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일렁 너울너울 펄럭펄럭~
노들 에스쁘와, 아르코미술관 전시 오프닝 공연 (2024.4.4)
린
노들야학 신입교사고 매주 금요일 저녁 합창과 연대 수업을 합니다
에스쁘와가 아르코미술관에서 하는 장애 예술 전시 오프닝 공연을 하는 데 혹시 함께할 수 있을지 여쭤봐요. 보자마자 하고 싶다는 답변을 보냈습니다. 원래 있던 일정을 조정하는 건 그다음 일이었고요. 저번 공연 때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런 좋은 기회라니! 제안을 받고 좋았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 이번 만장을 든 사람은 총 5명이었습니다. 그럴법하죠. 누구나 깃대를 흔들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하지 않을까요? 멀리서도 눈에 띌만큼 커다란 기를 흔들어볼 수 있는 일. 공연자와 관람자가 뒤섞이는 판에 합류하고, 같이 무대를 감싸며 깃발을 일렁이는 일. 끌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공연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 리허설을 하는 옆에서 장대에 깃발을 매달았습니다. 꼭꼭 묶고 들어보니 생각보다 높고 능청거리더군요. 휘청 휘청. 요령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장대로 누군가를 치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간단하게 동선을 맞춰보고, 흔들거리고 하다보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몸이 들썩이는 음악과 화려한 차림의 공연자들 사이에서 장대도 한몫했죠.
아르코미술관 입구 계단과 평평한 바닥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전시 행사 때문에 온 사람, 공원에서 잠깐 쉬던 사람, 연극을 보기 위해 마로니에를 지나가는 사람. 이 분위기가 마로니에 공원에 무언가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를 충분히 심었을까요. 적어도 공연자에겐 그랬을 것 같습니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서로 손을 잡으며 걸어오던 얼굴들이 기억납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야 알아차린 사실이 있는데, 만장을 들고 있는 사람은 공연을 보기 어렵습니다. 당연하죠. 몸의 몇 배가 되는 커다란 깃발이 시야를 가리니까요. 다행히도 깃발의 틈새 너머로 공연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저녁 수업에만 참여하는 저에게 낮수업은 호기심의 영역입니다. 교실 벽 너머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칠판에 가사가 적혀있다거나 하면 옆에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옆자리 사람들에게 아닌 척 귀를 기웃거리는 느낌이 듭니다. 에스쁘와의 공연은 보고 있어도 호기심이 생깁니다. 궁금한 느낌입니다. 뭘까. 어떤 걸 하고 있는 거지. 어떻게 반응할까.
그들의 몸짓에는 보는 이의 감각을 자연히 곤두서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순간의 마주침과 움직임으로부터 파장이 일렁이는 느낌입니다. 마음의 떨림에 몸이 반응할 수 있는 곳. 무대를 중심으로 동심을 그리며 포진된 관객들은 공연이 진행되면서 하나둘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낯을 가리며 총총 떨어져 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엠마 님이 그들을 다 엮어서 안쪽으로 둥둥 밀었습니다. 재밌었습니다. 사람들은 걸음을, 저희는 깃발을 너울너울.
다행히 아무도 제 장대에 맞지 않고 공연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공연을 마무리하고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식사가 끝나는대로 일어나는, 세상에서 가장 쿨한 회식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회식이 이 쿨함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예상치 못한 관객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습니다. 예를 들어 공연이 끝나고 나니 왜인지 장난감 칼이 생겼다는 이야기 같은. 특이한 사람을 만났다는 목격담도 있었고요. 근데 그런 사람이 같이 모일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 모이는 게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어 신기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그때의 감정을 최대한 포착하고 있는 지금에도 그 느낌이 제대로 표현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노들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이 그렇죠. 바름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인의 언어능력을 특권화하지 않는 공간의 당연한 특성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의성어와 의태어를 활용해보려고 했습니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무언가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보다는 오히려 풀어놓습니다. 고정된 언어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흐르는 에쓰쁘와처럼.
응원을 들으며 쭈뼛 벌떡 일어나던 연옥님
우둘투둘한 바닥 때문에 툭툭툭 거친 소리를 내며 움직이던 지용님
꿈틀꿈틀 움찍움찔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살짝 감도는 긴장감
빙글빙글 돌아가며 호루라기 신호에 귀기울이던
삐죽삐죽하고 복슬복슬한 사람들
에스쁘와에는 아름답고 교묘한 글도 빗겨가는 복잡성과 모순이 있습니다. 그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첫 만장 들기, 즐거웠습니다! 펄럭펄럭~
만장을 준비하는 모습.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검은색이 섞인 화려한 깃발이다. 장대가 길어서 다들 쭈그려 앉은 채로 깃대에 매듭을 짓고 있다. 아르코 미술관의 야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붉은 벽돌 너머로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아르코미술관 앞에서 의자를 놓고 둘러앉아 리허설을 하고 있다. 승미 영교 듀오의 차례. 승미님을 같이 응원했다.
계단 위 입구에서 깃발을 흔드는 모습. 깃발이 너무 길어서 내가 목이 긴 동물이 된다면 어떤 느낌일지를 아주 조금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