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만에 다녀온 꽃동네 방문기
: 문은 열렸지만, 방은 닫혀 있었다
김홍기
노들장애인야학 학생이자 권익옹호 활동가. 여행을 다니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올해 4월 18일 봄, 야학에서 음성꽃동네 자원봉사자로 왔었던 이민정씨를 우연히 만났다. 이민정씨는 노란들판에 활동지원사 교육을 받으러 왔다고 했고, 그래서 교육을 받는 5일 동안 계속 야학 건물에 온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만났지만 반가운 마음에, 병기와 함께,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민정씨가 꽃동네 이명희 수사님께 전화를 걸어 홍기씨와 병기씨를 우연히 만났는데 5월에 놀러가도 될지 물어봐주었다. 수사님도 놀러오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뭐하러 가나 싶어서 5월에 바로 놀러 가지는 않았다.
그러다 9월쯤 같이 꽃동네에서 생활했고 지금은 결혼한 최영은, 이상우 부부가 꽃동네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상 또 다른 사람들이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랫동안 같이 꽃동네에서 지냈던 사람들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특히 희망의집에서 같이 지냈던 사람들, ‘맹꽁이(맹정훈)’ 동생 등등... 그래서 나는 다시 수사님께 전화를 해 9월에 놀러가도 될지 물어보았다. 수사님은 9월은 일정이 어려우니, 10월에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꽃동네 시절, 희망의집 앞에서

2005년 희망의집 앞. 윤국진, 박현 등 동료들과의 단체사진
막상 꽃동네를 가려고 하니 차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혼자 가려고 해서 충북 장애인콜택시에 전화를 했는데, 음성 콜택시 신청을 또 해야한다고 했다. 음성 장콜에 신청도 했는데, 하루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하는 등 많이 번거로워서 짜증이 나 포기했다.
그래서 혼자 일반 특장 차량을 빌리려고 했는데, 휠체어가 들어가기에 높이도 잘 안 맞아서 많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노란들판 법인 양현준 이사에게 ‘쏠라티’를 타고 갈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쏠라티는 차가 커서 여러명이 탈 수 있었다. 그래서 동행할 사람들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탈시설한 이병기, 김기봉에게 같이 다녀오자고 제안했고, 그들도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10월 18일 금요일 우리는 양현준 이사가 직접 운전하는 쏠라티를 타고 음성 꽃동네로 향했다. 비가 억수같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2시간 정도를 달려 음성에 도착했다. 중간에 어느 식당에서 다 함께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를 하는 중 이명희 수사에게 어디쯤 왔는지 물어보는 문자가 왔다. 지금 가는 중이라고 전화를 하며, 도착하면 보자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이제 희망의집이 아니라 요한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으니, 그쪽으로 와달라고 이야기했다. 희망의집에 방문을 하고 싶다고 말을 하였다. 그랬더니 이명희 수사가 알겠다고 하며, 내가 도착하면 본인이 희망의집으로 오겠다고 말했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꽃동네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일단 희망의집 앞에서 내려, 여자동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그때 예전에 꽃동네에서 같이 지냈던 직원들을 만났다. 이명희 수사부터 박순영, 정필정, 그리고 이병진과 이혜근 부부. 직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묻길래, 너무 잘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어머니 산소도 여러 번 다녀왔고, 그 이야기를 영화로 직접 만들었던 경험도 이야기해줬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직원들이 이제는 어머니 산소의 정확한 위치를 알았으니, 어머니 산소도, 그리고 내가 죽은 이후에 내 산소도 음성 꽃동네로 이장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이장하고 산소 2개 마련하는 데 40만원 정도면 될 거라고도 이야기해줬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너무 열을 받았다. 꽃동네에서 수십 년 살다가 겨우 탈시설해 잘 살고 있는 나에게, 죽어서는 꽃동네에 묻히라는 말을 하다니 화는 났지만 즐거운 기분으로 왔기에 참고 넘어갔다.
꽃동네 직원들이 활동지원사들과 양현준 이사는 식당에 남아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 셋에게는 2층의 다목적실로 가자고 이야기를 하였다.
2층으로 향하다가 기봉이가 방향을 틀어서 시설이용인들이 생활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생활관복도에서 방으로 들려가려고 할 때, 직원 조경희가 나를 보며 들어가면 안된다고 경고를 하며 2층 다목적실로 이동하라고 했다. 너무 화가 났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2층 올라가기 전 식당에 있던 아저씨(활동지원사)가 나를 불렀다. 아저씨는 내가 2층 올라가 있는 동안에 사람들과 나눠 먹을 음식을 배달시키겠다고 했다. 돈은 나와 기봉, 병기가 나눠서 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직원이 방에도 못 들어가게 하는 상황에 화가 너무 난 나머지 바로 집에 돌아가자고 얘기했다. 아저씨는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고 나를 설득했다. 결국 인당 18만 원어치의 치킨, 피자 등을 사기로 했다. 음식 주문과 배달은 이민정씨에게 부탁을 해놓았다.
이후 2층 큰 방에 도착하고 나서, 예전이랑 변한 부분이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희망의집에 남은 동료들이 우리를 만나러 올라왔는데 여자들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물었는데 다른 곳으로 갔다고만 하며 상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남자동과 여자동이 있을 때 있던 여자직원들이 왜 현재 남자가족들만 있는 생활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고, 남자 직원들이 굉장히 적었다. 신변처리와 샤워 등 신체적인 업무를 봐주고 있다는게 말이 되지 않았다. 궁금하지만 물어보지 않고 넘기며 시설 직원에게 미술반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직원은 미술반은 사라졌다고 말을 하며, 같이 수업을 들은 가족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를 했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럼 가족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물어봤다. 양세훈은 인국자애병원 앞에 있는 아나빈의집으로 간지 몇년이 지났다고 알려주었다. 양내웅, 안창선은 구원의집(노인요양시설)으로 옮겨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들보다 나이가 더 많은 영배 형님과 원권 형님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왜 둘만 노인시설로 옮겨졌는지 의문점이 생겼다. 최영민과 맹정훈은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보니 최영민은 탈시설을 하였고, 맹정훈은 4년 전에 죽었다고 답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나보다 8살이나 어렸는데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다니 마음이 아팠다. 오기창에 대해서도 물어보니, 직원이 불러 주겠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창이 올라와 오랜만에 얼굴을 보았다. 그는 아직까지 꽃동네에서 생활은 하지만 시설 밖에서 일을 하며 돈을 받고 있다고 했다. 추후 여자동의 가족들은 천사의집으로 이주했다는 것을 꽃동네에서 탈시설한 최영은 동지에게 듣게 되어 적잖이 충격이었다.

꽃동네에 남은 동료들과 함께
인사를 마친 이후 식당으로 내려와 이민정씨에게 부탁해 주문한 음식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인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직원들도 서울로 일찍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명희 수사에게 준비한 술을 선물로 주고, 우리는 일찍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주문한 음식은 시설에 남은 동료들이 먹으라고 하고 그날 밤 서울로 돌아왔다.

짧은 만남 이후, 서울 오기 전 단체사진
하루뿐이었지만 오랜만에 꽃동네에 가서, 시설에서 나와 자유롭게 잘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동료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또 그 사이 몇몇 동료들이 탈시설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반가웠다. 특히 예전에 우리가 계속 탈시설하자고 설득해도 “나는 절대 꽃동네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했던 최영민 동생이 탈시설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웃기기도 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동료들이 시설 밖 지역사회로 나오기를 바래본다.
하지만 여전히 시설은 시설이구나라는 점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옛 동료들이 이유도 모른 채 꽃동네 안 다른 시설들로 옮겨져 있었다. 특히 나보다 젊은 동료들이 노인요양시설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자 동료들도 모두 어디로 갔는지 시설 직원들에게 아무리 물어보아도 잘 이야기해주려 하지 않았던 모습, 오랜만에 방도 둘러보고 싶었는데 정해진 곳으로만 가라고 경고하던 직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꽃동네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돌이켜보면 9년 만에 꽃동네를 갔던 것인데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만약 비가 많이 안 왔더라면 다른 곳들도 찬찬히 더 둘러보고 사진이나 영상 기록도 남기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래서 다음에 한 번 또 다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박찬욱, 조희은, 남호범, 이영욱 선생님과 함께 ^^)

희망의집과 쏠라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