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투쟁을 다녀오며
황인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
아침 일찍 광주에 가기 위해 우리들은 리프트가 장착된 버스에 올랐다. 내일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3주년이 되는 날이다. 수없이 외치고 외쳤던 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민주화운동의 발상지인 광주에서 외치기 위해 찾아간다. 4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긴 이동 시간이지만, 창밖을 바라보는 재미로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고속버스에는 아직까지 저상버스가 도입되지 않아서, 이런 기회가 아니면 버스에서 교외의 풍경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화창한 봄 날씨 속에 한참을 달려 광주송정역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수많은 경찰 병력들과 경찰버스가 우리를 맞이했다. 경찰들을 보니 살짝 긴장감이 들었지만, 우리 대오가 조금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광주송정역 지하로 이동했다. 역사 지하로 내려오니 역무원들이 지하철 승강장까지 가는 길과 엘리베이터 위치를 알려주고 엘리베이터 버튼까지 눌러주면서 우리 일행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어렵지 않게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벌써 전국에서 모인 동지들이 자리를 잡고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자리를 잡고 무리에 합류했다.
그렇게 기자회견이 끝나고 우리의 요구가 담긴 피켓을 걸고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했다. 서울에서 자주 참여했기 때문에 방법과 분위기에는 익숙했지만, 광주에서는 서울에서 하는 것과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오후 3시쯤이라 한적한 시간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광주시민들의 반응은 너무나 조용했고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듯 보였다. 물론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이도 딱 한 명 있었지만, 그 분을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인상을 구기거나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광주송정역 역무원들이 베푼 친절과 지하철에서 보여준 광주시민들의 반응으로 인해, 광주라는 도시에는 내게 좋은 인상으로 남겨질 것 같다. 그렇게 진행된 지하철 선전전은 별 탈 없이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선전전을 마친 후 우리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고, 우리의 요구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도로 행진을 금남로까지 진행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요구하는 장애인의 권리는 그저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면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그런 권리를 외치는 우리와, 43년 전 5월 총으로 무장한 신군부 세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시민들은 어쩌면 같은 처지가 아닐까? 물론 과장된 생각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과거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싸워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의 투쟁을 통해 장애인들의 권리가 확보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