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겨울 140호 - [31번째 노들야학 개교기념제] 노들야학의 생일을, 또한 우리 모두의 생일 아닌 날 ‘안 생일’을 함께 축하합니다 / 오하나

by 루17 posted Ju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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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째 노들야학 개교기념제

노들야학의 생일을, 또한 우리 모두의 생일 아닌 날 ‘안 생일’을 함께 축하합니다

 

 

 

 오하나

들다방 마감 & 청소 담당. 동물들이 편히 머물다 갈 수 있게, 작당하고 이것저것 이상한 포스터와 선전 문구들을 들다방 벽면에 자꾸 붙이고 있습니다.

 

 

 

 

  들다방에 축사를 부탁해주셔서 오늘은 제가 들다방 조리사님, 바리스타분들을 대신해서 나왔습니다.

 

  노들야학 31주년 축사를 모아왔는데요, 읽어보겠습니다.

 

  먼저 카페 바리스타 네 분들은 이렇게 남겨주셨습니다.

  ‘노들야학 서른한 살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힘드시겠죠? 힘들어도 고생 많으십니다.’

 

  조리사님들은 이렇게 남겨주셨습니다.

  ‘노들야학, 앞으로 무궁한 발전 있기를 바랍니다.’

  ‘학생 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히 오래 만나요.’ 이렇게 보내주셨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각자 생일날 뭐하셨나요? 저는 저의 생일날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게 여전히 어색합니다.

  태어나 살아간다는 건 슬픈 일이라 생각합니다. 나날이 새로운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섣불리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해준다는 게, 마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살다보면 거짓말도 해야 해서, 이렇게 야학 생일 축사에 나왔습니다.

 

  이런 저에게도 납득이 가는 생일 파티가 하나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런 행사가 있어요. 

  ‘생일이 아닌 날을 축하해요’ ‘안 생일을 축하해요’라는 파티인데요. 거기서는 이렇게 말해요. 

  ‘1년 중 생일은 단 하루지만, 오늘은 나와 너의, 모두의 생일이 아닌 날. 그래서 오늘을 축하해야 한다.’

  알쏭달쏭한 나라의 티 파티에서 모두가 흥겹게 노래를 합니다. 서로의 생일이 아닌 날, 그래서 모두의 날인 오늘을 축하합니다. 

  이 흥겨움과 알쏭달쏭 그리고 알딸딸함이 저는 노들 안의 들다방의 풍경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노들의 생일이지만, 동시에 생일을 맞이하지 않은 우리 모두의 날이기도 합니다.

  노들이 특별하지만, 저에게는 여기 모인 여러분들이 있어서 특별합니다.

 

  여러분이 들다방에 오셔서 잘 식사하고 흥겹게 차도 마시면서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그런 매일매일이, 저는 즐겁다, 다행이다 여기는데요. 그게 저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카페 조정민 선생님과 매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또 뭐 웃긴 일 없었어요?” 까먹지 않기 위해 메모해두기도 합니다.

  태어나 살아간다는 건 고통의 연속이지만, 아주 주저앉아 내려놓자니 노들야학엔 늘 웃긴 일이 하루에 하나씩은 꼭 있습니다. 

  그것을 나누는 공간으로 들다방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생일 축사를 보내온 들다방 바라스타와 조리사님의 말로 마무리 인사를 할게요.

  ‘여러분 힘드시죠? 힘들어도 고생 많으십니다.’

  조리사님이 보내온 축사처럼 ‘우리 아프지 말고 건강히 오래 만나요.’

 

  그리고 노들야학의 생일을, 또한 우리 모두의 생일 아닌 날, ‘안 생일’을 함께 축하합니다.

 

 

  *2024년 8월 8일, 31번째 노들야학 생일을 맞아 들다방 오하나 샘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는 축사를 해주셨어요. 축사 그대로 옮겨 실었습니다.

 

오하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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