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여름 101호 - 아픈 상태로 건강하게 살기

by 편집위 posted Nov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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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상태로 건강하게 살기 의료민영화가 두렵다 - 노들야학 유미




지난 겨울부터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쳤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지만 그렇다고 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마음은 늘 바빴고, 많은 일 위에 새로운 일들이 또 닥쳐왔고, 피할 수 없었다. 봄이 오면 다시 요가를 해야지, 명랑하게 춤추러 다녀야지 생각만하다가 봄이 지났다. 광화문에선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 진행 중. 지하철역 안에 자리 잡은 농성장은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하다. 겨울이면 커피포트의 물이 얼고, 식물이 얼어 죽는다. 농성은,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잦다. 농성 속에서 내 역할은 비록 미미하였을지 몰라도 나는 그것을 계속 느끼며 지내왔다. 우리는 지금껏 시청 광장, 구청 앞, 지하철역 안, 국회 앞 대로변, 보신각 앞 광장 같은 곳을 떠돌며 투쟁해왔다.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시끄러우면 시끄러운 대로.


   어머니는 종종 지금도 나에게 ‘이제 그 일은 그만해라’라고 말씀하신다. 돈이 없어 끙끙대는 것도, 몸이 아프다고 징징대는 것도 다 이 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 서울에서 먹고 사는 일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쯤 알고 계시기에, 백만 원 남짓한 돈으로 지내는 딸이, 그것도 데모하러 한 데만 쫓아다니고 밤이면 야학한다고 집에도 안 들어가는 딸이 걱정스러우신 거다.


   어머니가 느끼는 것이 맞다. 내 삶은 어느 면에서는 그렇다.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버는 것, 필요한 것을 갖는 것, 따뜻하고 시원하게 그렇게 편안하게 사는 것과 거리가 있다. 월세 내기가 벅차서 싼 집을 찾아 살다가 침수와 곰팡이에 시달리기도 했고, 기름값 아끼려다 호흡기 질환이 만성화되기도 했다. 농성장에 있다 보면 발이 얼어붙고, 기나긴 야근에 드디어 팔이 저려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젊은 시절(?)엔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강정에도 가보고 희망버스도 타고, 1박 2일, 2박 3일 그렇게 싸돌아 다녔는데. 지금은 그 시간이 꿈만 같을정도로 나는 이제 내 한 몸 챙기기가 벅차게 망가졌다.


   곁에 있는 선배들은 내가 아프다고 칭얼대면, 이쪽 삶이 ‘원래’ 그렇다는 듯, ‘나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거나 ‘나는 아침에 코피가 터졌다’거나 ‘피곤하면 술 한 잔 먹고 푹 자라’라고 했다. ‘나는 요새 너무 아파서 휠체어를 타잖아’라고, 장판(장애인운동판)에서만 가능한 이상한 농담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고 실제로 돌아보면 우리 야학 학생들은 척추측만이나 근육경직으로 나보다 훨씬 더 아파 보였다. 그래서 더 징징거리지도쉬지도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신체손상 상태와 질병 상태는 다른 것이지만.


   지난 여름 노들야학 교육기금 마련 일일호프를 마치고 알콜에 절여진 상태에서 부고를 접했다. 나보다 서너살 많은 지인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이었다. 너무나 믿기지 않는 일이었기에, 이것이 사실이냐고재차 물었던 것 같다. 30대에 돌연사라니. 친하진 않았지만 현장에서 오래 봤던 사람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정신의 에너지도 스물스물 빠져나갔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아파서 울고만싶었고, 활동도 사는 것도 마냥 허무했다.


   그리하여 한 달의 병가를 받았다. 절반은 재택근무나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은 잠만 잤다. 예전엔 이렇게 잠자고 일어나면 다 나아있었는데, 계속 상태가 안 좋았다. 동네에 있는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다.내과에 갔다가 한의원에 갔다가 정형외과에 갔다가… 이 의사는 이렇게 저 의사는 저렇게 말했고, 어느 의사는 건강하다고 어느 의사는 심각하다고 말했다. 가자마자 주사부터 맞히는 병원이 있었는가 하면, 비보험 치료를 일단 해주고 보는 병원도 있었다. 의사들은 바쁘고 나는 환자라기보다 손님이었다. 길게 들을 마음이 없는 의사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어려웠다. 그래서 한 방에 종합적으로 보면 좋겠다는 마음에 종합병원 건강검진을 찾아봤는데, 너무 비싸서, 깜짝 놀라 재빨리 못 본 체 했다. 특정검사를 추가할 때마다 비용도 추가됐다. 겨울이면 동상 때문에 자주 찾았던 동네 한의원의 한의사는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됐느냐며 약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이 와중에도 이 젊은 사람의 머릿속엔 약이 얼만가요? 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스스로 처지가 참 딱하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그런, 궁상스럽게 하는 직장 때려치우면 될 것 아니냐 라고 하지만, 나는 이것이 직장의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다. 불안정한데다,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운 조직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4대보험에도 가입돼 있고 최저임금은 기본으로 확보하고 있다. 소수의 계급을 재생산하는 신의 직장이 아닌 한, 우리사회는 지금 불안정한 노동 상황에 처해있기에 어딜 가나 불안한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지 않은가. 물론 지금 보다야 돈을 좀 더 구할 수 있는 '직장'에 갈 수도 있겠지만, 노들과 직장은 내게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나는 지금의 일을 선택하면서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행복 속에 있다고 느낀다. 여기서 살아가는 것이 좋고, 오래 건강하게 지속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경찰이 소환장을 날리고 물대포를 쏘는 건 큰 걱정이 안 되는데… ^^; 이렇게 살다가 갑자기 나나 주변 사람이 큰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은 좀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치료를 받거나 어떤 약을 먹으면 안 아플 수 있는데, 그때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 죽어가는데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상황 말이다. 의료민영화라는 말이 귀에 따가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야학에서 의사단체와 학생들을 연결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진료나 지원을 원하는 학생들의 욕구는 대부분이 의료비 지원이었다. 환자손님들로 가득한 병원에서 장애인환자는 대체로 시간을 까먹는 손님으로 취급 받는다. 장애인환자의 몸이 낯선 의사들은 MRI 진단이 필요했지만, 가난한 환자들은 검진비용에 놀라 그냥돌아올 뿐이었다. 의료가 민영화되면, 의료가 더 노골적으로 돈벌이가 된다면, 우리 야학학생들 같은 장애인 환자나 나 같은 가난한 환자는 병원에 발붙이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저들 말대로, 민영화로 의료 경쟁력이갖춰지고 의료기술이 더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 몇몇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될 확률이 높다. 이는 지금도 이미 그렇지 않나. 이런 현실이, 가난하고 아픈 사람에겐 아픔만 더하는 일이 될 것이다.


   광화문농성 500일이 가까워오는 지금, 농성장엔 고인의 사진액자 다섯 개가 자리 잡았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김준혁 씨의 영정.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 의료 현실이 어떤지 잘 보여준다. 그의 죽음은 내가 두려워하고걱정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죽음으로 나는 또 한 번 아팠다. 영정이 하나씩 들어올 때마다 나는 아팠다. 이런 죽음이 이제 그만 되었으면, 정말 멈춰졌으면 한다. 살기 위해 버둥대는 우리의 투쟁 속에서 이런 죽음은 너무나 쓰다.


   투쟁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건강’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한 해 내내 나는 어서 안 아프길 바랐지만 내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일이 참 어려웠다. 몸도 마음도 침잠한 가운데 고통을 있는 대로 지켜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삶에서 건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 같다.


   나는 앞으로도 아픈 것을 발견하고 아픔을 느끼고 덜 아프기 위해 애쓰며 살아갈 것이다. 아픈 상태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나는 이런 걸 고민한다.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말부터도 모순인데 가능한 일이긴 할까? 아픈 것이 한순간 멈춘다면 어머니 말씀대로 나는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른 짓을 한다고 안 아플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 아픈 시간을 견디는 것은 무지힘들다. 그런 점에서 올 한 해 내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약도 지어주신 노들진료소 관계자들께 고맙다는인사를 전한다.


   여기서 끝내려니 ‘투쟁하는 사람들의 삶은 결국 건강할 수 없다’라는 수렁에 빠지는 것 같아, 첨언하자면.요즘 나는 요가와 수영을 열심히 하고 있다. 종종 빼먹지만 이만 하면 꽤나 열심히다. 나름 죽기 살기로 하는중이다. 술은 거의 마시지 않고, 숙면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잘 안 된다. 그래도 이 수행(?) 덕분에 많이 살아났다. 몸이 안 받쳐주면 활동도 못 한다는 어렵지도 않은 생각이 뒤늦게 뼈저리게 왔다. 나 혼자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 모두가 다양한 몸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투쟁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건강’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이것이 요즘 내 고민이다. 더욱이 그야말로 다양한 신체가 공존하는 장애인운동판에서 ‘건강’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여기계신 분들과 함께 삶속에서 고민해나가고 싶다.


※2013년 12월 26일 열린 <‘의료 민영화’ 도대체 너는 무엇이니?’> 토론회에서 노들진료소 비장애인 이용자 대표로 유미님이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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