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가을 102호 - 도움반에서 드리는 편지

by nodeul posted Nov 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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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반에서 드리는 편지



김혜옥




김혜옥. 노들야학 창립 멤버. 3대, 5대 교사대표를 지냈으며 초등 특수교사입니다.
지난 3월, 전교 선생님들께 뿌린 메시지를 조금 수정했습니다. 이런 지면에 글이 실릴 줄은 모르고 얼기설기 쓴글이니 부디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목련꽃 봉오리 맺힌 걸 보니 봄이 오긴 오나봅니다.
지난 주말에는 「노예 12년」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노예제를 다룬 영화인데 인간의 자유 의지와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제가 아는 어떤 분들의 삶이 떠올랐 습니다.



‘한여름에도 솜바지를 입고 바지 속에서 다리가 썩고 있던 사람. 침대에 팔다리를 묶인 채 한 사람이 각목으로 맞아온몸에 시퍼렇게 피멍이 든 사람… 양념 안 된 반찬과 시래깃국, 10년도 더 된 참치캔. 오줌을 버려줄 사람이 없어 아무도 물을 주지 않았고… 방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고, 도망치다 붙들려온 사람들이 개처럼 두들겨 맞았다. 한 달에 한 명씩 죽어나갔다. 하나님,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여기서 나가야 한다. 늦은 밤, 여자는 모두가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려 무릎으로 정신없이 기기 시작했다. 날이 하얗게 밝아 올 무렵, 온 몸이 생채기에서 피가 흐르고… 그녀는 그렇게 시설을 탈출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이야기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10위 안에 든다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바로 장애인생활시설에서요. 그리고 지역사회에 살아보고자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지요.
왜 그들은 범죄자도 아니고 몹쓸 돌림병에 걸린 사람들도 아닌데 우리와 같이 살지 못하고 분리되어 살아야 했을까요? 왜 자신의 사회와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해야 했을까요? 누가 그들을 시설에 가두었을까요? 누가 그들을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유지하지 못하고 살다가 죽어가게 만들었을까요?


혹시… (우리가) 학교에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그들을 학교 바깥의 시설로 몰아넣은 것 아닐까요?

편의시설도 없고 보조할 사람이 없으니 사회에서도 같이 살 수 없다며 (우리가) 그들을 시설로 넣은 것 아 닐까요?

올해 도움반에 몇 명의 친구가 더 들어왔습니다.
최근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자살하는 뉴스가 많아 마음이 너무나 아픈데, 이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힘차게 일반학교에 발걸음을 내딛는 부모님들. 일반학교에 보내놓고 하루하루 마음 졸이는 모습이지만, 새삼 참 고맙고 힘이 되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합니다.




102_20_01.jpg




우리 아이들을 권리실현의 주체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장애가 있으니 불쌍해서가 아니라, 부모 조직의 입김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권리로서 이해받았으면 합니다. 겉보기엔 똑같은 밥 한 그릇일지라도, 겉보기엔 똑같은 한 걸음일지라도 그것이 시혜나 동정이 아닌 권리로서 존중 받는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다르겠지요.
선진국처럼 공립일반학교에 통합된 장애아 한 명에 특수교사, 보조원, 언어치료사, 심리치료사가 달라붙는 복지 시스템은 아니어도 우리나라도 조금씩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확보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여 결국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하겠다는 의지겠지요.



흔히들 장애아의 기적을 말할 때 헬렌 켈러와 그녀를 가르친 애니 설리번 선생님을 얘기하지요. 하지만 제가 열심히 가르쳐서 말을 못하던 아이가 말을 잘할 수 있게 되고 글을 못 읽던 아이가 글을 읽게 되는 기적을 이룬다 해도 그 아이가 자라서 직업도 갖지 못하고 다시 시설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기적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진짜 기적을 일궈내는 사람들은 바로 선생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실에서의 통합이 ‘사회적 통합’의 기초가 될 것이니까요. 글을 잘 못 읽더라도 말을 잘 하지 못 하더라도 잘 걸어 다니지 못 하더라도 장애인이 생활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 저는 그것이 진정한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처럼 지역사회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또 나중에 커서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어서 소소한 일상을 같이 나누면 참 좋겠습니다.



결국 노예제가 폐지되었듯, 결국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듯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 저는 역사는 그렇게 진보해나갈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언젠가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세대에는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기업에서 인재를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이라고 합니다. 실제 구글 같은 회사에서는 장애인도 많이 채용하고 있고 그 장애인들과 같이 협력하여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지닌 사람을 성적이나 학벌이 뛰어난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도움반 친구들이 ○○초 친구들에게 그런 덕목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되길 바라봅니다.




다소 불편한 내용이 있는 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 ○○초 학습도움반 김혜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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