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2번의 질긴 인연으로 팔자에도 없는 소장 노릇을 하는 나에게 아주 많이 엄청난 임무가 주어진다. 서울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사업의 공고가 홈페이지에 뜬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매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30여 곳의 사업계획서를 신청 받아 자치구에 한 센터
씩 지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2013년) 1년사업이 아니라, 3년 동안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즉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번에 떨어지면 3년 동안은기회가 아예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큰 기회이자 모험이었다.
하지만 센터 내외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많았다.내부적인 어려움으로는 좁은 사무공간을 장애인극단판(현 장애인문화예술판, 이하 문예판)과 같이 쓰다 보니 내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자립생활센터에서의 실무 경험이 대부분 적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 그 부분에서는 부담감도 컸지만 차라리 아예 백지상태의 상황에서 처음부터 내 뜻을 많이 반영시키며 하나하나 함께 만들어가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약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그 상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투덜거리면서도 늘 내 뜻에 잘 따라주는 활동가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가서 외부적인 어려움도 컸는데 이미 성북구에는 우리 말고도 2개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더 있었다. 한 센터는 성북구에서 10여년 동안 터를 닦아온 S센터, 다른 한 센터는 원래 마포구에 있다가 그곳의 박 터지는 경쟁을 피해 살짝넘어온 M센터이다.
마침 서울시에서 장애인 인구가 많은 지역은 자치구당 1개가 아니라 2개의 센터를 지원한다고 했었고 성북구도 그 조건에 아슬아슬하게 충족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만들어진 지 2년도 안 되는 신생자립생활센터에서 소장이 된 지 3달도 안 되는 내가 그 두 센터를 경쟁에서 이겨야하는 부담감은 의외로컸다.
물론 전 센터들에서 활동보조 코디네이터, 권익옹호팀, 행정지원팀을 거치면서 쌓인 경험이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만 어쩌면 센터의 운명이 걸린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사업 신청은 정말 커다란도전이었다.
우선 사무국장 역할이었던 좌동엽 샘과 역할을 나누어서 사업계획서 작성을 진행했다. 나는 나름 숫자에 강했으니 예산 부분을, 사업 내용 부분은 사무국장님과 활동가들이 머리를 쥐어짜면서 작성해 나갔다. 일주일 넘게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해서 3년짜리, 예산 규모 5억 4천만원의 사업계획서가 완성이 되었을 때, 완성을 했다는 뿌듯함보다는 과연 이 계획서가 다른 센터들의 계획서들을 제치고 채택이 될까라는 불안감이 굉장히 컸다.
사업계획서 말고도 부수적인 서류들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구청에서 사무실에 직접 나와 시설 점검을 할 때는 입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쨌든 성북구청을 거쳐 서울시에 서류들을 접수 시키고, 약 한 달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센터판과 문예판이 함께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었고. 월곡동 일대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센터 지원 사업 외에 서울시 장애인복지 계정사업, 성북구의 시정참여 사업 등에도 야심차게지원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났을까? 한창 이사 갈 곳을 사무국장님과 살펴보고 있었고 시간은 막 오후 6시가 될 즈음이었다. 센터판 카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 활동가2 : 소장님.. 서울시 사업 발표날인데... 아직 안떠요.. ㅠㅠ 소장님 : 그래요? 6시 다 돼가는데 ...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ㅋ 활동가2 : 설마 우리 떨어지는 거 아니겠죠? ㅠㅠㅠㅠ 소장님 : 흐... 뭐 팔자려니 해야죠.... -_-: 그나저나 받침 좀 써요 ...ㅋㅋㅋ 활동가2 : 소장님 미워, 흥! 소장님 : -_-:::: 활동가2 : 악...! 우리 된 거 같아!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장님 : 응? 뭐가??? 활동가2 : 서울시요, 서울시 사업!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
바로 인터넷으로 접속해보니 정말 우리 센터판의이름이 34개 센터 중에 시비 지원 센터에, 포함(34개 중 4개는 국비, 시비 지원, 나머지는 시비 지원)되어있었다. 이사 갈 곳을 같이 둘러보던 사무국장님에게 알려드렸더니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뭔가 해냈다는 안도감과 희열, 고생문이 훤히 열렸다는 공포감(?)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10명도 안 되는 작은 단체의 책임자로서 첫 관문을 무사히 넘긴 것도 의미가 크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에 자립생활센터 활동가로서 자립생활센터 운영에 대해 고민했던 것들을 비교적 (활동가였을 때에 비해) 자유롭게 반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센터 구성원들과의 충분한 소통을 하면서….
그로부터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많은 시행착오와 위기를 겪었고 그로 인한 경험들이 단단하게 쌓이면서 점점 더 내실 있는 자립생활센터가 되어가고있음을 느낀다. 물론 아직도 많은 부분이 모자라고해야 할 것도 많다. 우리 활동가들과 함께 성북구에서 부족하고 조금은 어설픈 점들을 채워간다면 우리센터의 슬로건이 단지 슬로건으로만 끝나지는 않을것이다.
답답하고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여,
설레는 마음으로
‘가슴 뛰는 세상을 꿈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