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장애인권교육 이야기
장애인권 교육을 위한 인권 공부
임미경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인권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리에서 인권에 대해 생각해주십시오.” 이는 1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노들장애인야학 장애인권 강사단의 일원인 내가 학교로 찾아가는 장애인권 교육 시간 마지막에 남기는 말이다.
노들의 장애인권교육은 장애인 당사자와 협업 강사가 직접 학교로 찾아가서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장애인으로 살아온 당사자의 구체적 경험과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장애를 둘러싼 구체적 차별을 드러내는 작업이자,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장애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나 인식의 틀을 바꿔내고자 하는 교육이다. 이를 위해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아닌 보편적 인권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장애인권을 이야기한다. 장애인이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 속에서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함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초점이 있다.
인권 감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해마다 강사단을 위한 보수교육을 시행하는데, 2023년 상반기에는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로부터 3개월 동안 인권 감수성을 시작으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샅샅이 살펴보며,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을 비롯한 장애인권 전반에 걸친 인권 교육을 받았다. 또한 교안을 새롭게 작성하고, 돌아가며 시연도 하고, 서로 조언도 주고받으며 강의 준비를 하여 학교로 강의를 나갔다.
하반기에 들어서는 우리가 교육을 나가는 곳이 초·중·고등학교인데 청소년들의 인권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겠다는 의견이 모여, ‘인권교육센터 들’에 의뢰해 2회차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1회차는 청소년 인권 감수성 전반에 걸친 강의였는데, 소위 성인들이 평소 사용하는 사소한 언어만 들여다보더라도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어린 사람을 미성숙하고 무능력한 ‘아랫사람’으로 취급하는 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경험의 기회를 뺏고 불평등과 수직적 위계를 강요하며 통제하려고 들었다는 사실이 그동안 장애인이 받아온 차별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고 다들 또 하나의 감각을 여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는데 “인권교육가가 경계해야 할 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무감각함이다”라는 것이다. 하나의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열등하거나 우월하다고 간주하는 생각과 실천은 인종주의와 같다. 나이에 따른 위계와 불평등을 자연시하는 나이주의에 빠져 청소년을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간주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폭력이 된다.
존중받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같다. 위치를 뒤집는 힘의 역전이 아니라, 놓치고 있는 일상의 권리를 살피는 감각이 필요하다. 항상 기존의 위치와 관계를 낯설게 보는 것이 인권의 시각이다. 미성숙하다는 관점은 보호가 통제로 바뀌어 버리는 논리를 정당화한다. 보호는 필요할 수 있지만 보호주의는 위험하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청소년에게는 오늘이 없나? 노인은 과거를 산 사람으로만 상정되어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삶은 현재를 삭제당한 채 미래로만 유예되는 것은 옳지 않다. ‘가만히 있으라’는 보호주의는 그들의 정당한 자리, 오늘의 자리를 빼앗는다. 정당한 권리와 사회적 자리가 없을 때 보호도 받지 못한다. 그럼 어린이, 청소년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둠 활동을 했는데, ‘내가 만나 본 이런 선생님, 참 싫다’라는 제목으로 빙고 게임을 하면서 재미도 느끼고 스스로의 위상도 점검해보았다.
2회차는 참여형 교육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수업을 여는 활동으로 강사와 활동지원사의 관계를 나무 그림으로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정말 각기 다른 모습의 나무를 담은 다양한 그림들이 나왔고, 그림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엿볼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연결과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우리가 서로 어떤 관계로 연결되는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요즘의 한국 제도권 교육은 은행 저축식 교육이라는 이야기로 넘어가서, 진정한 배움이 싹트기 위해서는 참여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께서는 입장이 없는 인권교육은 피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셨다.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다는 식으로 강의를 하고 올 수는 없다고 하셨다. 또 비판적 분석이 없는 것도 피해야 한다고 하셨다. 일례로 화재로 인한 장애인 사망 사건의 경우 그냥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참사’인지 사회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하셨다.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동기를 형성해야 하며, ‘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야 학생들의 마음과 귀를 연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어떤 현상을 대할 때도 나의 경험과 연결시켜 이해의 폭을 넓히도록 하고, 표면에 드러난 행동만 보고 대응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점도 언급하셨다.
서로 다른 입장들의 교류와 질문을 통해 생각하기가 시작되고 그 힘을 키울 수 있다. 프랑스 전력청 영상을 함께 보면서 장애란 무엇인지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을 생각해 보았다.
“누가 더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보이나요?”
“그럼 장애는 무엇일까요?”
“세상이 누구에게 알맞게 설계되어 있나요?”
“장애가 문제인가? 장애를 가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회 설계가 문제인가?”
“구부러진 빨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저상버스는 누구에게 편한가?”
소수자를 위한 디자인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되는 까닭을, 적절한 질문을 던져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학생들이 변화의 주체가 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참여자가 변화의 주인공이 되어 자기 언어를 가지고 문제 해결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예시로 가져오신 두 편의 동화를 소개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강사(촉진자)가 기획하는 무대지만 그 극본을 넘어서야 새로운 ‘배움’이 열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진행자와 참여자, 참여자와 참여자 사이의 상호 배움이 일어난다는 점도. 참여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방법으로는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없고, 교육이 진행되는 방식 자체도 인권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교육을 떠올리면서 무엇을 목표로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핵심 메시지를 뽑아보고, 교육에서 참여자를 초대하기 위해서는 어떤 질문을 던지고 나누면 좋을지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가슴에 새겨 넣었다.
교육을 모두 마친 후 평가 시간에는 이번 교육의 구체적인 모둠 활동을 참고하겠다는 이들도 있었고, 핵심 메시지를 다시 정비해 봐야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노들야학의 장애인권 강사 대부분은 권익옹호 업무도 겸하고 있지만, 여러 업무 중에서도 학교에서의 장애인권 강의를 무척 좋아하고 소중히 여긴다. 그런 강의 활동을 좀 더 내실 있게 가져갈 수 있도록, 모두가 각자의 강의안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좋은 교육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