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났다
오규상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마로니에공원과 불광천을 좋아합니다
자식 사랑은 만악의 근원이다. 길어야 100년을 사는 인간이 돈과 권력을 놓지 못해 욕심부리는 이유 열에 아홉은 자식이 아닌가 싶다. 부동산 투자를 시작한 친구는 내 말을 듣고, “네 말도 이해 가는데, 나는 불법이 아니면, 우리 가정이 잘 사는 거 말고 다른 가치 판단은 안 하려고”라고 말했다. 쉬는 시간에 함께 매점에 뛰어가 왕뚜껑을 흡입하던 그와 나의 가치관이 달라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했다. 2022년 가을,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참 예쁜데, 가끔은 너무 예쁘다. 부의 재분배에 관한 생각은 변함없지만, 맨몸으로 이 엄혹한 사회를 살아갈 아이의 삶이 안쓰러웠다. 얼마 후 그 친구의 둘째가 아주 아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 근처 조리원은 남편이 들어갈 수 없었다. 짝은 혼자는 외롭다며 조리원 대신 집을 택했다. 월요일에 입원하여 화요일에 출산하고 금요일에 퇴원했다. 3일 차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목을 받치고 다리를 들어야 할지 몰라 기저귀를 갈 때도 함께 했다. 새로 생긴 콧속은 거칠 것이 없는지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잠을 못 자고 귀를 대면 작게 '색 색' 소리가 났다. 한 번은 아이의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아이가 태어난 은평성모병원 신생아실에 전화했다. 친절한 간호사는 아기 옷을 물었다. 아이의 재채기 소리에 놀라 속싸개와 겉싸개로 아이를 둘둘 말아놓은 아빠는 아이에게 사과했다. 부모는 자식이 건강만 하면 바라는 게 없다는 말이 어느 시점까지는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친구가 준 책의 ‘생후 1~2개월’ 꼭지에서 본 글이 참 마음에 들었다.
"배내웃음을 짓는다. 생후 2개월 무렵까지 아이가 빙그레 웃는 미소를 배내웃음이라고 한다. 기분이 좋아 보이거나 엄마를 향해 웃는 것 같지만, 이 시기의 웃음은 정서적이거나 사회적인 웃음이 아니라, 얼굴 근육이 저절로 움직이는 생리적 웃음. 그러나 배내웃음은 마치 엄마에게 "나를 사랑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초기 애착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삼성출판사,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
2주 간의 배우자 출산휴가 마지막 날 저녁, 오랜만에 밖에 나왔다. 건널목을 건너는데, 맞은편에 태권도복을 입고 검은 뿔테를 쓴 열 살 남짓의 남자아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니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이십 대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그 뒤로 서둘러 건너오는 초로 남성의 얼굴도 보였다. 그 얼굴들 안에서 예쁜 아이들이 보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 아이가 태어나던 날
뱃속에서 발차기하는 쑥쑥이가 내일이면 배 밖으로 나온다는 게 서운한 짝꿍은 입원실 침대에 누워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푸코의 장애에 대한 사유를 소개한 책을 읽고 있었다.
"p. 220, 검사(삼중표지자검사; 태아의 다운증후군 위험도를 계산하는 검사) 절차를 받아들인 여성은 일반적으로 유전적 손상이 있는 아이를 가질 위험성 1퍼센트와 양수검사로 인한 유산 위험성 1퍼센트가 수치상으로는 똑같음에도 후자를 덜 위협적으로 여긴다. 장애아 출산과 유산의 확률을 비교할 때 작동하는 합리성은 이미 중립적이지 않다. 산전 장애아 검사 절차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이미 정부가 견지하는 우생학적 합리성을 받아들였다는 것으로, 아이를 잃는 유산의 고통보다 장애아를 낳는 고통의 크기가 더 크게 설정된 세계로 들어감을 뜻한다.“
- 박정수, 「장판에서 푸코 읽기」
수술실에서 신생아실로 올라오는 현이를 처음 만났을 때, 간호사는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를 세어주었다. ‘스무 개가 아니어도 이 아이가 예쁜 것은 달라지지 않는데’라는 생각이 코로나로 이어지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임신 9주 차이던 지난 3월, 짝과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체온이 40도에 육박해 힘들어하는 짝 옆에서, 나는 임산부의 코로나 확진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을 찾아봤다. 코로나는 발달장애 발생률을, 발열은 자폐스펙트럼장애 발생률을 높인다고 했다. 올 초 아이가 태어난 친구는 임신 중에 부부가 확진되었다. 태어난 아이는 선천성 순환계 기형이 있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몸이 당최 기준을 알 수 없는 장애 분류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다양한 몸에 맞춰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시민권의 경계가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 290, 스토아 학파의 또 다른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견유주의자를 정찰견에 비유했다. 견유주의자는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인간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류보다 앞서 파견된 정찰병이라는 뜻이다.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생활도 그렇다. 시설 밖 생활이 불가능할 것 같던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이어나갈 때, 의사결정은 커녕 의사표현조차 못할 것 같은 발달장애인들이 씩씩하게 사회생활을 해나갈 때 그것은 인류 전체의 역량, 사회적 역량의 한계치를 매번 갱신하는 사건이 된다.“
- 박정수, 「장판에서 푸코 읽기」
- 아이와 함께 살다
짝꿍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이어서 나는 2023년 10월부터 육아휴직을 썼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늦게 보내고 싶었다. 아직 꼬물거리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을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나고 몸과 마음이 지친 나는 아이를 계속 재우기만 했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집 오 분 거리에 출퇴근하는 성인(聖人)들을 만났다.
이후 6개월은 나이가 들면서 빨라지기만 하던 시간의 속도가 처음으로 멈추듯 천천히 흐른 시간이었다. 매일매일 새롭던 반년을 보내고 활동에 복귀할 때, 나는 노들센터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요청했다. 육아휴직을 신청할 때와 마찬가지로 주저함은 없었다. 노들은 이 정도는 해줄 조직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났다. 오늘 아침은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마치고 간신히 10시 3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늘은 기필코 5시에 퇴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