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제2의 자립을 준비하며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노들센터는 현재 두 채의 자립생활주택(이하 자립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자립주택은 기존 시설에서 생활하던 장애인이 일정 기간 머물며 자립을 경험하고, 지역사회와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공간이다.(최근에는 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의 재가 장애인도 입주할 수 있게 되었다.) 입주자가 새로운 환경에서 하루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욕구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과를 계획하는 과정을 거친다. 또한, 입주자의 특성에 맞는 지원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지역사회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경험한다. 이러한 과정은 때로는 즐겁고 보람찬 일이지만, 때로는 가슴이 철렁할 만큼 어려운 순간도 많다.
자립주택을 운영하며 많은 탈시설 장애인을 만나왔다. 몇 년 전부터는 중증발달장애인이 중심이 되어 입주하고 있다. IL센터에서 자주 외쳤던 ‘장애인 당사자의 문제는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가장 잘 안다’는 구호는 발달장애인 입주자들과 함께하면서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다른 장애 유형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이번 주택 입주자의 퇴거 지원을 하며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자립주택 나오는 날 활동가들이 이삿짐을 나르고 있다
주희 님의 제2의 자립을 준비하며....
주희 님은 2020년 9월 자립주택에 입주했다. 당시 나는 다른 팀에 소속되어 있어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 센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세요, 주희 님”이라고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주희 님은 중증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는 중증신체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주희 님과 친해지기 어렵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주희 님도 나를 반기지 않는 것 같았고, 사무국장이 된 후에도 주택 담당자를 통해서만 지원 방향을 논의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고, 어느덧 주희 님의 퇴거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작년에 주희 님은 퇴거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지원주택을 신청하려 했던 계획이 여의치 않았다. 신청한 지원 주택 환경이 좋지 않아 포기했고, 또 다른 지원주택을 신청했으나 퇴거 일정에 맞출 수 없었다. 서울시는 정해진 퇴거 날짜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어쩔 수 없이 종로구에서 전월세 집을 알아봐야 했다.
중증장애인 전세 지원금을 받아 노들과 가까운 지역에서 집을 찾기 시작했다. 주택 담당자는 종로구 내 부동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집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계약 직전까지 진행되었다가도, 장애인이 혼자 산다고 하면 거절당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도 갑자기 “원래 학생을 구하려고 했다”, “장애인이 혼자 살면 부담스럽다” 등의 이유를 대며 계약이 무산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열리는 빈집이, 장애인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집을 찾기 위한 노력
퇴거 한 달 전, 상황은 더욱 급박해졌다. 결국 사무실 활동가들도 동원되어 집을 찾기 시작했다. 이전 경험을 떠올려 보니, 내가 직접 부동산을 방문하면 오히려 집을 구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대신 온라인 부동산 사이트에서 매물을 검색하며 현장에 나가 있는 활동가들에게 정보를 공유했다. 종로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찾았고, 마침내 주희 님이 살 수 있는 집을 발견했다. 그러나 계약이 확정될 때까지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담당자에게 “장애인이라고 말했어요?”, “혼자 살지만 활동지원사가 매일 온다고 잘 설명해 주세요”라고 재차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진행했다. 다행히 집주인 부부는 흔쾌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주희 님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확정되었다.
주택 담당 활동가가 새로 이사한 집의 주방을 정리하고 있다
새로운 시작, 그리고 불안함
이삿날이 다가오자 또 다른 걱정이 밀려왔다. 주희 님은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어 낯선 환경에 극도로 불안감을 느낀다.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 그녀가 어떻게 적응할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사 2주 전부터 새로운 집을 방문하며, 본인의 거주지라는 인식을 하게끔 지원했다. 이사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주희 님이 기존의 자립주택보다 새로운 집을 더 편안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사할 집에서는 신발을 벗고 자연스럽게 들어갔지만, 자립주택에서는 점점 불편해하는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주희 님도 음성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다른 입주자들과의 공동생활이 불편했던 걸까?
드디어 이사가 마무리되었다. 이사 후 첫 2~3주 동안은 개인 자부담으로 야간 활동지원사를 배치해 적응 기간을 가졌다. 하지만 주희 님은 24시간 활동지원 대상자가 아니었기에, 야간 지원을 지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점차 야간 지원을 줄이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다시 불안감이 엄습했다. 혹시 밤에 혼자 나가진 않을까? 밤에 홀로 나가서 길을 잃으면 어쩌지? 그런 마음에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후에 담당자와 함께 주희 님 집 앞에서 한 시간씩 서성거리며 상황을 지켜보기도 했다. 주희 님의 어머니도 불안해하시며 우리를 찾아와 걱정을 토로하셨다.
주희 님 어머니를 만나면서 오래전 내 어머니가 떠올랐다. 나 역시 자립 후 1년 동안 어머니가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셨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왜 나를 못 믿는 걸까?”라는 생각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나는 주희 님의 어머니께 “주희 님은 잘 지낼 거예요”라고 안심시켜 드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나 역시 발달장애인인 주희 님의 자립을 어렵게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번 주희 님의 퇴거 지원을 하면서 나는 나의 장애 외에 다른 장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그래서 많이 부끄럽다. 사람들은 외국어를 모르고, 전문 지식을 모를 때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나는 장애에 대해 모를 때 더 많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장애는 인간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쇼핑이 즐거운 김주희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