터 줘야지.
시연 § 그건 무슨 마음일까? 언니 야학에서 사람들한테 시 보여줄 때는 왜 보여줘요? 역시 자랑인가.
호연 § 그렇지. 반은 자랑이고, 반은 한 번 읽어서 두 번 또 읽으면 또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거지. 한 번 더 읽고 싶어하는 사람한테는 더 보여주고.
예인 § 나도 언니 시 처음 봤을 때 더 보고 싶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언니가 더 보여줬어. 되게 많더라고.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지만... 그럴 때 언니는 어때요?
호연 § 좋지. 내가 쓴 글을 다 읽으면.
시연 § 나는 우리가 모임 하면서 시를 쓰기도 하잖아. 근데 내가 읽은 거 내가 쓴 거를 다른 사람 보여주기가 엄청 부끄럽거든. 숨기고 싶고.
호연 § 그건 젊어서 그래! 젊어서. 나도 젊었을 때 너무 부끄러움을 많이 탔어. 나도 좀 나이가 들고 뭐 알고 그러니까는 이제 이렇게 얼굴이 두꺼워졌다? 그런 게 있어.
예인 § 근데 언니도 맨 처음에 누구한테 보여줄 때는 부끄러웠을 수도 있지 않을까. 창피하고. 근데 많이 보여줄수록 많이 듣잖아요. 내 시가 어떻다 그런 반응을 많이 보니까 덜 부끄러워졌을 수도 있어.
호연 § 그런가? 그건 잘 모르겠어.
시연 § 예인쌤은 다른 사람한테 시 보여줄 때 어때요?
예인 § 보여줄 때 나도 부끄럽긴 한데 어떻게 더 고칠 수 있을지 얘기를 들으면 좋잖아요. 나도 더 바꿔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읽을 때 어떻게 읽히는지 궁금하고 듣고 싶다. 읽어주면 고맙고.
호연 § 칭찬 듣고 싶어서 그러는 거 같아. 잘 썼다고.
시연 § 근데 칭찬 안 해주면 어떡해?
호연 § 그럼 아무 생각없이 둬요. 그냥.
예인 § 그럼 만약에 언니 시가 책으로 나왔어. 이거 한 번 물어봤던 것 같긴 한데, 사람들이 읽고 칭찬을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반응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언니 시집을 읽은 사람들한테 듣고 싶은 얘기.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는 거.
호연 § 공감.
시연 § 언니는 언니만의 인생이 있잖아. 그래서 공감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읽는 사람들한테 새로운 측면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거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호연 § 있지. 발작할 때 막 이렇게 주물러주는 사람이 엄청 많아. 근데 그러면 안 돼. 쇠몽둥이로 맞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까 이게 팔이 다 굳어 있는데 굳은 상태에서 주물러 주면은, 발작이 다 끝났을 때 온몸이 이렇게 풀어져. 그러면서 두드렸던 곳이 막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런 걸 사람들은 몰라.
시연 § 그런 경험에 대해서도 좀 써보면 좋겠다. 그럴 때 언니가 어떤지, 할 때나 진정됐을 때 어떤지 이런 거 쓰면 또 언니만의 이야기잖아.
호연 § 근데 기억이 안 나. 발작하는데 기억이 안 나지.
시연 § 언니는 밤에 슬플 때도 시를 많이 쓰잖아. 잠이 안 오거나, 생각이 많거나, 죽고 싶거나 그럴 때 많이 쓰잖아. 그럴 때 쓰고 나면 기분이 좀 나은지 아니면 그대로인지 궁금해요. 뭐, 뭐가 끄덕끄덕이야?
호연 § 조금 좋아져.
예인 § 좋다. 그리고 사람마다 슬프고 불안한 게 다 다른데 누구한테나 있을 수 있잖아요. 근데 언니의 슬프고 막 불안한 시를 읽었을 때 왠지 좀 좋은 게 있었어요. 그러니까 누군가도 이런 걸 느끼는구나 나도 그러는데. 그래서 그걸 또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공감을 많이 하는 글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시연 § 언니 최근에는 뭐에 대해 썼어?
호연 § 이거.
친구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핸드폰을 죽 살펴봤다
전화부에 적혀 있는 명단은 많은데
정작 내가 슬플 때 답답할 때 외로울 땐 없다
내가 전화하면 받아줄 사람이 있을까?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있으면 좋겠다 있으면...
난 소꿉친구도 어깨동무도 없다
늙어서 어른이 다 되어 사귄 사람들
난 내가 이런 감정을 겪었기에 슬퍼하는 그들을 이해한다.
아니, 이해해주려고 애쓴다
2025.05.13.축시
다시, 언니는 시집을 왜 내고 싶어요?
이날 농성장에서의 인터뷰는 ‘왜 시를 쓰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찾지 못한 채 끝났다. 호연 언니는 핸드폰 메모장을 켜 얼마 전에 쓴 시를 보여주다가도 순식간에 맞은편 광고판의 영어 문구에 대해, 먼 옛날 어린 시절에, 야학이 정립회관에 있을 때,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면서 최저시급도 못 받던 때로 주의가 흩어졌다. 그러다 눈물도 몇 방울 흘렸다. 쓸쓸함에 잠겨 눈시울이 붉어진 호연 언니와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그날 모임을 마무리했다.
이후 예인 쌤과 인터뷰를 정리하며 그런 생각을 나눴다.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들여다보고 말 걸고 싶고, 전하고 싶은 뭔가가 있어서 언니는 시를 쓰는 게 아닐까? 야학에서도 호연 언니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자기가 쓰는 시를 툭 보여준다. 살갑지 않으면서도 허물이 없다. 그렇게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기도 한다는 걸 호연 언니를 통해 알았다.
초등학교 백일장 이후로 시를 쓰고 누군가와 읽는 건 처음이다. 시를 쓰고 보여주는 일은 정말 부끄럽다. 호연 언니가 시인으로서 가장 뛰어난 면은 마음을 열어 보이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점 같다. 여러 번 이야기해도 머릿속에서 놓치고 마는 것이 있고, 계속 환기해도 바뀌지 않는 게 많은 고집불통 언니지만 호연 언니는 분명히 멋진 시인이다. 노들야학을 넘어, 유리빌딩을 넘어 비장애인 사회에까지 언니의 시를 펼쳐 보일 날을 향해, 호시인 가자 가자 가자!!!

국회의사당역 농성장 앞에서. 왼쪽부터 시연, 호연, 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