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겨울 140호 - 『출근길 지하철』 북콘서트 참여기 / 허신행

by 루17 posted Ju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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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 북콘서트 참여기 

 

 

 

 허신행

사단법인 노란들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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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들 외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면 자주 받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떻게 노들에서 활동하게 되었나요?"

 

  저는 늘 같은 답을 합니다. 노들장애학궁리소 김도현 활동가의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를 읽고 자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요. 그래서인지 제 활동 중 가장 중요한 책을 꼽으라면 저는 늘 “당.장.아.”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작년에 출근길 지하철이 출간된 후부터는 제 마음속 책장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당장아 옆에 나란히 놓이게 된 책이 바로 『출근길 지하철』이었습니다.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가 나의 활동을 시작하게 만든 계기라면, 『출근길 지하철』은 그동안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며, 막연하고 답답했던 부분에 해답을 주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장애인권의 현실은 어떤지, 외부의 공격에 어떤 맹점이 있는지, 그렇다면 우리의 투쟁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들려주었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책도 술술 읽힙니다. 문체에는 고장쌤의 말투가 그대로 묻어나와 읽는 중간중간 웃음을 짓게 되지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꼈었는지 북콘서트에서도 “그러니께네”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훌륭한 책의 내용을 두 저자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였기에 저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꼿꼿이 앉아 정말 열심히 들었습니다. 제 뒤에 앉아 있던 법인 활동가는 제가 마치 "은혜받는 사람 같았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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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 전경

 

  여러 분들이 북콘서트 준비를 함께 해주셨는데요. 저는 그중에서도 고병권 선생님께서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셨다고 생각합니다. 행사 시작 전 노무현 시민재단 까페에서 법인 식구들과 고병권 선생님이 함께 차를 마셨는데, 선생님의 손에는 수 페이지에 달하는 질문지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고민도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콘서트 시작 부분에서 말씀하시길 출간 후 책을 두 번 정도 읽으셨고, 사회를 부탁받고는 한 번 더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시간이 오래지나 기억이 정확친 않습니다만 최소한 세 번 이상은 확실합니다. 아마도 저자와 편집자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읽으신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애정과 고민이 깊었던 선생님의 질문은 정말 짜임새 있고 의미가 있었습니다. 박경석의 말이 정창조의 글로 재탄생된 기획의 배경, 박경석의 삶 그리고 박흥수와 정태수, 지하철 행동의 혐오와 지지, 한국사회에서 T4 이야기를 꺼낸 이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단순히 순서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아니라 책과 운동에 대한 품격과 애정을 담아주셔서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 북콘서트는 책 이야기만큼이나 공연도 깊이 남았습니다. 총 두 번의 공연이 있었는데, 시와 님과 어깨꿈 밴드가 무대를 꾸며 주었습니다. 시와 님은 오래전부터 노들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노들 후원주점에도 자주 참석해 주셨고요. 그날 불러주신 노래는 ‘랄랄라’였는데, 이 곡은 시와 님의 1집 소요에 수록된 곡입니다. 아마 2010년 즈음 나온 앨범으로 기억하는데, 저도 그때 사인 CD를 받았어요. 이렇게 오래도록 우리의 곁에서 함께해 주는 예술가들이 있다는 게 참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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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공연

 

  어깨꿈 밴드의 T4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노래입니다. 아침 선전전에서도, 집회에서도 수십 번, 수백 번 들어온 곡이지요.(T4가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에서 “T4 전장연”을 검색해 보세요. 공연 영상과 뮤직비디오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 들은 T4는 달랐습니다. 제가 들었던 T4 중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왔고, 결국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왜였을까요? 박경석, 정창조 두 사람의 진심이 깊이 전달되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노들과 함께한 나의 17년 세월에 대한 위로를 느꼈던 걸까요? 혹은 우리가 수많은 투쟁을 해왔음에도 여전히 차별과 억압, 억울함 속에 고통받는 장애 동지들이 있다는 현실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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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꿈밴드 공연

 

  맨 마지막 순서로 현장의 질문이나 코멘트를 듣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한 분이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책은 비단 장애인의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능력주의가 세상에 팽배한 지금 우리의 청년들에게도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너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남깁니다.

 

  “진짜 적에다가 화살을 돌려야지. 그게 당장 안 돼도 원형경기장 벽에다가 작은 돌멩이라도 던져대고”(『출근길 지하철』, p.288)

 

  장애인권 운동을 통한 진정한 해방은 우리를 막고 있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작은 싸움이 아니라 시스템에 문제제기를 하고 그것을 바꿔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돌멩이라도 던져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힘이 미약하더라도 끝까지, 될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절박함과 진정성을 절묘하게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박경석 그의 삶과 그의 운동의 역사를 그대로 비춰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사단법인 노란들판에서는 올해(2025년) 상반기 중 『출근길 지하철』을 주제로 5회기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경석 대표님이 직접 진행을 맡아 주실 예정이며, 세미나 참여자들이 지하철 선전전과 투쟁을 함께한 뒤 책을 읽는 현장과 이론이 결합된 알찬 프로그램으로 기획 중입니다. 아직 『출근길 지하철』을 접하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대항로 3층 법인사무실로 꼭 찾아와주세요.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투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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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 정창조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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