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비마이너
미친식당 노동후기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다. 인간학을 둘러싼 전투의 최전선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으며, 읽기의집 집사이기도 하다. 앞으로 국가의 한계, 자본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정신장애인의 노동을 함께 고민하면서 미친식당을 준비했어요.” 정신장애인 예술창작 집단 ‘미친존재감 프로젝트’의 손성연 기획자가 보낸 초대 문자였다. 곧바로 ‘가겠다’고 했다. 왜 노동이냐고 묻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고민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일차적 규정은 ‘노동할 수 없는 자’이다.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2021)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고용되는 게 고시에 합격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누군가의 눈에는 10%도 많아 보일지 모르겠다. ‘미친 사람이 일을 해요?’라는 말이 ‘지금 제 정신이에요?’라는 뜻을 지닌 사회이니 말이다. 아마 고용된 10%의 사람들도 미친 채로 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친 채로는 노동은커녕 사회생활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는 소위 증상을 억압한 사람들, 미친 티가 나지 않는 사람들만 살아갈 수 있다. 그게 안 된다면 집에서 지내야 하고, 그것도 어렵다면 시설에 강제 구금된다. 신체장애인들은 ‘경사로’ 같은 것이라도 요구할 수 있지만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는 적합한 사회 환경을 요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친 사람에게는 말의 권리가 없다.
그래서 이번 창작 프로젝트는 매우 도전적이다. 기획자들은 먼저 ‘미친회사’를 설립하고 첫 번째 사업으로 ‘미친식당’을 열었다. 여기서 이들은 미친 사람으로서 고용되고 미친 사람으로서 노동한다. 행동의 특색이나 마음의 곤경을 감출 필요가 없다. 식당에서 ‘함께 일할 비장애인’(동업자)들도 모집했다. 미친 존재들이 미친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로 미치지 않은 존재들과 일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자본주의적 협업과는 다르다. 기획자 손성연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은 “일하기 위해서 함께 있는 게 아니고 함께 있기 위해서 일을 한다.” 일을 위해서 사람들을 어떻게 바꿀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지내기 위해서 일을 어떻게 바꿀지를 묻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친 존재들과 미치지 않은 존재들이 ‘함께’ 하기 위해 노동을, 더 나아가 우리의 관계와 삶을 어떻게 바꾸어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식당에 4시간 동안 고용되었다. 먼저 함께 일할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나는 긴장을 하거나 정신적으로 힘들면 바로 쓰러져요. 그러면 놀라지 말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여주세요. 그리고 이름을 불러주면 곧바로 깨어나요.” 왈왈은 마음의 곤경이 곧바로 신체적으로 전환되는 사람이다. 그냥 그렇다고 했다. 무슨 비정상인을 목격한 듯 화들짝 놀라지 말고, 그를 그저 그로서 보라고 했다.
소개를 마친 후 작업복을 입고 식당을 둘러보았다. ‘요리 아니면 설거지겠지’, ‘요리에 자신 없는데 설거지로 빠질까’, ‘4시간 동안 설거지 하면 너무 힘들 텐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차에 벽에 적힌 메모를 보았다. ‘대화만 나눠도 노동이야. 듣기만 해도 노동이야. 같이 있기만 해도 어떤 노동은 노동이야.’ 거울에는 이런 메모도 붙어 있었다. ‘딴짓 환영, 딴생각 환영, 잡담 환영, 탈주 환영.’
내가 맡은 일은 요리도 설거지도 아니었다. ‘대화만 나눠도 노동이야.’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담이었다. 나는 미친 사람들과 수다 떠는 일을 맡았다. 작업대에는 호연이 만든 알록달록 질문지들이 놓여 있었다. 그것을 하나씩 뒤집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중간에 강제 휴식 시간이 없었다면 과로할 뻔했다.
식당 곳곳이 시끌벅적했다. 칵테일 음료인 모히토를 만든다며 사이다와 소주를 계속 붓는 성연에게 그래도 되는 거냐고 물었다. “여긴 미친식당이잖아요.” 피자를 굽는 주방에서는 또 무슨 재미난 일이 있는지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렸다. 또 한쪽에서는 힘들다며 소파에 누워 쉬는 사람이 있었고, 전에 있었던 속상했던 일을 떠올리는 사람, 그를 곁에서 위로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정신장애인들이 그토록 원했던 노동이지만 삶이기도 했다.
이 식당은 피자를 구워냈지만 나 같은 비장애인도 새로 구워냈다.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4시간을 ‘일한=논’ 것은 처음이었다. 마무리 소감을 말하는 시간. 나는 미친 사람에게 맞춰진 공간인데 미치지 않은 사람에게도 잘 맞는 것 같다고, 여기서 편안한 것을 보니 나도 조금은 미쳤나보다고 했다. 그때 농담 재주꾼 지우가 한마디 던졌다. “그럼 이참에 국가 공인 미친 사람까지 한 번 되어 보시죠.” 모두가 까르르 웃는데, 철컹, 내 마음에서 셔터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 셔터를 들어올려야 창작 프로젝트가 아닌 진짜 미친식당이 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