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겨울 136호 - 또 다른 감각, 노들야학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이야기들 / 이민제

by 루17 posted Feb 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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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감각

노들야학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이야기들

 

 

 

 이민제

들숨 날숨 잘 호흡하며 살고픈 우주 시민. 현재, 실상사 작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민제1.jpg

 

  지리산 자락에 있는 실상사 작은학교는 부딪치는 곳이에요. 사람과 비인간 동물, 자연 그리고 세상과 연결되는 것을 중심에 두며 삶을 꾸려갑니다. 농사짓고 글을 쓰고 산책하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과 ‘곁’에 대해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우리 학교엔 ‘인턴십’ 프로젝트가 있어요. 5학년은 졸업 후의 삶을 궁리하며 학교 밖의 삶을 살아보는 시간입니다. 자기가 관심 있고, 궁금한 곳을 찾아서 발걸음을 옮겨 보지요.

 

  저는 ‘노들장애인야학’ 인턴이었어요, 주로 학생분들과 같이 ‘일자리’를 하고, 수업을 들었고, 가끔 강의와 선전전, 기자회견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두 달이라는 시간은 다채롭다 못해 꽉 차 있었습니다. 그 기억을 뒤적이다 발견한 몇 가지 이야기를 꺼내보려 해요.

 

* * *

 

  스며들기

 

  웅성웅성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고, 휠체어가 움직이는 소리,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두 자기 일을 바쁘게 하고 있고요. 그 시끌시끌한 분위기 속, 어디로 가야 할지, 무얼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어색하고, 낯설고, 쑥스럽고, 뻘쭘하고, 원래 처음은 이런가 봐요. 작은학교에서 5년 차, 화석인 저는 오랜만에 처음과 시작을 느낍니다. 처음과 시작, 생각보다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너무 애쓰기보다 찬찬히 기다리는 거죠.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몸이 점점 더 굳어갑니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와 낯선 몸의 움직임. 어째 외국인보다 외국어보다 더 낯설어요. 오늘도 잘 들으려 최선을 다합니다. 그 어려운 듣기를 해냈을 때, 왜 그렇게 기쁜지 몰라요. 다 다른 손짓, 자세, 표정, 걸음걸이. 처음엔 움직임을 자꾸 의식했지만, 어느 순간 의식은 사라지고 다 다른 움직임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습니다. 이젠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잘 보여요.

 

  저는 야학에서 ‘선생님’, 혹은 ‘민제 님’으로 불렸는데요, ‘선생님’이라는 그 호칭이 얼마나 어색했는지 몰라요. 그곳에서 저는 ‘잘 몰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이지, ‘선생님’이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절 선생님이라 부르시는 분들이 저의 선생님이셨죠. 만순 님은 저를 언니라고 불러요, 사실 우린 꽤 많은 나이 차이가 난답니다. 친밀함이 느껴지는 그 말이 너무 좋아요. 우리는 서로 선생님이었고, 언니였으며 그냥 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야학엔 많은 사람이 들랑날랑합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냈지만 매일 처음 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예요. 어디서 온 누구인지, 야학 인턴이고 어떻게 오게 됐는지, 이미 여러 번 소개했지만, 또 소개해요. 한 달 반이 지나고, 제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저보다 먼저 제 소개를 해주시죠.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 원래 이렇게 벅차오르는 건가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저는 ‘아직 적응하고 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어요. 그렇게 알게 됐어요. 우당탕탕 노들장애인야학은 매주, 매일 그리고 매시간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며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비밀을 알게 된 다음 저는, 조금 더 빠르고 즐겁게 스며듭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마지막 날이 보름 정도 남았을 무렵, 이젠 방황 안 하냐고 도담 언니가 물었어요. “아니, 방황해. 근데 방황해도 괜찮아.” 그렇게 방황이 이렇게 재밌는 건가 싶을 때 즈음,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외우고 부를 때 즈음, 사소한 이야기와 장난을 나눌 때 즈음, 저의 인턴 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완전한 노들장애인야학을 알기에 두 달은 너무 짧았지만, 진했던 그 시간,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이 긴긴 여운을 만들어 내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멈칫

 

  # 1.

  우리가 퇴근길에 버스를 타는 이유는 다양해요. 이동권뿐만 아니라 서울시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와 탈시설을 위한 운동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있다는 점. 예산과 활동지원 시간을 줄이고 있다는 점 때문에 퇴근길 버스 타기 행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난 받더라도 가만히 숨지 않고 움직이고 표현하기로 한 거죠. 그리고 저는, 그 흔치 않은 경험을 선택하게 됩니다.

 

  “민제 님, 너무 힘들면, 피켓하고 조끼 벗고 일반 시민처럼 있어도 돼요.” 대추가 이야기하셨어요. 버스 타기 행동을 하는 동안 생긴, 팽팽함과 긴장감으로 벙쪄있던 저는, 그 말이 반가웠지만, 그 말을 반가워하는 제가 싫었어요. 무책임하게 느껴졌습니다. 버스 타기 행동을 하기로 했다는 건 그 힘듦을 알고도 가기로 선택했다는 것이고, 그 느낌까지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담담하게 표현하시는 활동가분들과 겁먹고 숨으려 하는 제가 비교됐어요. 가끔은 내가 오버하는 건 아닌지, 어리광을 피우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죠. 저는, ‘일반 시민’이고 싶지 않았어요. 피곤한 얼굴을 하고 신기하다거나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그들과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고, 같이 하고 있다는,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지요.

 

  뉴스와 기사에서 보았던 그곳에 제가 서 있습니다.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대립하는 그 상황이 두렵고 갑갑했습니다. 근데요,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직접 보고 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었거든요.

 

  # 2.

  초등학교 때 발달장애가 있는 선배의 서투른 젓가락질을 보고 웃은 적이 있어요. 정말이지 전혀 나쁜 의도가 없었지만, 선생님께 크게 혼이 났습니다. 억울했지만, 비웃음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가 없었어요. 그 웃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거든요. 수업하면서, 일자리를 하면서, 쉬는 시간에도 웃을 일이 많았어요. 그리고 마음 한편이 불편했습니다. 웃을 때마다 내가 왜 웃고 있는지, 웃음을 설명하려 했고, 이 웃음이 비웃음으로 보이진 않을까, 끊임없이 의심했지요.

 

  한편에 다른 마음이 들었습니다. ‘웃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평소에 우리가 웃을 때 이유를 일일이 찾진 않잖아.’ 이상했어요. 어쩌면 웃음의 이유를 찾는 행동 자체가 그들을 차별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두 생각을 왔다, 갔다,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냥 웃었어요. 혼자 피식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미소 짓고, 웃고. 같이 웃고, 더 크게 웃었어요.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라는 걸, 따뜻한 웃음을 나누고 싶다는 걸.

 

* * *

 

  저는 이 시간을 통해 이상한 시선이 생겨버렸어요. 일상을 살아가다가 혼자 멈춰서 질문을 하고 생각을 해요. 그 이야기는 차차 나누도록 하고요, 앞으로 저는, 그 이상한 시선을 디디면서 살아가렵니다. 이상하지만, 이상해서 새롭고 기뻐요. 제가 볼 수 있는 세상이 확장되었다는 뜻이니까요. 이 모든 게 뜻밖이에요. 그래서, 너무 소중합니다. 또 다른 감각을 만날 수 있게 해준 노들에게 고마움을 전해요. 마지막으로 저는,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제 선택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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