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서옥영
임지영 활동가 근로지원인
난 주짓수가 좋다. 서른, 운명처럼 마주한 주짓수 도장에 홀린 듯 들어갔더랬다. 어렸을 때부터 동경했던 주짓수 도장이 바로 집 앞에 있었다니. 그렇게 얼렁뚱땅 쉽게 발을 들인 곳은 진지하며 땀내 나는 웃음 가득한 사람들로 똘똘 뭉친 도장이었음을 곧바로 알아채고 말았다. 40세를 맞이한 기술만점 왕언니와, 요가하다가 이 세계에 넘어온 유연한 동생, 그리고 움직임이 격렬해 단연코 시선이 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이 거기 있었다. 그녀가 바로 임지영(애칭 임지)이었고, 그렇게 나는 수유의 주짓수 도장에서 임지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누구든 그녀와 붙었다 하면 기술은 고사하고 힘에 밀려 버둥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자기도 자기 힘에 못 이겨 같이 버둥대는 것이 포인트^^), 해맑으면서 강인한(?) 그녀는 몸짓만 크고 헛똑똑이인 나를 전담해 맡다시피 상대하게되면서 단짝 아닌 단짝이 되었고, 나의 어색한 첫 도장 입문의 길을 시원스럽게 터주었다.
운동을 통해 몸을 격렬히 부대끼는 사이라 그런지 많은 대화 없이도 알게 모르게 우리는 친해졌다. 도장에서 신나게 뒤집고 꺾으며 지내기 몇 개월, 사담도 즐거워 밖에서도 종종 만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음악 취향도 같았다! 우리는 린킨 파크로 시작해 너바나를 건너 인큐버스, 림프 비즈킷, 마를린 맨슨 등등 본투비락을 공유했다. 그 어디에도 ‘몸이 불편한’이란 말이 끼어들 새 없이 그렇게 임지와 함께 나는 주짓수에 빠져서 1년 동안 허우적댔다.
그때 당시 나는 뉴질랜드로의 워킹홀리데이가 거의 결정된 상황이었고, 그런 사정으로 인해 돈은 필요하지만 직장은 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 사정을 알게 된 임지가 활동지원사라는 일을 넌지시 소개해 주면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9 to 6의 시간을 채우지 않아도 되는 점, 시간 조율도 가능하면서 이용자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점이 내 맘을 흔들었다.
임지에게 이 일에 대해 듣자마자 활동지원사 교육을 신청해 실습까지 마쳤고, 활동지원사 자격증을 받아 바로 매칭이 되었다. 초등학생인 이용자의 활동지원을 맡게 되었는데, 학교에서의 생활과 하교 이후의 일상을 함께하는 일이었다. 그도 나도 처음이다 보니 맞춰나가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아이는 매번 도망치기 일쑤였고 가끔은 손으로 나를 치기도 했다.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따라다니고 간섭하니 얼마나 당황스럽고 짜증이 날까. 이해가 되면서도 종종 고민이 되었다.
다행인 점은 내가 계약한 곳이 노들이었고, 임지가 있었다는 것. 임지는 항상 어땠는지 물어주었고, 일하며 생긴 고민들을 혼자 품고 있지 말고 이야기하라며 일침을 내리기도 했다. 그 덕분에 바로 특수학급 선생님, 부모님과 함께 상담하면서, 손으로 사람을 치는 행위가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크게 깨달았다. 아이도 분명 사회를 배우며 자립해나가는 방법을 알아가야 하는 학생이었다. 그 후부터 아이에게 해도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내 나름대로 알려주며 뉴질랜드로 떠나기 직전까지 함께했다. 같이 지낸 시간이 쌓일수록 느껴졌던 아이의 친근한 손길과 가까워진 거리감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지금도 임지와 나는 종종 서로 알고 있는 이용자들의 안부를 전하고 묻는다. 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본 임지의 단단한 모습이기도 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임지영의 근로지원인으로 함께하고 있다. 주짓수 도장에서 만난 인연이 이렇게까지 흘러올 줄 그 누가 알았단 말인가! 임지는 여전히 그녀가 몸담고 있는 장애인 단체의 사회적 이슈들을 알리며 안과 밖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신기하다. 우리 대화의 주된 화제는 대개 화가 나고 슬프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들이지만, 분노로만 끝을 맺지는 않는다. 그런 문제들을 열심히 이야기하며 공유하는 것이 결국은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는 믿음이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나눠 먹으며 자라온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결국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필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영이는 이 세계에 벽을 느낄 새 없이 문을 활짝 열고 맞이해 준 다정한 존재다. 이런 좋은 인연을 만난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만 알기는 아쉬운 그녀와 그녀의 세상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은 이 마음이 하나의 결과물을 내었으면 하는 계획이 있는데 잘 되기를! 그녀에 대한 예찬론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좀 부끄럽지만, 사랑한다 임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냐~
노들에 계신 모든 분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