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 책꽂이
휘말린 날들: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최바름
장애인활동지원사, 노들장애인야학 휴직교사
나는 얼마 전부터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의 대표 윤가브리엘을 활동지원하고 있다. 그는 장애운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자 했다. 나는 그가 장애운동의 주요 의제 및 역사, 다른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집회, 행사, 강좌에 참여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그의 집에 놓여있던 책 『휘말린 날들』은 반대로 내가 HIV의 문화적 구성, 정치성, 감염인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저자 서보경은 인류학자이자 HIV인권운동 활동가로서 감염과 질병에 휘말린 사람들이 나눠준 말들을 곱씹어서 독자에게 전해준다.
『휘말린 날들』은 장마다 각기 다른 주제, 형식, 목적을 갖는 입체적인 책이다. 1장과 2장은 미국과 한국의 다른 조건 아래서 HIV/AIDS에 대한 지식과 태도가 각각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 살핀다. 3장은 한국에서 감염인들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를 문화기술지 형식으로 논증한다. 4장은 한국 HIV/AIDS운동을 되돌아보며 기록하고, 이것이 장애 운동과 맞닿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5장은 성적 욕망에 수치를 가하는 국내 법의 문제를 지적하고, 도를 닦는 태도로 불명예 섹스를 계속하는 수행자를 이러한 법의 부조리함을 이겨내는 인물이자 이미지로 제시한다. 6장은 저자가 말하는 ‘휘말림’이 무엇인지, 이 개념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지 밝힌다. 7장은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젊은 감염인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한국 사회가 이들에게 어떤 삶의 자원이 되어줄 수 있을지 묻는다.
노들바람을 받아 읽는 독자들은 장애운동과 HIV/AIDS운동이 서로에게 어떤 정치적 가능성을 의미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HIV에 대한 지식과 태도가 역사적으로 매우 편협한 방식으로 만들어져왔고, 이에따라 감염인이 사회 및 친족의 구성원으로 여겨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그에 어떻게 저항해왔는지를 드러내는 1장부터 4장까지의 내용을 장애운동과 같이 놓고 비교해보며 독자들은 HIV운동에 연대할 책임을 갖고 힘을 나눌 수 있다. 5장 이후의 내용은 감염인의 금지된 성적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감염 당사자를 넘어 정치를 확장하는데 유용한 인식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는 장애담론이 HIV담론을 대화 상대로 삼아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한국의 장애담론에서 섹슈얼리티 논의가 부족해 왔고 장애당사자와 비당사자의 구분이 본질화되어 왔다면, 나는 이를 넘어서는 지혜를 HIV담론이 담고 있다는 것을 『휘말린 날들』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저자가 본문의 첫 장과 마지막 장에서 강조하듯, 이 책은 HIV/AIDS에 관한 사실을 새로 짓고, 이를 통해 다른 미래를 열어가고자 한다. 독자들은 HIV/AIDS에 관한 교양 함양을 넘어 한국에서 현재진행형의 삶을 살아가는 감염인들에게 어떤 미래가 가능할지 고민하기를 요청받는다. 감염인들의 미래는 장애운동이 그리는 미래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기여할 수 있을까? 저자가 드러내듯 한국에서 장애와 HIV의 정치가 이미 만나고 있다면, 그 만남의 의미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 『휘말린 날들』은 이러한 질문으로 장애운동을 초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최근 윤가브리엘은 올해 출범 예정인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나는 이 조직에서의 활동이 윤가브리엘을 장애운동에 더 깊이 연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나아가 HIV/AIDS운동과 장애운동의 관계를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