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후원인을 모집하는 후원인
이현옥님 인터뷰
박임당
노들야학 교사
십여 년 전 공부하러 갔던 한 인문학 공간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학인으로 만났던 이현옥 선생님을 몇 년 전부터는 노들야학의 막강한 후원인이자 친구로 종종 만나 뵙게 되었다. 현옥샘은 매년 학생들의 무상급식 기금을 모으는 <평등한 밥상> 시즌이면 고병권 선생님을 통해 묵직한 돈다발(!)을 전해 주셨던 후원인이시다. 정보가 없을 때는 그저 큰손 후원자일거라 추측했었는데, 사실은 후원 조직책(?)이자 후원금 운반책(?)이셨던 분이라는 사정을 알고 나서는 다른 마음으로 감사히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평등한 밥상> 행사 담당자가 되면서 드디어 선생님에게 직접 연락을 드렸었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나요? 저 노들에서 일해요!” 그때부터 선생님과 교류하며 공부하시는 이야기도 듣고, 야학 이야기도 들려드리며 호시탐탐 인터뷰의 기회를 노려왔다. 오랫동안 작업하시던 책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이 드디어 나와서 책 이야기도 듣고 싶고, 어떻게 후원인 조직이 가능했는지 비책도 알려주십사 만남을 청했다.
# 『노들바람』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복사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태어나 어느덧 육십여 년을 살았다. 삼십 대 중반까지는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었고, 오십이 될 때까지는 네 아이와 더불어 가정주부로 살았으며,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는 학교 밖에서 공부하는 일과 살림살이를 겸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몰라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공부해서 알게 된 대로 살고 싶어 공부한다. 앎이 말과 행위로 표현되기까지 그 구체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많고, ‘변화’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얼마 전부터 국가, 계급, 장애 문제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노들야학을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후원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가족과 친구 등 주변에 장애인이 많은 편이다. 엄마와 이모들이 청각장애인이고, 남편도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장애문제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특별한 편견도 없는 편이었던 것 같다. 최근에야 비로소 장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도 하게 되었다.
노들야학은 고병권 선생님 강의를 듣다가 그분을 통해 알게 됐을 거다. 노들야학의 모든 분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고병권 선생님의 광팬이다!^^ 언제부터 후원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처음엔 소소하게 티켓을 권하다가 조금씩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 최근에 오랫동안 작업하신 책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책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을 노란들판 후원인들에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10년 이상 공부라고 하긴 했지만, 나는 연구자가 아니다. 학교 다닐 때도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대학원 과정도 거치지 않았으니 일단 학문적인 책은 쓸 주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살면서 내 힘으로 풀 수 없었던 문제들을 풀고 싶은 마음에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내가 쓸 수 있는 건 다 늙은 나이에 굳이 학교 밖 공부를 하게 된 이유와 그 과정뿐이었다. 그 과정을 솔직한 내 언어로 쓰고 싶었고, 무엇보다 나처럼 공부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나 내 자식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공부하기 전에 나는, 어떤 선택이나 판단을 하고 행위하게 하는 게 나의 순전한 의지가 아니라는 건 어렴풋이 알았지만, 어떤 힘이 그렇게 만드는지를 몰라 늘 답답했다. 나 자신도 모르겠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나 그 세상과 나의 관계도 모르니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를 몰라서 평생을 쩔쩔매며 살았다. 이렇게 나도 몰랐던 힘들(세상의 도덕이나 편견, 돈이나 권력이나 지위나...)에 의해 결정되던 나를 깨고,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이나 방식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는 과정, 이런 게 내가 생각하는 공부였다.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면서 보니, 여전히 자의식과 욕심이 앞서서, 깨지기는커녕 현재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나를 더 근사하게 포장하는 공부랄까. 그러니 공부라고 하긴 하면서도 정작 별로 변하지는 않는 것 같고, 자유로워지지도 않고, 힘이 세지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뭐가 문제일까 고민을 많이 했고, 결국 공부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부분의 공부하는 곳에서 프로그램 안내 같은 것을 할 때 보면, 공부가 가지는 이미지가 있다. 그 공부만 하면 마치 뭔가 폼나는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느낌들 말이다. 내가 그걸 깨닫고 구체적인 삶으로 넘어온 과정 같은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고, 혹시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 (이현옥, 천년의상상)
# 책을 읽었을 때, 공부와 삶에 대한 이야기, 삶의 어려움을 풀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는데, 공부한 것을 다시 삶으로 옮겨오기 위해 노력하신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공부를 통해 얻게 된 건 삶에 대한 믿음과 좋은 삶에 대한 상상력인 것 같다. 비록 내가 사는 지금의 세상이 불의와 편견과 고통으로 가득해 보이지만, 그건 삶 자체가 원래 그런 거라서가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문제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좋은 삶에 대한 믿음이나 상상력이 중요한 것 같다. 내 생각에 좋은 삶에 대한 상상력은 막연한 환상이나 이미지와는 다르다. 그리고 그건 구체적인 삶을 통해서건 혹은 책을 통해서건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노들야학이나 전장연 활동을 하면서 싸우시는 분들은 그런 좋은 삶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그런 삶을 훼손하고 방해하는 것들과 맞서서 싸울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나 같은 보통 사람은 그런 좋은 삶을 일상에서 경험하기가 어려우니까 공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 생각에, 공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좋은 삶을 아무리 상상을 해봐야 ‘기존의 가치가 인정하는 좋음’을 넘어갈 방법이 없어 보인다. 보통 사람들이 장애나 차이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태도가 동정이나 연민의 수위를 넘어갈 수 없는 이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나의 예로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장애가 있거나 돈이 없거나, 성소수자이거나 이주민이거나 간에 아무런 차별이 없는 사회가 있다고 가정해 보는 거다. 그런 사회에서 어떤 아이가 태어나서 자란다고 생각을 해보면, 그 아이가 갖게 될 삶에 대한 상상력이나 그 아이가 누리게 될 자유 같은 것은 지금 이 땅에서 크고 있는 아이들이 누릴 자유랑 비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게 ‘너의 자유가 곧 나의 자유와 연결되어 있다’거나 ‘너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지금 세상에서는 차별받는 사람뿐 아니라 차별하는 사람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까.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생각도 못 했을 게 분명하다. 어쨌거나 내 공부의 가장 큰 목적은 내가 먼저 있어서 너와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애초에 너와 나의 관계가 나라는 것, 그걸 내 몸으로 온전히 체화하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지금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차별하는 사람들까지도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딱 그런 의미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 정기후원 외에도 매년 학생들의 무상급식기금을 마련하는 <평등한 밥상> 행사에 많은 후원인을 모집해 주고 계시잖아요. 몇 년 전 고병권 선생님이 전해주신 돈다발(!) 사진이 인상깊었는데, 그 많은 후원금이 개인 후원금이 아니라 주변 지인분들에게서 정성껏 모금하신 후원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었어요. 그렇게 하시게 된 계기도 궁금하고, 후원을 모집하는 노하우도 살짝 전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돈다발은 무슨? 많은 금액이 아니었다. 사실 후원금을 모금하는 것은 공부와 별개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세상과 나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장애인들이 고통받으며 살고 있는 세상이 곧 내가 사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할 기회가 나에게 선물로 주어졌듯이, 후원금을 모금할 기회도 선물이었다. 많은 분들처럼 현장에서 몸으로 싸우지도 못하고, 글이나 학문으로 힘을 보탤 처지도 아니니 1년에 한 번 이 정도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진심으로 고맙다. 후원인들도 마찬가지인데, 1년 내내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정신없이 살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가 1년에 한 번이라도 이런 기회를 주면 생각보다 고마워하는 사람이 많더라. 내가 그들에게 부탁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물할 기회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든지 자기가 선택하고 싶어 하지, 누가 자기한테 명령하는 것 같거나 선택을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면 거부하고 싶어 한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진심 정성껏 각자의 상황에 맞춘 글을 카톡으로 보내서 후원해 주십사 청한다. 노들야학이라는 곳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이곳에 후원을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느낄 수 있도록. 후원금을 모집할 시기가 되면 한 이틀 정도를 할애해서 그 작업을 하는데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안부를 묻고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보낼만한 사람에게 보내기도 하지만, 그런 정중한 글을 받고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분들은 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은 가치를 선택하고, 그 가치에 돈을 쓰는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돈은 한정된 자원인지라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는 우선순위에 따라 돈을 분배하기 마련인데, 내가 하는 일은 그분들이 가진 가치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주는 일이라고나 할까. 물론 자신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다. 대신에 그분들은 그 돈으로 외식을 하거나 옷을 샀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뿌듯한 기쁨을 느끼지 않을까. 자신은 좋은 가치를 선택한 좋은 사람이니 말이다.
처음에 할 때는 그렇게 후원을 받고 티켓과 노들회보를 챙겨 보내고 끝난 경우가 많았는데 나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행사 이후에도, 당신 덕분에 행사가 이렇게 잘 끝났고 후원금이 잘 모아져 올해도 무상급식을 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반드시 챙겨 보낸다. 물론 진심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고병권 선생님 글이나 맞춤한 글이 올라오면 퍼 나르고, 기부금 영수증 같은 것도 확실하게 챙겨서 처리해 드리면서 신뢰감을 잃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또 하나, 특별히 어려운 형편이 아니라면 1년에 그 정도의 금액을 후원할 선의는 보통 사람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 텔레비전에서 후원 광고를 볼 때마다 찔리는 마음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후원을 하면 그 돈이 제대로 쓰일까 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믿을만한 지인을 통해 제대로 쓰일 곳에 후원을 하게 되어 좋다는 인사말도 많이 들었고, 자신을 잊지 않고 뽑아줘서^^ 고맙다는 분도 계셨다. 작년에 몇 년째 50만 원을 후원하던 분께서 내가 보낸 카톡에 ‘올해는 물가가 많이 올라서’라는 답장을 주셨길래 올해는 좀 적게 하시라 했더니 오히려 60만 원을 보내셨다. 물가에 맞춰서 보낸 거라면서. 액수가 너무 커서 부담스럽다, 내년에는 건너뛰겠다고 했더니 내년에 연락 안 하면 이제 안 논다고 협박을 하시더라(웃음).
후원자를 모집하는 건 이 세상 사람들과 그들이 미처 알지 못하던 다른 좋은 세상을 연결하는 일인 것 같다. 그러니 손이 많이 가고, 정성 또한 많이 쏟아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어차피 우리가 돈이 주인인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이상, 노들 같은 단체에서는 후원조직을 탄탄하게 끌고 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후원자를 대상으로 관리하는 게 아니라, 후원자들이 행사 때뿐만이 아니라 일 년 내내 노들야학에 구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아울러 실제로 이 후원행위를 통해서 자기도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 마지막으로 노들야학에 바라는 것 혹은 노들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얘기해주세요.
물론 내 주관적 생각이지만 ‘노들바람’이 너무 두껍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나 같은 경우도 몇 군데 후원을 하다 보면 회지가 여기저기서 오는데 꼼꼼하게 다 읽기가 힘들더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많은 것을 싣기보다는, 양을 줄이고 다 읽고 싶게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이 집중해서 재미나게 읽게 되는 건 주장이나 당위에 관한 글보다는 살아온 얘기나 스토리가 아닐까. 누군가가 이미 옳다고 내려놓은 결론을 전달하는 글은 읽는 사람이 자기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안 들고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반면에 누군가가 온몸으로 살아온 진솔한 얘기에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간다. 그런 이야기의 비중이 커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