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요한입니다.
가벼운(?) 끼어들기 ... 저자소개
그는 노들의 현수막공장 ‘노란들판’ 신입사원이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것 때문에
노들 또한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고 고민했었다.
하지만 어려운 의사소통의 문제를 그에게서 찾기보다
노들 안에서 찾기로 했다...
그는 구화도 조금, 수화도 조금, 글도 조금 안다.
그와 우리 모두 수화를 주된 소통의 방식으로 삼기로 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노들에서 수화수업을 참여한다.
그런 그에게 그림을 그려줄 것을 부탁했다.
그에겐 평생 자신과 세계를 이어준 소통의 방식 그림.
노들 안에선 수화를 통해 사람들과의 소통을 넓혀가고
여기 웹진에선,
그만이 가진 소통의 방식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말을 건네고자 한다.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고 여겼었다.
물론 이런 나의 벅찬 마음 또한 그에게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ㅋ
아래엔 내가 이해한 그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은 없을 듯.)
나무엔 지금과 과거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쉽게 짐작하겠지만 나무는 그 자신 이외의 것을 나타낸다 보긴 어려울 것이다.
나무 치고는 그다지 크지도 않고, 울창하지도 않으니 무언가 사연이 있을 듯.
그 사연은 어릴적, 특히 학창시절 제대로 자랐어야 할 그 시기로 돌아간다.
학교에 있던 그 나무는 자신에겐 너무 어려운,
비장애인들에겐 너무 익숙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에 적응하지 못했다.
교우들과, 선생님들과 단절되어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했던 그 나무는
결국 가지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잘려나가는 듯한 슬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렇게 지내다 지금에 와서 새롭게 자신과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고
서로의 소통 방식으로 수화를 함께 배우고 있다.
이 수화가 지금의 나를 깨웠다.
잘려진 가지엔 이제 새싹이 돋고,
무엇보다 이 나무는 다시 자라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그것은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난 말한다.
“이 봄에, 다시 공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