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겨울 136호 - [동네 한 바퀴] 같이, 또 같이 / 민푸름

by 루17 posted Jan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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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

같이, 또 같이

 

 

 

 민푸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부쩍 추워진 날씨, 콧물을 훌쩍이는 학생들, 콜록콜록 기침하는 활동가들을 노들에서 많이 만나게 됩니다. 얼마 전 저도 웬만하면 가지 않는 병원을 찾아가 약을 타왔는데요. ‘아~해보세요’, ‘코 안쪽 좀 볼게요’, ‘목이 많이 부었네요’라며 능숙하게 내 몸을 살피는 의사와 간단하게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비염약을 한 보따리 싸왔네요.

 

  비장애인인 저와 장애인 당사자분들이 의사와 만나는 경험, 병원에 대한 경험은 매우 다르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어요. 병원을 찾아 방문했지만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도 있고, 휠체어에 앉은 상태에서는 의료기기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기도 하고, 장애가 있어 위험부담이 크다며 거절당하기도 하고, 의사가 찾아오기 전에 왜 진작 장애가 있음을 알리지 않았냐며 불쑥 화를 내기도 하고요. 의사, 병원, 진료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제가 느끼는 감정과 여러분이 느끼는 감정의 크기나 깊이, 종류는 너무나도 다를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 노들 바로 옆, 이 다름의 크기와 깊이, 종류를 줄여나가고자 활동하는 단체가 있다고 해요. 바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아래 ‘인의협’)인데요. 인의협의 사무국장 배승준 님, 활동가 이가연 님, 대구경북지회 사무국장 김선주 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왔습니다.

 

인의협1.jpg

 

 

  # 『노들바람』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드려요.

 

  ‘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아파야한다’는 가치로, 사회에서 차별받고 의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 예컨대 홈리스, 차가운 아스팔트와 철탑 위의 노동자들, 전쟁으로 고통받는 세계 곳곳의 이주민들, 난민들, 단단한 차별의 벽 앞에 배제되는 성소수자들, 장애인들과 우리 의사가 함께 가야한다, 의료를 누릴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믿는 의사들의 단체죠.

 

  인의협이 처음 만들어진 건 1987년 6월 항쟁 직후인 11월이에요.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일부 이뤄졌지만,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가 완전히 실현된 건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의대생, 의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학생운동에 쏟았던 에너지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단체에요. 그래서 인권과 온생명의 존엄을 해하고 목숨에 가격을 매기는 비인도적 정책이 고개를 들 때면 어김없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며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부정의한 세상으로 인해 아픈 이가 있다면, 부당한 차별로 인해 병든 이가 있다면, 그 곁을 지키며 모두가 건강한 사회로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 어떤 활동들을 해오셨는지요?

 

  농성이 길어지면 활동가분들이 가장 마지막에 선택하시는 게 단식농성이에요. 그런데 단식은 특히 그 기간이 길어지면 나중에 회복을 해도 몸에 무리가 많이 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일정 저지선 아래에서 단식할 수 있게 건강 체크를 하는 등의 농성 의료지원을 하기도 해요.

 

  대구경북지회 같은 경우에는 밀양송전탑 투쟁 의료지원이 기억나요. 고령의 여성활동가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 평소 다니시던 병원을 못가는 일들이 계속 발생을 하는 거죠.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진료도 받고, 치료도 받고 하셔야 하는데요. 그래서 한때 매주 주말마다 의료지원을 하러 가곤 했어요.

 

  그리고 현장에 계셔서 알겠지만, 경찰들이 정말 현장의 활동가들만 있을 때와 연대인들과 같이 있을 때 대하는 강도가 다르잖아요. 현장의 활동가들만 있을 때 훨씬 과격해지죠. 그래서 그 대치 현장을 함께 지키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의료조치를 하는 지원도 하는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주기적으로 쪽방 주민, 이주민 진료를 오랫동안 하는 지역도 있고요. 그때그 때 사안에 따라 지원을 할 때도 있어요. 2021년도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입국이 있었을 때, 인의협에 요청이 와서 1박 2일 당직 의료지원을 가기도 했죠.

 

 

  # 그런데 잠깐만요, ‘인도주의 실천’은 뭔가요?

 

  너무 어려워요. 사전에 질문지를 미리 보내주셨는데,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질문이었어요. 사전도 찾아보고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해봤는데요. 제가 생각했을 때, 의료에서 사람이 소외받지 않고 생명 존중과 함께 건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실천, 이것이 인도주의 실천이지 않을까 싶어요.

 

 

  # 최근 인의협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마주하고 있는 사안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공공의료 강화,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이죠. 코로나 이후 공공의료 원상 복귀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너무 많아요. 이런 거죠.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공공병원들을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돌리면서 모든 책임을 맡긴 거예요. 그래서 당시에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전환된 공공병원들은 일반 진료를 보지 않는/못하는 상황이었죠. 그렇다고 국립대학병원들이 나서서 이 공공병원의 책임을 나눴냐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정말 공공병원들이 이 책임을 다 떠안았어요. 그런데 이제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소강이 되었으니 원상 복귀를 해야 하잖아요. 얼마 전에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원상 복귀하는데 4년 6개월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어요. 그러면 그 기간 동안 지원이 필요한데, 정부는 그 지원 다 못하겠다, 오히려 코로나 때 너무 많은 지원한 것 같으니 공공병원 대상으로 회수해가겠다고까지 해요. 말도 안 되는 거죠.

 

  이런 상황들이 공공의료 공백을 더 가중시키는 거에요. 지금 전국적으로 국립대학병원이나 공공병원에 의사가 없다고들 해요. 다들 개원을 하거나, 소위 빅 5라고 하는 서울의 사립/대형/대학병원으로 가는 거죠. 지역은 정말 공공병원에 의사가 충원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아요. 공공의료를 받쳐주는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데, 더 많은 공공병원, 더 많은 공공병원의 의사, 이런 기반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현 정권은 그런 근본적인 해결법을 전혀 고민을 안 하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 공공의료 강화랑 관련된 투쟁을 지금 가장 열심히 하고 있죠.

 

 

  # 아참, 어떻게 종로구에 자리를 잡게 되셨나요?

 

  인의협 사무실이 처음에는 서대문에 있었다고 해요. 그러다 혜화동으로 오게 되었는데요. 당시 인의협이 의료지원을 하던 서울역 노숙인 진료소도 접근성이 좋고, 서울대병원도 가깝고 해서 혜화동으로 이사를 온 것 같습니다.

 

 

  # 인의협에서 일하면서 노들을 떠올린 적이 있나요?

 

  노들하면 밥이 생각나요. 노들에는 들다방으로 점심 먹으러 종종 가요. 지금은 도시락을 싸고 다니면서 덜하긴 하지만요. 메뉴가 매번 바뀌고, 채식하는 선생님도 가셨을 때 메뉴도 챙겨주셔서 좋더라고요. 무엇보다 장애인운동은 항상 어느 투쟁의 현장에서든 든든하게 함께 활동하잖아요. 현장 활동하면 자주 뵈니 생각나죠. 아무튼 노들 밥 맛있어요.^^

 

  어느 단체든 그렇지만 노들도 아프신 분들이 많으니까, 의료하고 뗄 수가 없으니까 많이 생각나요. 노들에서 장애인인권영화제 할 때나 마로니에에서 ‘평등한 밥상’ 할 때나 선생님들끼리 될 수 있으면 가서 인사드리자고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의협2.jpg

 

 

  # 인의협도 한 지붕 여러 가족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함께 사무실을 사용하게 되셨나요? 함께 입주해 있는 단체들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나요?

 

  한지붕 다섯 가족이에요.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참의료실천청년한의사회,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가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어요. 보건의료 운동을 하는 곳들이 모여 있습니다. 정책토론회나 여러 관련 회의 등의 활동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의 정식 질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꼭 하고 싶었던 질문을 참지 못하고 해버렸다. ‘인의협 활동은 의사만 할 수 있나요?’ 돌아온 대답은 ‘그렇긴 하지만, 아니다’였다. 인의협 소속의 회원들은 전부 의사이긴 하지만, 오늘 만난 실무 활동가들은 의사가 아니었던 것!

날쌔고 차가운 바람과 달리 따듯하고 포근한 햇살이 내려앉은 사무실 강당에서 함께 투쟁을 외치며 사진을 찍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각자, 또 같이’라는 문구를 써놓고 한참을 쳐다보게 된다. 인의협에서 정답게 챙겨주신 에코백에 ‘이윤보다 생명이다’라는 익숙한 구호가 적혀있다. 사진을 찍은 현수막은 사회적기업 노란들판에서 만드셨다고 하고, 인의협이 자리잡은 사무실은 대항로, 그리고 노들센터 자립주택과도 이웃해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같이, 또 같이’인 것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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