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_노들장애인야학 개교 30주년
이상하고 수상한 몸들에 해방을!
지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배우고 투쟁하며, 투쟁하고 배우며 삽니다. 종종 혼잣말을 하고 집회 현장에서 아는 얼굴을 만날 때가 제일 반갑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아래 행성인)의 주요 활동원칙은 실천과 연대입니다. 이 가치들, 특히 연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체가 노들장애인야학입니다. 제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행성인은 노들야학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2019년에 육우당 추모문화제를 준비할 때였습니다. 활동을 시작한 이후 추모제 준비는 처음이었는데요. 회의에서 누군가 노들에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어리둥절했어요. 공동주최를 어느 단위와 해보자는 것도 아니고 너무 자연스럽게 노들이란 단체 이름이 나왔으니까요. 그렇게 2015년부터 ‘이상한 연대문화제’를 통해 추모와 저항의 장을 함께 열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2019년 고 육우당 16주기 추모행동 ‘이상한 연대문화제’에서: 야외 무대를 꽉 채운 사람들이 투쟁을 외치듯 힘차게 팔뚝을 들고 있다. 노들야학, 성소수자부모모임, 행성인, 장애여성 공감, 전장연의 깃발이 보인다.
2004년부터 행성인은 ‘420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 행진에 참여하고 있고 노들야학 동지들을 퀴어 문화축제에서 만나는 일도 이젠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아직도 작년 퀴어퍼레이드에서 경찰에 막힌 길을 휠체어로 뚫어주던 동지들의 시원한 움직임과 언젠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반동성애 세력에 함께 싸웠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또 고 송국현 동지의 5주기 추모제 때 광화문 역사 아래서 같이 노래를 불렀던 일도 떠오릅니다. 올해는 ‘퀴어한 몸들의 수상한 행진’이란 이름으로 공동행진단을 꾸려 퍼레이드 차량을 운영하기도 했지요. 그렇게 교차하며 긴 시간 함께 깃발을 휘날렸고 서로의 구호를 ‘우리’의 구호로 같이 외쳤습니다. 투쟁현장에서 함께한 시간들은 조금씩 곁을 내며 서로의 공간에도 닿기 시작했습니다. 행성인의 활동회원이 노들야학에서 일하기도 하고, 행성인 사무실로 장애인도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고 들었다는 문의 전화가 걸려 오기도 합니다. 세상 낯선 존재인 이들이 서로를 알아봅니다. 그렇게 우리의 세계는 조금씩 더 넓어집니다.
요새 행성인은 사무실 이사를 위해 공간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행성인이 찾는 공간의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곳과 성중립화장실이 가능한 곳을 주요 조건으로 찾고 있어요.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공간을 찾아다닐수록 여전히 이 사회에 배제된 이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확인하게 됩니다. 계단에 막힌 출입구 앞에서 “악랄하게 싸워서 잊히지 않겠다”고 외치던 박경석 대표의 말을 떠올립니다. 행성인이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공간을 오랫동안 고집해 온 까닭도 잊힌 존재로서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소수자와 장애인은 참 닮았습니다.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냈고 세상의 차별과 편견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죠. 막상 세상으로 나오면 누구보다 투사가 된다는 것도 꼭 닮았어요.
2023년 서울퀴어문화축제 ‘퀴어한 몸들의 수상한 연대 행진’에서: 트럭을 따라 오는 긴 행렬을 향해 트럭 위의 세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다.
2년 전쯤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앞에 계신 분이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 하시는 말에 동지들을 떠올렸었습니다. 이 좋은 세상 그냥 만들어진 것 아니고, 대통령이 만든 것도 아니고, 바닥을 기고 쇠사슬로 몸을 묶어 싸운 이들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이 지금도 싸우고 있다고. 그러니 앞으로 세상은 얼마나 더 좋아지겠냐고 말이죠.
30년 전 정립회관에서부터 노들야학이 내어 온 길은 분명 세상을 더 좋게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벽처럼 선 시멘트를 부숴내고 다양한 몸들이 한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감사를 받아도 모자랄 텐데, 그 말을 들은 지 2년이 지난 지금 동지들은 더 많은 욕을 먹고 있네요.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동지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 걱정도 됩니다. 같이 욕을 먹겠다, 다짐도 해봅니다. 언젠가는 욕 대신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할 텐데, 아니 감사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우리 힘으로 만든 세상에서 이상하고 수상한 몸들이 더욱 활개 치며 다니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그렇게 될 것이라 믿어요. 우리의 투쟁이 그 길을 향해 있으니까요. 먼저 싸워온 동지들, 앞으로도 이 길 위에서 함께 할 날들 고대할게요. 투쟁! 그리고 노들장애인야학의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