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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는 일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노들야학 은전
대한문에서 출발한 버스는 다섯 시간 만에 진도에 들어선 후에도 한참을 더 달려서야 팽목항에 닿았다. 한때 항구를 가득 메웠다던 천막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간 후 휑해진 그곳은 짙은 해무로 가득 차 있었다. 찰박거리는 바닷물 위에서 끼익끼익 기분 나쁜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빈 여객선과 그 옆에 색색의 과일로 차려진 제사상의 조합이 이 적막한 항구가 연일 뉴스를 도배했던 그 아비규환의 현장임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방파제에 노란 리본이 빼곡하다. 배를 타고 한참 더 나가야 한다는 사고 해역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사람들은 방파제 끝까지 나가 그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또 불렀을 것이다.
“엄마, 아빠, 여보, 내 새끼야. 보고 싶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이제 그만 돌아와다오.
내가 엄마의 아들이어서 행복했어요. 네가 나의 아들이어서 고마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은 자신의 가슴을 도려내어 그 난간에 매달아 놓았다.
멀리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천막이 외따로 떨어져 있다. 6월 8일 이후 아직 저 천막을 거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사람이 없다. 열두 명. 아직 열두 명이 저 검은 바닷속에 갇혀 있다. 이제 성별조차 가리기 힘들 만큼 변한 시신은 가족들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더딘 구조 작업에 가슴을 쥐어뜯던 유족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간 내 자식 한 번은 품어주고 보내게 해달라”던 비명 같은 요구도 더 이상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방파제의 끝에 서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마음속으로 부른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그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따라 불러본다.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잠수사의 손을 잡고 나와 가족의 품으로 인도될 수 있기를. 그래서 이 악몽 같은 장례가 어서 끝나기를.
나는 비명에 죽은 자식의 영정을 끌어안은 부모의 심정은 모른다. 하지만 그 부모의 죽지 않은 딸의 마음을 안다. 꿈인 것 같아서 어서 깨어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불쑥불쑥 가슴이 내려앉고 눈물이 터지기를 반복하는 상실의 시간. 8년 전 단 며칠이었으나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의 시간. 내 언니의 장례였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묵묵히 끌고 나갔던 언니와 형부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친정으로 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순식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장례를 치르는 내내 상복은커녕 검은 옷조차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다. 이미 그녀가 죽어 사라졌는데 그따위 의식이 다 무언가 싶기도 했지만 우리는 갑작스런 가족의 죽음에 대처하는 법을 몰랐고 무엇보다 몹시 피곤했다.
하도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은 뜨고 있는 것만도 힘들었다. 어차피 꿈이 아니라면 어서 이 장례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장례식은 정말 꿈결 같아서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장례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안에 흐르던 그 무거운 정적만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쓰러지듯 잠을 잤다. 3일 만에 자는 잠은 슬프고 달았다.
다섯 살 위 언니와 나 사이에는 놀랍도록 추억이 없어서 나는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이래도 될까’ 싶을 만큼 아프지 않았다. 온몸이 마취된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나는 불쑥 혼자 울었다. 피와 살 어딘가에 묻혀 있다가 불쑥불쑥 흘러나오는 존재. 나는 그것이 혈육인가 보다, 생각했다.
마취가 풀린 후 통증은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누군가의 죽음이 그저 그날 오전에 처리해야 할 일거리에 불과했던 영구차 기사가 언니의 유해를 “얼른 뿌리고 오라”며 퉁명스럽게 대했던 것이, 그래서 한 인간의 마지막 흔적을 고작 상조회사의 기사가 아무 의미 없이 가리킨 야산에 뿌려 없앤 것이, 그리고 그녀의 32년 삶을 단숨에 압사시킨 차주의 보험사가 그 삶을 제대로 정산했는지 따져 묻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가슴 한켠을 저리게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때는 채 식지도 않은 주검으로 돌아온 딸의 얼굴을 만지며 “아직 따뜻한데요. 살아 있는 거 같은데요. 안 죽은 거 아입니까?”라고 의사를 붙들고 물었다는 아버지가 떠오를 때다. 혹시라도 의사가 너무 일찍 자신의 딸을 포기한 게 아닌지 그 순간 아버지는 얼마나 간절했을까. 그녀가 태어났을 때 세게 쥐면 부서질 것처럼 연약한 그 생명을 손에 안아본 후 아버지는 비로소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고 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비빌 언덕도 없어 마음 둘 곳 없었던 가난했던 남자에게 그녀는 뿌리 같은 존재였다. 그녀가 떠난 후 ‘자식이 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뿌리가 잘려나간 곳에 통증을 느낄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칼로 베이는 것처럼 쓰리다. 방파제에 매달린 이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모두 얼마나 귀한 존재들일까. 지금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을까.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은 손을 뻗고 있다고 하는데 어둠 속에서 그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까. 새끼들의 손을 잡아주지 못해 까맣게 돌이 되어가고 있는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우리는 무얼 해야 할까. 구조작업을 하는 잠수사에게 “승무원복 입은 우리 아들, (단원고) 학생들과 구분하지 말고 같이 구조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한다”고 적힌 쪽지를 건네며 수도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는 어느 부모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가족을 잃은 슬픔도 모자라 무뢰한들에게 난도질당한 외상으로 피를 철철 흘리는 그들을 65보며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하나.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그것만이 지금 우리가 온몸으로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곡을 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의 옆에서 축구공을 던져 올리고 요란한 응원가를 틀어 광장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세력들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진흙탕 같았던 선거 유세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성실하게 세월호를 지워가고 있다.
혈육의 죽음도 잊는 나약한 인간이 추억 한 가닥 없는 이들의 죽음을 잊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바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다 보면 잊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어느새 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야만적인 세상에 그저 무력한 인간으로 살아감이 한없이 슬픈 날, 그 마음 그대로 팽목항에 가보시라. 마음이란 걸 가진 인간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나. 간절한 마음으로 바닷속에 가라앉은 세월호의 선체로 들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열두 명의 손을 잡아주시라. 너무 많이 변한 그들의 얼굴에 놀라 고개 돌리지 말고 두 눈 부릅뜨고 보아야 한다.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사람들과 그들을 구하러 내려간 사람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해야 한다. 항구엔 따뜻한 옷과 밥을 챙겨놓고 그대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그대가 사라지는 만큼 까맣게 굳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돌이 되기 전에 당신의 눈물 같은 뼈와 살 그대로 꼭 돌아오시라. 하루라도 빨리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편히 잠들어 꿈에서라도 그 따뜻한 품 꼭 안아보시라.
그리고 기어이 말해야 한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마지막 잠수사가 들어와 그대의 손을 잡는 그날까지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이 글은 은전 님이 지난 6월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팽목항에 다녀와 쓴 글입니다. 10월 29일 황지현 양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실종자 9명은 아직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