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겨울 140호 - [노들 책꽂이] 동물도 시민이 될 수 있다! - 《주폴리스》 이야기 / 김다현

by 루17 posted Ju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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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 책꽂이

동물도 시민이 될 수 있다! 

 《주폴리스》 이야기

 

 

 김다현

노들에 서성이고 있어요

 

 

 

 

김다현1.jpg

『주폴리스』(수 도널드슨, 윌 킴리카 / 프레스탁)

 

 

  고장샘과 정창조가 《출근길 지하철》을 출간하고 우리가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로!”라는 구호를 외치는 중에, ‘동물이 어떻게 시민이 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는 책 《주폴리스》가 출간되었다. 주폴리스(Zoopolis)1)는 동물지리학자이자 도시계획학자 제니퍼 월치가 비인간을 고려하는 ‘동물도시zoopolis’ 계획을 주창하며 만든 단어로, 책 《주폴리스》는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동물정치공동체zoopolis'에 대한 정치철학서이다. 

 

  《주폴리스》의 저자 수 도널드슨과 윌 킴리카는 반려견 코디, 티카와 살며 반려견을 학대하지 않고 자유를 해하지 않는 등의 기본적인 보편권을 보장하자는 동물권 운동의 ‘도덕’적 주장에는 너무나 설득되었지만, 그 이상이 없을까 생각했다. 도덕적 주장은 코디와 티카와 가족을 이루어 생활하며 함께 결정해야 하는 세세한 문제들에 어떤 지침도 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도널드슨과 킴리카는 그동안 기본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동물권 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동물을 도덕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넘어서 동물의 목소리를 가족, 지역 사회, 국가 정치에 반영할 방법을 찾고자 동물 권리 정치 이론을 구상한다. 《주폴리스》가 전개하는 동물 권리 정치 이론은 동물 이론의 흐름을 성실히 톺아보고 이로부터 한계를 도출한 뒤, 그 한계를 극복할 방안을 인간을 위한 정치이론에서, 특히 장애 운동, 탈식민 운동, 난민 인권 운동 등이 발전시킨 이론적 자원에서 찾는다.

 

  《주폴리스》는 그들의 독창적 이론을 전개하기 앞서 동물 이론의 흐름을 교과서처럼 친절하게 설명한다. 서론에서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동물을 논의할 때 사용하는 틀, ‘동물 복지론’, ‘생태주의’, ‘동물 권리론’ 세 가지 도덕 이론이 있고 모두 동물의 권리를 보장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동물 복지론’은 동물 복지의 도덕적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동물 복지는 인간의 이익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고 본다. ‘생태주의’는 동물을 생태계의 구성 요소 중 하나로 보고, 개별 동물보다는 전체 생태계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다. 서식지 파괴나 공장식 축산 등 동물에게 해를 주는 관행을 비판하지만, 개별 동물의 생명보다 생태계 보호를 우선시한다. 마지막으로 ‘동물 권리론’은 동물이 인간과 똑같이 불가침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이익이나 생태계 보호를 추구하더라도 동물에게 해서는 안 되는 기본적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동물 권리론을 상세히 살펴보면, 모든 개체에게 죽임당하지 않을 것, 감금되지 않을 기본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물 권리론에 기반한 동물권 운동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왔는데, 저자들은 그 이유를 동물 권리론이 죽임당하지 않을 권리, 감금되지 않을 권리 같은 소극적 보편적 의무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극적 보편적 의무에 초점을 맞추면 이론적으로 인간-동물 사이의 적극적 관계가 존재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는 동물과 다양하게 관계 맺고 있는 인간의 잠재적 동맹을 잃는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소극적 동물 권리론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동물 권리론에 보다 관계적, 적극적인 권리를 통합하기 위해 정치 이론을, 즉 시민권 이론을 접목시킨다. 시민권 이론은 정치 공동체와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관계 및 권리를 다루는 이론으로, 시민권 이론은 기본적으로 공통의 혈통, 언어,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 공동체(polis)를 모델로 하였기에, 역사적으로 그러한 다수에 속하지 못하는 장애인, 토착민족, 이주민 등 소수자 집단은 대량 학살, 강제 동화 등 여러 탄압을 받았다. 이러한 소수자 집단의 권리를 포함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여러 노력이 있었고, 시민권 이론은 단일 민족, 단일 국가 정체성을 넘어서 국가 안에 장애인, 토착민, 소수민족, 이민자 등 여러 구별된 공동체에게 역량, 관계 등에 따라 권리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시민권 이론이 다양한 소수자 집단마다 권리와 책임을 집단차별적으로 주었던 것처럼, 확장된 동물권리론은 동물을 인간과의 관계에 따라 집단을 나누어 사육 동물, 야생 동물, 경계 동물로 분류하고, 각 집단에 적합한 권리 체계를 제안한다. 

 

  저자들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사육동물(가축, 반려동물 등)의 경우에는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며, 이를 장애이론의 ‘의존적 행위자성’을 경유하여 설명한다. 의존적 행위자성은 중증지적장애인이 신뢰하고 행위자성 표현을 인지하고 보조하는 기술과 지식이 있는 특정한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발휘될 수 있다. 지적 장애인은 의존적 행위자성을 ①다양한 형태의 행동과 의사소통으로 자신의 주관적 선을 표현하는 능력, ②신뢰 관계의 발전에 따라 사회 규범을 지키는 능력, ③상호작용의 조건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능력 등 시민권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 모든 동물이 이러한 의존적 행위자성을 발휘할 만큼 인간과 친밀하지 않지만, 사회성을 지니고 인간에게 적응하고 인간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동물의 경우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고 도덕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야생 동물은 사육 동물과 달리 인간과 관계 맺기를 피하고 인간에 의존하지는 않기에 내버려두는 게 맞아 보인다. 그러나 야생 동물은 특정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지만 인간 활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들은 서식지 파괴나 고층 건물, 선박항로, 환경 오염, 기후 변화 등에 영향을 받고, 어떨 때는 인간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할 때도 있다. 확장된 동물 권리론은 야생 동물의 경우 역사적으로 영토에 대한 주권을 부정당한 여러 인간 공동체와 비슷한 부정의를 겪었다고 본다. 저자들은 야생 동물도 인간 공동체와 같이 고유한 영토에서 개별적으로 자치 공동체를 이루어 통치할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고, 인간과 야생 동물 공동체 관계는 영토와 자율성 존중 등 국제법상 규범에 따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규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계동물은 간단히 말하면 인간 곁의 삶에 적응한 많은 비사육동물로, 도시 한가운데 사는 다람쥐, 너구리, 쥐, 참새, 그리고 도시 주변에 사는 사슴, 여우 등까지 수많은 동물종을 포괄한다. 경계동물은 야생동물과 사육동물 사이에 비가시화되고, 종종 이들의 존재자체가 불법이 되는 상황이 많다. 이들에게 부여되어야 할 권리는 주민권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주민권은 공동체에 공동거주민이지만 동료시민은 아닌 존재에게 주어지며, 시민권보다는 친밀과 협력의 정도가 조금 더 낮은 느슨한 관계로 권리와 책임이 줄어든다. 

 

  동물을 인간과의 관계에 따라 집단을 나누어 사육 동물, 야생 동물, 경계 동물로 분류하여 사육동물에게는 시민권을, 야생동물에게는 주권을, 경계동물에게는 주민권을 부여하자는 《주폴리스》의 주장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우리 주변의 사육동물, 경계동물, 야생동물을 떠올려보고, 실제적으로 어떻게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예를 들면 한국의 재건축/재개발 구역에서 동네고양이를 이주시키는 활동은 경계동물의 주민권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일 것이다. 동네고양이의 거주지와 영역동물이라는 특성, 인간과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상호작용을 한다는 특성을 고려하여 전국의 재건축/재개발 구역에서 고양이 이주활동이 현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동물도 시민이 될 수 있을지 묻는 이 질문에 노들바람 독자들은 어떤 답변을 떠올릴지 궁금해진다.

 

김다현2.jpg

《출근길 지하철》을 출간하신 박경석 고장샘께 《주폴리스》 이야기를 드리니, 그럼 고양이에게도 투표권을 주는지, 고양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물으셨다. 무무2)는 저자들은 그런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그림 출처: 네이버 웹툰 <공대생 너무만화> 34화)

 

 

*2024년 10월 10일 보안책방에서 진행된 《주폴리스》 북토크 내용을 참고 및 정리하였습니다.

 

 

1) ‘zoo’는 동물을 뜻하고, ‘polis’는 고대 그리스어로 도시, 즉 시민들이 모여 정치를 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뜻한다. polis는 대도시를 뜻하는 ‘metropolis’와 정치학을 뜻하는 ‘politics’의 어근이기도 하다.

 

2) 무무 – 동물권 전문 출판사 프레스탁 편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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