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기 닿은 노래 전시 리뷰
여전히 천천히, 즐겁게, 함께
고권금
몸과 장소가 맺고있는 관계를 탐구하는 <버티는몸 프로젝트>를 2020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다. 이동하는 공간으로서의 몸에 관심이 있으며 상상과 물질의 이동, 감각과 의식의 이동이 만들어내는 역동을 좋아한다. 흙과 돌, 아스팔트를 매개로 춤을 추고 글을 쓴다. '노들버티는몸'을 사랑한다.
혜화역과 마로니에공원은 노들야학의 놀이터이자 투쟁의 장이다. 변신의 귀재인 노들은 때에 따라 피켓을 몸에 두르기도 하고, 앞치마를 두르기도 했다가, 공연복을 입고 등장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볕 좋은 날이면 산책도 나오고, 춤도 추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만들어 부른다. 이러한 변신은 저마다의 소리로 공원을 에워싸고, 바람은 그 소리를 어디론가 태워 보낸다.
“아르코미술관이 위치한 혜화역과 마로니에 공원에는 항상 자신의 존재와 권리를 알리는 장애인의 목소리들이 울린다. 소위 ‘정상성’의 규범에 벗어난 듯 보이는 이 목소리들은 때로는 노래로, 그리고 합창이 되어 미술관에 그리고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닿는다.
그 노래들에서 시작된 ≪*여기 닿은 노래≫는 서로 다른 몸이 가진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보고 그리고 말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려는 전시다. 모두를 포용하겠다는 성급한 다짐을 잠시 미루고 서로가 보유한 각자 다른 시간과 속도를 느껴본다.”
(이하 중략)
_전시 소개글 중
<여기 닿은 노래> 포스터
2015년 ‘천천히, 즐겁게, 함께’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낮수업은 각자의 언어를 찾아 여행길에 올라있다. 나는 2017년 장애인거주시설인 인강원의 생활인들이 합류할 때부터 낮수업에 참여하고있다. 에너지와 개성이 넘치는 학생들과 소리와 춤의 언어로 소통하며 수업을 이어나가던 중 2020년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로 변곡점을 맞이하게 됐다. 교사-학생의 관계에서 동료로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교사들은 기존의 관계와 수업의 기능에 대해 되짚어보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보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해야 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노동을 원하는지, 함께 할 수 있는 노동이 무엇인지, 우리의 노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숱한 질문의 터널을 천천히, 그러나 기꺼이 함께 통과하며 동료로서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시작됐다. 관계가 바뀌자 이전에는 보지 못한 기회와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낮수업 학생들은 예술 노동자로서 교실 안밖을 오가며 끊임없이 서로를 발견해내며 극장과 거리와 공원이라는 무대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2023년 야학교사 임당의 제안으로 ‘노들 버티는몸’을 개설하게 됐다. 그리고 같은 해에 노들야학 4층에 위치한 들다방에서 전시형 퍼포먼스 <나는 나를 기대합니다>를 공연했다. 이번에는 우리의 일상이 있는 곳을 무대로 만들었다. 식탁과 의자를 치우고, 바닥을 닦고, 베이지색 카펫 4장을 깔았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곳에서 파스텔 색깔의 양말을 신은 퍼포머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퍼포머들의 몸이 그려내는 선율은 자연의 것과 유사했다. 굽이치는 강물 같기도 하고, 야산에서 자라나는 버섯 같기도 했다. 긴장과 신남이 여실히 드러났고, 조급함과 느림이 공존했으며, 움직임의 리듬과 속도는 제각각이었다. 퍼포머들은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하며 동료와 관객을 마주했고,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란 걸 온 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름다움이 나를 향해 몰려왔다. 공연의 현장은 전이성이 강하다. 특히 현존의 감각을 드러내는 몸을 목격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2024년 여름, 여느때와 같이 공원을 메우던 낮수업 사람들의 몸이 아르코 미술관에 닿았다. ‘노들버티는몸’의 <나는 나를 기대합니다>는 댄스필름과 조각 전시로, ‘짜잔잼’과 ‘노들에스쁘와’는 공연으로 전시 ≪여기 닿은 노래≫에 참여했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보겠다.
아르코 미술과 ‘여기 닿은 노래’ 전시 관람
노들 버티는몸 <나는 나를 기대합니다>
‘노들 버티는몸’은 무용을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팀으로 11명의 발달장애인과 4명의 비장애인 퍼포머로 구성 되어있다. 2023년부터 매주 화요일 낮 연습실에서 만나 자신의 감정과 신체 상태를 감각하고 나누는 것을 시작으로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움직임을 통해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탐구하고 있다. ≪여기 닿은 노래≫에는 돌편지를 주제로 안무한 댄스필름과 아스팔트 조각을 전시했다. 작품을 통해 일정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몸이든, 따라가고 싶지 않은 몸이든 안전하게 머물며 자신의 춤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으로서의 ‘시차군무’를 제시했다.
노들에스쁘와 <어라운드 아르코미술관>
‘노들에스쁘와’는 춤추는 동그라미가 넓어지는 만큼 삶의 공간도 함께 확장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2017년부터 매주 화요일 낮 노들야학에 모여 춤을 추고 있다. 2023년에는 총 3차례에 걸쳐 공연<어라운드 마로니에>를 진행했다. 마로니에 공원 한가운데서 펼쳐진 ‘노들에스쁘와’의 춤과 음악은 시끌벅적한 생기를 뿜어냈고, 공원을 지나가던 사람들을 자연스레 원 안으로 초대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어라운드 아르코미술관>이라는 오프닝 공연을 통해 원의 경계를 미술관까지 확장했다.
‘노들에스쁘와’ 공연
짜잔 <월간 짜잔잼>
‘짜잔’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탈시설하여 지역시회에서 자립생활을 준비-시작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컨택 즉흥 춤 모임이다. 2022년부터 매주 금요일 낮 노들야학에 모여 춤을 추고 있다. 내 이름을 딴 체조, 내 몸으로 낼 수 있는 소리, 내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힘과 무게, 나를 움직이게 하는 다른 사람의 몸과 움직임 등을 찾으며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월간 짜잔잼’은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 앞에 등장해 춤판을 벌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전시장에 등장해 작품과 함께, 혹은 그 사이를 오가며 즉흥잼을 즐겼다.
‘월간 짜잔잼’ 포스터
짜잔잼 퍼포먼스
노들야학이 가진 공연성에 대해 생각한다. 여러 옷을 입고 있지만, 어쩐지 투명하다. 외침을 노래로 만들고, 노래를 춤으로 만들고, 춤으로 언어를 만든다. 동료가 된 우리는 즐겁다. 언제나처럼 서로의 곁에서 표정과 몸짓을 주고받으며 어제와는 다른 관계를 여전히 맺어가고 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마로니에 공원을 바라본다. 무심한 척 걸어가는 사람과 빠르게 굴러가는 사람, 앞길을 살피며 미는 사람과 가만히 밀리는 사람, 헐레벌떡 뛰어가는 사람과 팔꿈치를 괴고 누워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 색도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사람들의 이동이 음표가 되어 비선형적 악보를 만든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공원도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다음 악장을 기대하며 오늘도 낮수업에 간다.
*전시 ≪여기 닿은 노래≫는 아르코미술관 X 지역문화재단 협력 기획전으로 2024년 4월 5일부터 6월 30일까지 마로니에 공원에 위치한 아르코 미술관에서 개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