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박만순, 환갑 축하합니다
이예인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보장하라. 월요일에 노들에서 만화감상 수업해요

초대장을 받았어요. 박만순 님한테 왔습니다. 환갑잔치 초대장이었어요. 초대해주신 박만순님이 어떤 사람이냐면, 멋있는 사람입니다. 복도에서 만나면 하이파이브로 인사하는 사람. 급식 먹을 때는 저를 뒤에서 놀래키는 사람. 저는 깜짝깜짝 잘 놀라는 편입니다.
“아!! 언니. 그만 놀래켜요.”
“하하하. 안 할게요.”
하면서도 몇 주 뒤에 또 놀래키는 박만순 님. 바다에 놀러간다고 미리 말해주기도 하는 사람. 자기가 나오는 공연에 꼭 오라고 당부하는 사람. 생일이라고 하면 서슴없이 축하노래 불러주는 사람. 생일이 여성의 날인 점도 멋있는 사람. 또, 2021년에 장애인 거주시설 인강원을 나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2023년 3월 24일 최옥란 열사 추모 저녁 문화제에서 박만순 님은 탈시설 상을 받았습니다. 그날 만순 언니는 마이크에 대고 탈시설한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하셨던 거 같아요.
“잘 사세요.”
저는 자립하기 이전의 박만순 님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탈시설 전과 후의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일상에서 만순 언니와 전화 통화하고, 언니가 종이접는 모습 보면서 제 세상은 전보다 훨씬 살기 좋아졌습니다.
그런 박만순 님에게 환갑잔치 초대장을 받았어요. 아직 잠바를 입던 3월초였고요. 초대장 위 아래로 보라색 꽃이 그려져 있었어요. 한쪽에는 푸른 한복을 입고 웃는 만순 언니 사진이 보였습니다. 보라색 좋아하는지 언니한테 물어봤어요. 보라색이랑 고양이를 좋아한대서 고양이 모루 인형을 만들었어요. 가족에게 부탁해 보라색 윗도리를 뜨개로 만들어 입혔어요. 선물을 다 만들고서 상자에 담았어요.

3월 5일 화요일 박만순 님 환갑잔치 날이 됐습니다. 초대장에 적힌 뷔페집에 도착했어요. 박만순 님 환갑을 축하해주러 오신 장기형, 경남언니, 희용이형, 승미님, 성숙언니, 지연언니, 혜운언니, 유미샘, 시연샘 말고도 여러 사람이 따듯하게 입고서 모였어요. 그렇게 큰 잔치에 초대받은 적은 처음인 거 같아요. 저희는 주택 코디 선생님 안내를 받아 예약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둘러앉자 만순 언니가 벌써 환갑이라니. 신기해하는 목소리도 들렸어요.
그날 박만순 님은 검은 트위드 자켓과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어요. 멋있었는데 무지 긴장한 모습이었어요. 모두 자리에 앉자 주택 코디님과 선생님들이 언니의 자립까지의 과정을 짧게 나눠주시고, 생일선물 드리는 시간이 왔어요. 고양이 인형이라고 생각하고 드렸는데 박만순님은 곰이라고 했어요. 그러면 곰인형인 거겠죠. 그날 소감으로 만순 언니는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주셨어요. 떨리는 만큼 언니가 기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환갑잔치는 같은 주인 3월 7일 금요일에 2탄으로 이어졌어요. 이번에는 구구절절 권리공방 일자리 시간에 교실에서 박만순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가 열렸어요. 초대를 받아 두 번째 환갑 잔치에 가게 됐어요. 올해 만순 언니는 환갑잔치를 총 세 번 챙기셨다고 해요. 진짜 생일인 3월 8일 토요일에 주택에서 진짜 마지막으로 환갑을 축하받으셨다더라구요. 금요일에는 권리공방 함께하는 분들, 아닌 분들과도 모여 케이크 초에 불 붙이고 노래 불렀어요. 사랑하는 박만순 생일 축하합니다. 만순 언니는 카메라 앞에서 손으로 브이를 하고 촛불도 훅 부셨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난 환갑잔치 소감을 물으니 박만순 님은 이렇게 전해주셨어요.
“좋았었지. 생일파티 하니까 좋았지. 선생님들도 다 왔잖아. 거기 ○○○ 선생님 오구. △△씨도 오구,”
그러다 누가 잔치에 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어요.
“□□선생님도 안 왔어. 나 선물도 안 주고.”
“환갑잔치 안 온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있어. 하고 싶은 말. 안 온 사람은 편지 쓰기.”
그 뒤로 마주칠 때마다 박만순 님은 편지가 언제 오는지 여쭤봐주십니다. 언니가 편지 요구하신 분들께는 따로 연락을 드릴게요. 이렇게 원하는 것을 말해주시는 점도 너무 멋있고요. 만나는 자리마다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부르는 언니가 정말 너무 좋습니다.
보고 싶다고 잘 말하는 사람. 보고 싶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매주 인강원으로 가서 보고 싶은 사람들 만나고 오는 사람. 박만순 님, 앞으로도 사시면서 축하받을 자리가 무척 많으실 텐데요. 학교에서나 어느 무대에서나 언니 앞에 모여 박수 치는 사람들 속에 있고 싶어요. 두 번이나 잔치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박만순, 환갑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