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이 없는 밴드 '어깨꿈 밴드'
해방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어깨꿈 밴드에서는 코러스를 맡고 있습니다.
어차피 깨진 꿈 투쟁하며 살자
어차피 깨진 꿈 재미있게 살자
깨진 조각마다 투쟁이 있다. 깨진 조각마다 재미가 있다.
어깨꿈은 노래 부른다. 우리 함께 노래 부르자
장판에서는 필요하다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물며 그것이 밴드라 할지라도요. 어깨꿈(‘어차피 깨진 꿈’의 준말)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인 박경석 님의 별칭입니다. 오랫동안 어깨꿈으로 집회 현장에서 노래를 불러 온 베테랑 싱어이지요. 투쟁의 간절함과 중저음의 매력적인 보컬로 많은 이들을 감명시키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희한하게 ‘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어깨꿈이었죠. 어깨꿈은 처음엔 솔로 공연을 했지만,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제는 밴드로 활동합니다. 밴드의 구성원들은 평소에는 각자의 활동을 하다가도, 공연 일정이 정해지면 서울에서 김포에서 인도에서 각자의 악기를 공수해 와서 공연을 성사시키는 찐 밴드랍니다.
밴드를 소개하자면 보컬에 어깨꿈, 서브 보컬에 이수미, 코러스에 해방과 감귤, 키보드 및 운영 매니저 조스타, 리드 기타에 정창조, 타악기에 탁영희, 베이스에 물결, 매니저 박미주, 음향 매니저 및 서브 기타에 포비입니다. 활동하는 이들의 소속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노들장애인야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종필추모사업회 등 6개 단체가 모여서, 요동치는 장판에서 밴드라는 구심점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활동하는 해방이고요, 코러스를 맡고 있습니다. 어깨꿈 밴드와의 인연은 상반기에 김포센터에서 조스타와 정창조 님이 합주를 하고 있는데, 잠깐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더라고요. 420투쟁 때 공연을 하는데, 보컬인 어깨꿈이 너무 바쁘신 관계로 키보드와 기타만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장판의 명곡 「열차타는 사람들」, 「T4」, 「투쟁한 후에」 등을 근사한 합주에 맞춰 불러보게 되었는데, 이왕 연습도 했으니 420투쟁 때 함께 코러스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보컬도 아닌 코러스니 보컬에 묻어가겠다는 생각에 알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깨꿈 밴드를 ‘빵빵한 문화제’에서 처음 보게 되었어요. 어깨꿈이 열창을 하고, 키보드를 치는 조스타, 기타 연주를 하는 정창조. 문화제에 참석해 세 사람의 공연을 보면서, 다른 분들은 어떠셨을지 모르겠지만, 아마추어 밴드라서 더 좋은 거예요. 전문가들의 공연보다, 실수가 빚어주는 불협화음의 앙상블이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밴드를 추앙하는 것이 아니라, 동질감(?)에서 전해지는 편안함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점이 어깨꿈 밴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싶어요.
많은 이들에게 음악의 가능성을 품게 해주고, 가능성뿐만이 아니라 실현시킬 수 있음을 현장에서 보여주는 것. 저는 이 지점이 어깨꿈 밴드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어깨꿈 밴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열정만 있다면 이렇게 밴드도 할 수 있구나, 지금 활동하고 있는 현장에서도 밴드를 결성할 수 있구나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또 어깨꿈 밴드는 어떤 역할과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 마음의 문턱이 없어서 그냥 수락하게 만드는 마술 같은 매력의 밴드이지요.
어깨꿈 밴드가 가진 또 다른 힘은 맘껏, 실컷 발산하는 판을 깔아 주는 것입니다. 뭐 어때? 어차피 깨진 꿈!! 이왕 이렇게 된 것 평안하게, 눈치 보고 재고 할 것 없이, 지금 이곳에 온전히 충실해지고 고갱이만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끝에 다다라야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게 되는 이치일까요. 아니면 큰 체념이야말로 가장 큰 수용의 그릇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의 경험으로 보자면 ‘어차피 깨진 꿈’이 주는 자유로움, 그 해방감을 만끽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옭아맨, 혹은 내가 옭아맨 올가미에서 벗어난 해방감, 어깨꿈 밴드가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부차적인 것들, 타인들의 시선과 평판, 이런 것들이 걷어지니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그 안에 자리하게 됩니다. 이 역전의 순간! 그래서 어깨꿈 밴드 식구들은 부캐가 될 때 너무나도 주도적으로 변신한답니다. 얼떨결에 어깨꿈 밴드 멤버가 되었지만, 이 밴드가 주는 소속감의 갑옷을 입고는 일상의 풍파에 ‘별것 아니구나’라는 여유가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어깨꿈 밴드의 공연이 생긴 날은 바쁜 일정을 쳐내면서까지 마다않고 달려가게 됩니다.
일상의 분주함에서 허덕이다가도 장판의 마당발 조스타와 장판의 찐 일꾼 미주의 활동력으로 어깨꿈 밴드의 공연을 낚아오는 날이면 텔방에서 기대 섞인 반응들이 즐비하게 올라옵니다. 고사리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다이어리에 꼭 어깨꿈 밴드 일정을 넣고자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립니다. 다양한 무대 경험을 선사해 주는 어깨꿈 밴드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정이 있을까 싶어요. 집회, 문화제, 노래자랑, 12월엔 결혼식 축가까지. 와우, 정말 이런 성장세라면 어깨꿈 밴드가 해외 공연까지 하는 건 아닐지.ㅎㅎ
어깨꿈 밴드를 많은 곳에서 불러주는 비결이라면, 첫째는 보컬 어깨꿈이 가진 아우라일거고요. 둘째는 장판의 활동과 이야기, 장애인 운동의 간절함과 당위성을 알리는 것이기에 반은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 긴장감과 엄중함이 있지만 또 그것을 쫙 빼주는 유머러스함이 버무려져서 삶에 대한 낭만을 말하고, ‘내 인생은 나의 것’의 소중함을 노래하기에 관중들이 가슴속으로 공명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음만 있다면,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함께 노래 불러 봅시다. 함께 투쟁해 봅시다. 함께 만들어 갑시다. 저는 어깨꿈 밴드가 장판에서 활동하는 모든 이들이 한 번씩 거쳐 가야 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깨꿈 밴드는 올해도 서울, 경기, 옥천, 대구로 종횡무진 공연을 했고, 이 밴드에 진심인 무서운 사람들로 인해서 더욱 왕성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어깨꿈 없는 어깨꿈 밴드’. 누구나 ‘어깨꿈’이 될 수 있기에, 어깨꿈 없는 어깨꿈 밴드의 공연도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깨진 꿈’의 준말 어깨꿈, 그 별칭이 주는 함의가 많을 텐데요. 생노병사 누구도 선택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인생인데, 그 인생에서 투쟁하고 즐기며 함께 사는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깨꿈 밴드의 현재 구성원들도 그랬지만, 함께 하기 위한 작은 용기와 곁을 내어 줄 마음만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느 날 어깨꿈 밴드의 일원이 되어 함께하게 될지도요. 일상의 변화를 갈망하고, 변화를 받아들일 내적 힘과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어깨꿈 밴드의 단원이 되실 수 있으니까요.
어깨꿈 밴드가 지닌 무궁한 가능성이 앞으로 어떻게 발현될까, 이 글을 쓰면서도 미소가 지어지고 너무 설렙니다. 장애인 운동의 현장으로 들어오신 분들이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연애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은데요. 혹 지금 권태기를 겪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강력한 처방을 내려드릴게요. 문턱 없이 열려있는 어깨꿈 밴드에 들어오셔서 함께 노래하고, 함께 투쟁해요.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노래하며 즐기며 어깨꿈 밴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