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짜증
정우영
꼰대로 비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이가 좀 있다고 전방위로 살뜰히 챙겨주는 허** 사무국장의 비호(?) 아래, 까칠한 권**의 눈총을 받으며 어설프게나마 사단법인 노란들판의 회계·총무 업무를 보고 있다.
2002년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최옥란과 정태수. 이 두 친구(나이로 따지면 후배라 칭할 수도 있으나, 친구란 표현을 선호한다)를 지난 7월 열사추모극 「난, 태수야」를 통해 다시 만났다. 그런데 이 친구들을 추모하는 건, 그리고 이들에 대한 오랜 기억을 되돌리는 일은 개인적으로는 무척 힘이 든다. 그해 6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친동생에 대한 아픈 기억이 함께 꿈틀거려서다. 2002 한일월드컵 예선전이 중계되던 벽제화장터에서 동생은 자신의 부재를 각인시켰다. 지난해는 누나의 시에서 동생의 부존재를 마주하고 더 이상 시집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88장애자올림픽 개최 반대, 장애인 의무고용제 법제화 요구 집회, 정립회관 민주화 농성장 등 주로 투쟁 현장에서 간간이 마주했던 최옥란, 정태수 열사. 이들이 살다 간 시기는 다들 알다시피 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을 통한 생존권 확보와 시설 비리 척결이 장애인 운동의 주된 과제였다.
특히 최옥란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삶과 생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것임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착취당하는 불리한 입장을 감수하더라도 노동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봉쇄된 삶, 그것은 누군가의 알량한 경제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기생적인 생존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노동력을 의지에 따라 실현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기대할 수 없었던 암울했했던 시기에, 배운 것 없는 많은 장애인들이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굴욕적으로 삶을 부여잡기도 했다. 최옥란과 정태수는 바로 이렇게 극명한 사회적 모순의 한가운데에서 열심히 살고 투쟁했던 친구들이다.
그들이 떠난 21세기. 최옥란, 정태수 등 수많은 열사들의 삶과 투쟁을 토양으로 우리는 20년 넘게 여전히 싸우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일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사육장에 다름 아닌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여의도에서, 삼각지에서, 이른 아침 지하철역에서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보장하라며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렬과 오세훈은 무엇이 두려운지 우리를 적대시하고 심지어는 장애인단체 간 반목을 조장하고 있다. 장애인 문제를 서푼 어치의 신파로 모는 유사 인지상정의 감정조차 기대할 수 없는 윤석렬과 오세훈은 노골적으로 장애인을 탄압하고 또 다시 수용시설로 내모는 한편, 중증장애인을 기생적 소비계층의 굴레에 가두고자 한다. 이들의 작태는 민주사회에서 결코 지지받을 수 없는,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반동이라 할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이런 전면적인 반동성은 유례가 없다.
이 땅의 장애인들은 반민주적이고 퇴행적인 반동 카르텔인 윤석렬 정권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끔찍하고 적대적인 반동성은 평등한 삶의 공동체적 실현을 향한 당위적인 전의의 표출을 앞질러, 감정적인 영역에서조차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있다. 무책임, 무지함과 함께 무능함마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련의 사태들을 마주하며,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 육두문자가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