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겨울 136호 - [노들 책꽂이] 자기를 동물로 여기는 이들과 친구하기 / 박정수

by 루17 posted Jan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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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 책꽂이

자기를 동물로 여기는 이들과 친구하기

 

 

 

 박정수

노들야학 철학반 수업은 잠시 쉬면서, 영화반 메니저로서 학생들과 영상 작업을 하고 있다. 노들야학 학생들과 함께 강독한 그리스 비극의 내용을 기반으로 쓴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라는 책이 곧 출간 예정. 장판의 익숙한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니, 많관부! 

 

 

 

 

박정수1.jpg

 

  홍은전 작가의 신작 『나는 동물』(봄날의책) 서평을 청탁받았을 때 처음에는 못 쓰겠다고 했다. 홍은전의 글에는 갈고리가 있어서, 이번에는 그 날카롭고 아름다운 갈고리로 내 목덜미를 잡아채 이상한 동물의 세계로 데려가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끌려갈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에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홍은전 글 좋아하시잖아요”라는 거부할 수 없는 말에 “네, 쓸게요”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홍은전 작가의 글을 무지하게 애정한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날 때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단언컨대, 홍은전만큼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고 떠벌릴 정도다. 그렇지만, 아니 그렇기에, 그의 날카롭고 아름다운 글 고리에 낚이는 게 두려웠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인간이 동물을 감금하고 강간하고 새끼를 빼앗고 살해하는 것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며 그것을 종차별이라 부르는” 인간 동물들의 감각과 생각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들에게 최후의 먹거리를 건네며 목 놓아 통곡하는 그들의 울음에 공명하지 못한다. 나는 아직 밸런타인데이에 “우유와 초콜릿이 여성인 소의 몸에 강간과 임신, 출산을 반복하게 하여 그 새끼를 빼앗고 젖을 착취한 것이라며” 광화문 대로에서 상의를 벗고 시위하는 디엑스이 코리아(DxE Korea) 여성 회원들을 차마 볼 수 없으며, 이마트와 롯데리아, 배스킨라빈스의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거기서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을 향해 “죽이지 마십시오. 빼앗지 마십시오. 이것은 폭력입니다” 하고 외치는 직접행동에 십분 공감하지 못한다.

 

  나만 그럴까? 대다수 사람들에게 동물권 활동가들의 감각은 아직 낯설다. ‘비정상적’이라 여기는 사람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이 당하는 폭력과 고통을 함께 느끼는 그들은 육식 중심의 식생활에서 심각하게 소외되고, 동물 학대가 공기처럼 만연한 지역사회와 미디어 사회에서 심대한 공포와 불편을 겪는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새로운 유형의 감각(인식, 정체성) 장애인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신한 후 직장에서 해고되고 가족들한테 버림받은 남자의 이야기 『변신』으로 유명한 프란츠 카프카도 그런 장애인 중 하나였다. 그는 성인이 되면서 결혼과 직장 생활이 당연한 인간 세상이 낯설고 두려워지면서 스스로를 뱀파이어로 여기기 시작했다. 남들은 당연하고 친숙하게 여기는 인간 사회를 동물의 감각으로 낯설게 스케치한 것이 그의 글쓰기이다. 스스로를 동물이라 여기게 되면서 그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들뢰즈라는 철학자는 카프카의 이런 변신을 ‘소수자 되기’(비마이너)라고 불렀다.

 

  내 주변에도 자기를 동물로 여기는 소수자들이 늘어났다. 그들의 감각에 백퍼센트 공감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친구로 지내고 싶었다. 친구가 되고 싶었기에 나는 친구를 흉내 내어 ‘돼지’ 고기를 먹지 않고, 요리하지 않기 시작했다. 2년 후 먹지 않고 요리하지 않는 동물에 ‘닭’을 추가했다. 그 외의 동물은 먹고 요리한다. 그 채식 ‘시늉’에 대해 이유를 물으면, 나는 그저 비건 친구들 흉내 내기, 내 삶에 낮은 허들 두 개를 놓고 속도를 줄이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언제부턴가 노들야학 교사 중에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중에도, 4층 들다방 직원 중에도 스스로 동물이라 여기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들다방 음료와 반찬에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음료와 반찬이 추가되었다. 코로나19로 ‘평등한 밥상’을 위한 후원행사를 주차장에서 못 열게 됐다. 그 대신 굿즈와 간단한 비건 도시락을 티켓과 교환하는 형태로 치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평등한 밥상’ 행사는 비건 지향으로 바뀌었다. 육식 안주가 즐비한 일일주점이 아니라, 마로니에 공원에서 비건 메뉴 중심의 먹거리와 다양한 부스와 볼거리를 즐기는 문화 행사로 변모한 것이다.

 

  대항로에는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이 있다. 서로의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알아도 불편한 경우도 많다. 스스로를 동물로 여기는 새로운 유형의 장애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들다방 주방에서 더 이상 육개장과 삼계탕을 먹을 수 없다는 걸 납득하지 못하고, ‘평등한 밥상’ 행사에 육식 안주가 많이 없다며 불평하는 장애인들도 많다. 올해 ‘평등한 밥상’ 메뉴에 ‘닭강정’이 들어온 건 장애인들 간에도 아직 비건 문화에 대한 공통 감각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후원행사 후 열린 교사회의에서는 비건 지향 행사에 닭강정이 웬말이냐, 비건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음식인 닭강정이 불티나게 팔리는 모습에 위화감이 들었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그렇게 된 경위가 뭔지, 내년에는 어떻게 할 건지 따져 묻는 의견과, 아직 노들야학 안에서도 비건주의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육식 안주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홍은전의 『나는 동물』은 ‘장애인은 소, 돼지가 아니다. 장애등급제 폐지하라’고 외친 오래된 장애인들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돼지를 어루만지며 통곡하는 새로운 장애인들 사이의 어떤 거리와 긴장감을 묶어낸 글 모음집이다. 시설에 갇혀 사육되다시피 살아온 장애인에 관한 글 다음에 지옥 같은 공장형 사육장에서 살다가 도축 공장으로 끌려가는 동물들에 관한 글이 나오고, 시설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탈시설 지원 제도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에 이어서 도살장을 탈출한 소와 도축장으로 끌려갈 돼지를 구출한 인간 동물들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어떤 글에서는 이 두 종류의 장애인들 사이를 오가는 홍은전 자신의 고민과 고양이 이야기를 듣게 되고, 동물들의 장애화와 장애인들의 동물화를 연결 짓고, 장애 해방과 동물 해방이 서로 얽혀 있음을 이야기한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 서평도 읽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학대받는 동물들의 모습에서 인간 장애인의 모습이 보이고, 자유를 향해 몸부림치는 장애인들에게서 아름다운 동물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동물해방과 비거니즘의 세계로 끌려가는 게 두려워 뒷걸음질 친다. 나는 아직 도축장에 끌려가는 동물들을 마주할 용기도 못 내고, 대형마트 정육코너의 동물 사체에 흰 국화꽃을 바치는 이들 옆에 서지도 못한다. 나는 더 많은 부분 아직 ‘인간’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건 내가 출근길 지하철 타기와 퇴근길 버스 타기에 선뜻 동참하지 못하는 이유와 겹쳐진다. 나는 아직 ‘비장애인’이다. 집회에 참여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대형 마트 정육코너 앞에서 ‘이것은 음식이 아니라 폭력이다’라고 외치거나, 출근길 지하철과 퇴근길 버스 안에서 ‘이것은 대중교통이 아니라, 차별이다’라고 소리치며 대중들의 욕설과 비웃음을 받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것은 세상 전체와 맞서는 무모함과 종교적 순교에 육박하는 용기가 필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직 많은 부분 ‘인간’이고 ‘비장애인’이라서 장애인 친구들 속에서 세상과 맞장뜨지 못하고, 다만 그 친구들이 세상에 지지 않고 더 많은 힘과 동료를 갖기를 응원할 뿐이다. 이 책은 이런 나의 비겁을 일깨우고, 그럼에도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도망치지 않고, 싸우는 장애인 친구들을 더 좋아하게 만들어 그들 곁을 지키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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