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출범
‘나의’ 아픔을 다루는 ‘그들의’ 의료를 ‘우리가’ 정의하자
박주석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사무국장
“응급실 뺑뺑이를 아시지요?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런 의료기관 뺑뺑이가 일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 경기장애인부모연대 회장 김미범
2024년 10월 3일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는 국회에서 출범대회를 진행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인 김미범 이사는 위와 같이 이야기했다. 애초에 갈 수 있는 의료기관이 별로 없지만, 보호자나 활동지원사 등 간병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1인실 병상이 없어서, 전신마취가 불가능한 곳이어서, 잘 모르는 장애 유형이라, 장애유형에 맞는 검진 기기가 없어서, 갖가지의 이유로 다른 병원으로 돌려보내지는 장애인의 삶. 울음을 참지 못하며 그 삶을 증언했다.
장애인 건강권에 대한 이야기는 2020년 코로나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전에 의료적 문제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국가나 사회에 바라는 점은 언제나 소득보장 다음 의료보장이었다. 장애인독립진료소를 다니던 김준혁 활동가는 돈이 없어 백혈병임에도 약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돈이 없어 맹장염이 의심되는 상황임에도 곧바로 병원에 가지 못 한 채1) 2013년 11월 말 사망했다.
재작년 말에 진행된 정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2) 장애인의 치료 가능한 사망률이 비장애인의 6.2배에 다다른다고 한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치료를 받지 못해서 죽는 확률이 6배 이상 높다는 뜻이다. 게다가 비장애인은 예방 가능한 사망률이 치료 가능한 사망률보다 높지만, 장애인은 반대다. 게다가 1/6에 다다르는 장애인은 최근 1년간 의료기관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경험이 있다3).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다. 왜 장애인건강권법이 있고, 장애인보건의료센터가 있고, 장애인주치의가 있는 나라에서 장애인은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는 걸까?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하다. 모든 법과 제도, 사업에 장애인 옆에는 항상 ‘재활’이라는 단어가 오는데, 재활은 의료 아닌가?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장애인은 얼마나 되지? 주변에 다들 병원 다니지 않나? 어릴 때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녀 본 경험이 있지 않나? 여러 개의 약을 달고 살고, 이 수술 저 수술 경험이 많지 않나?
맞다. 장애인에게 의료는 굉장히 가까이 있다. 가끔은 의료가 일상을 지배해 지역사회에서 보내지 못하고, 병원에서 일상을 내내 보내기도 한다. 그럼 우린 물어야 한다. 이렇게 의료를 많이 이용하는데, 왜 우린 건강하지 않지? 왜 우린 의료이용을 못 한다고 느끼지? 실제로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입원, 외래 이용 모두 훨씬 많다. 그러나 건강상태와 건강검진율은 훨씬 낮다. 의료비 지출이 높지만, 의료차별을 겪고, 의료보장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 격차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지금까지 우리는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외치며, 장애인의 시민적 권리를 위해 싸워왔다. 그러나 의료까지 나아가는 데에는 전장연의 역사 13년 만에 세계적 판데믹과 그에 따른 국가의 의료 통제 하에서 “정부가 하라는대로, 살려달라 전화만”, 가둬놓고 죽이는4) 현실을 마주하는 과정이 있었다. 왜일까? 우리의 인식은 왜 쉽게 의료까지 나아가지 못했을까.
첫 번째는 개인적 경험이다.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이를 고치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 떠돌아다니던 경험이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권위있는 의료기관도 가보고, 마치 미신 같이 기적을 약속하는 곳에도 가보며, 애초에 고쳐질 수 없는 질병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보통 환자는 일시적인 상태로 여겨진다. 잠깐 아팠다가, 주변에서 충분히 돌봐주고 충분히 쉬면 나아서 이전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그런데 장애인은 질병이 영영 끝나지 않는 환자로 대해진다.
두 번째는 의료와의 권력관계다. 우리는 접수과정에서, 진료과정에서 겪은 일에 대해 의료차별이라고, 진료거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애초에 정보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잘못을 눈치챌 수는 있을까? 나를 진료해줄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의사와 맞서 싸울 수 있을가? 지금까지 우리는 의료기관의 불친절함을 의료공공성의 부족과 차별의 문제로 다루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오며, 이 정도는 참아야지하고 참아왔다. 그렇게 작은 차별을 큰 차별로 키우고, 작은 병을 큰 병으로 키웠다.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는 그래서 출범했다. 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 권리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당신의 아픔을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내기 위해서.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는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53일째(1월 21일 기준) 출근길 선전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투쟁은 눈이 보이지 않아 지팡이를 짚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장애인의 푸념으로부터 시작했다.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 서울대병원 밖에 없는데, 2019년부터 공사를 하더니 키오스크로만 접수를 할 수 있더라고. 그래서 너무 힘들어”. 그리고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아 지난 5년간 133억이 넘는 벌금을 냈다는 사실이 2024년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장애인은 혼자서 이용할 수도, 노동할 수도 없는 서울대병원을 장애인차별대학병원 1호점으로 지정하고 투쟁을 시작했다.
서울대병원은 발달장애인 거점병원과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운영하며 장애친화 의료기관임을 자랑스럽게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한 서울대병원의 태도는 욕설과 비아냥, 그리고 물리적 폭력이었다. 장애인의 진입을 막기 위해 수동휠체어를 쌓고, 점자안내판의 전원을 뽑아 벽을 만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말 잘 듣는 환자’일 때는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던 서울대병원이, 권리를 이야기하는 시민이 되는 순간 물리적으로 대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제일의 공공병원이 갖는 태도여야 하는가?
코로나19 판데믹 당시, 공공병원에 대한 필요성을 전국민이 함께 확인했다. 그러나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좋은’ 공공병원은 이러한 공공병원이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공급자 중심의 의료는 장애인을 건강하게 만들기보다는 ‘장애’를 고치는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장애인이 편하게 의료기관에 올 수 있는 것보다, 전문적이고 고도의 의료기술이 필요한 질병이 찾아올 수 있도록 전문인력과 값비싼 의료기기를 광고하는 데 힘써왔다. 그렇게 병원은 장애인이 노동할 수 없고,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경증장애인 중심의 장애인고용 정책, 비장애중심의 노동 환경을 최중증장애인이 우선 고용될 수 있는 권리생산노동으로 바꾸어왔듯, 우리가 의료를 새롭게 정의하고 바꿔나가자. 장애인의 건강을 이야기하는 것과, 장애인이 건강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아프면 안 되는 사회가 아니라,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나가자.
<함께 해주세요>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가입 : https://bit.ly/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1) 요즘에도 맹장염으로 사람이 죽습니다, 이렇게/오마이뉴스
2)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건강 격차와 시사점>, 2023년 1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3)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 보건복지부
4) “정부가 하라는대로, 살려달라 전화만…가둬놓고 죽인 거잖아요”/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