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는 사람들과 타지 못하는 사람들
영상활동가의 시선으로 본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23주기 투쟁
민아영
장애인권운동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운동이 개인의 일상에 어떤 의미와 변화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주로 탈시설하여 자립생활하고 있는 장애인의 일상과 그를 둘러싼 지역사회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지하철 행동을 찍은 건 2021년 12월 이전부터다.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20주기(2021년 1월 21일) 투쟁이 있던 날, 이동권 투쟁 20년의 의미와 박경석 노들야학 고장선생님을 찍기 위해 오이도역으로 갔다. 당시 박경석 고장선생님의 다큐멘터리를 준비해 보고자 촬영을 시작했었다. 2021년이라고 하면, 박경석 고장선생님이 노들야학 교장에서 퇴임한 해였다. 고장선생님은 노들야학에서 퇴직하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활동 공간과 거리를 두며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직 퇴임 중이신 것 같기도 하고.
처음 가본 오이도역은 추웠다, 한겨울이기도 했고.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한 탓에 공복이라 온몸이 달달 떨렸다. 오이도역사 안에 있는 오뎅집이 아니었다면 영상이 죄다 흔들려 찍히지 않았을까. 그래도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자, 역사 안의 한기는 조금 사그라드는 듯했다.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와 지금의 이동권 상황에 대한 발언을 하고, 결기를 다지고 서울역을 향해 지하철을 탔다.
각 열차마다 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장애인 권리에 대한 퀴즈를 맞히기도 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 정규 교육에서 배제된 사람, 막 탈시설한 사람 등 각자의 표현방식 그대로 열차를 점유했다. 서울역까지 이동하던 그 열차 속 행위들은 장애인의 권리를 알리는 캠페인이기도 했지만, 장애인에게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게 했던 ‘지하철’이라는 공간 자체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나 싶다. 빠르게 이동하는 발걸음 속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정확히 구분되어지는 비장애인의 폭에 맞춰진 행로, 지하철 문이 열렸을 때 쏟아지는 사람들과 줄지어 들어가는 비장애인 이용객들 사이에서 다른 몸을 가진 이들이 나타났을 때, 느껴지는 불편한 기색과 시선으로 벗어나는 지하철을 타보는 것 말이다.
지하철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멈추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전장연이 천천히 지하철을 하차하며 열차가 지연되고 있던 시간 동안 오고가는 시민들의 욕설과 고성, 경찰들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새로운 경험을 향하던 지하철은 ‘빨리 움직여야 하는 목적’으로써 지하철로 다시 돌아왔다. 이 시점을 시작으로 지하철행동의 횟수가 많아졌고, 2021년 12월에는 매일 지하철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외치겠다고 선포하기까지 했다. 계속해서 지하철행동을 촬영하다 보면 지하철을 타는,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아직 타지 못한, 탈 수 없는 사람들이 떠오르게 된다. 2022년 5월, 20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감사히도 장애인거주시설 대구시립희망원에서 탈시설한 9명의 중증중복 발달장애인분들의 3년의 자립생활 기록을 담은 다큐 ‘희망의 기록’이 박종필상 관객상을 받게 되었다. 수상소감 일부를 잠깐 가져오자면,
“3~40년간 (장애인거주시설 내) 위계관계 속에서, 내 삶의 욕구도 없이 배제된 채 살아온 아홉 분들에게 어떤 사과도 없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냐고, 살아갈 수 없다고 하는 사회가 너무 야속했습니다. 그래서 전장연이 지하철을 잡고 버스를 잡고 했던 것 같습니다. 장애인이 시설에서 지워지지 않게, 시설에 남겨두지 않으려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하는 이 투쟁이 너무나 멋지고 자랑스럽습니다.”
‘이동수단 지하철’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으로 시선을 바꿔보면, 지하철은 지역사회에 살고 있으며 임금노동을 할 수 있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이동한다. 몇십 년째 멈춰진 사람과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사람 간의 간극을 말하고자, 전장연이 이동하는 시민을 멈춰 세웠단 이유로 이젠 지하철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촬영하다가 처음으로 서울교통공사 보안관 3명에게 붙잡혀 질질질 혜화역에서 쫓겨났을 때, 부당함에서 오는 분노도 물론 있었지만 걱정부터 앞섰다. “앞으로 이 현장을 어떻게 기록하지?”, “기록하는 사람이 없다고 더 폭력적인 상황이 생기면 어쩌지?” 그리고 실제로 현행범 체포, 폭력적인 퇴거들이 줄지어 일어났고, 급기야는 기자도 퇴거당하기 시작했다.
‘카메라부터 치워’라는 최영도 전 서울교통공사 고객지원센터장의 말에 무력해지지 말자고 다짐하며 간 이동권 투쟁 23주기 지하철행동에서 나는 시작부터 조금 움츠러들었다. 이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으로 가는 것을 기록을 해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았고, 다짐을 했던만큼 ‘마음에 지지 말고 가자!’라고 혼자 기합을 넣으며 갔다. 그런데 기합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건지, 요청받은 시간 20분 전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도착했고 이미 보안관들과 경찰들이 플랫폼에 서있었다. 지하철을 타지 않고 계속해서 보내고 있는 나를 본 한 경찰이 “혹시 전장연 관계자이신가요?”라고 물었을 때, 뭐라 대답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그대로 꼬여버렸다. “..책임자는 아닙니다”
경찰이 물어본 질문의 의도는 현장 상황에 대해 소통하는 활동가냐는 질문이었겠지만, 내 답변의 어중간함에 계속 곱씹어보게 된다. 아니라는 소리는 못 하겠고, 전장연 관계자는 맞단 소리를 했다. 그날 8시 동대문에서 휠체어를 탄 두 장애인 활동가가 지하철 탑승시도를 했고, 경찰과 보안관에 의해 저지당하는 과정에서 지하철에서 떨어지고 철로에 얼굴이 짓이겨지기도 했다. 매번 이런 소규모의 시위 현장에 갈 때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데, 경찰이나 보안관들의 진압 수위가 폭력적인 것을 넘어서 모멸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록하는 카메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폭력적인 상황에 증거를 남길 필요도 있고…. 보통 공무집행을 하는 이들이 영상으로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행동에 있어 나름의 조심(?)을 하던데, 이제는 그런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휠체어에서 분리된 장애인 활동가들의 저항 방법은 실상 없었고, 상황은 점점 처절해져갔다. 결국 한 장애인 활동가는 진압 과정에서 입을 맞아 피가 흘렀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맞은 사람은 현행범이 되었고, 때린 사람은 ‘정당한’ 공무집행인 시대구나, 다시 한번 절감. 앗 정당(政黨)?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혜화역에서는 마치 통과의례처럼 출근길 지하철에서 쫓겨났다. 너무 시린 겨울이다. 지하철역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눈과 볼, 코끝이 빨갛게 물들어 가는 걸 본다. 서울시로부터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은 쫓겨나고, 최중증장애인들의 지원주택도 쫓겨나고, 장애인인권영화제도 쫓겨난다. 이렇게 계속 쫓겨 나가는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모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가 잘 울려 퍼져서, 비장애인 이동하는 그 열차에 더 다양한 사람들이 탈 수 있는 날을 찍을 기회가 오면 좋겠다.
갑분 마무리…. 그럼 다들 지하철에서 쫓겨나지 않는 날까지 각자의 목적지로 향할 그 지하철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