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사랑하는 나의 노들극장을 소개합니다
임미경
‘씨앗’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노들장애인야학 상근활동가이고, 노들야학 연극반 ‘노들극장’ 교사이며, 장애인권강의 담당자이고, 노들음악대 매니저이기도 하다.
2022년에 목요일 3, 4교시 특활반으로 시작한 ‘노들 목요극장-나를 세상에 외치다’는 올해 월요일 1, 2교시로 시간대를 옮기고 구성원도 두 배로 늘어나면서 매번 뜨겁고 즐겁게 만나고 있습니다. 노들극장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와 만나는 시간이자 장소입니다. ‘플레이백 씨어터’라는 장르를 표방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이야기’에 있습니다.
몇 살 때였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과거 어느 시설에서의 한 장면, 며칠 전 집에서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늘 꿈에서 만나는 가족의 이야기, 아무도 몰래 마음속에 품어왔던 은밀한 꿈 이야기.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때로 동화책이 되기도 하고, TV 드라마가 되기도 하고, 오늘 아침에 만난 풍경이 되기도 하고,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되기도 합니다.
월요일 오후 5시가 되면 한 주 동안 있었던 이야기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여, 가벼운 동작들을 따라하며 몸을 풀고 사물과 감정들을 동작과 소리로 나타내는 연극 놀이를 하면서, 우리는 나를 표현하고 세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연극 놀이는 두 사람씩 짝을 짓거나 또는 그룹으로, 어느 때는 혼자서 음악을 느끼며 춤―그냥 몸부림이라 해도 좋을 자유로운 몸짓―을 추는 것입니다. 때로는 ‘신체 어딘가를 접촉한 채로 움직이세요’, ‘두 눈을 마주보며 그 시선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여기가 드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의 갑판 위라 상상하고 교실의 빈 공간을 메꾸면서 움직이세요’와 같은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 주어지기도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각자 음악을 느끼는 대로 계속 움직이는 것입니다. 음악을 느낀다는 것은 가사여도 좋고, 멜로디를 따라가도 좋고, 박자만을 쫓아도 좋고, 그냥 그 무엇이든 내 안으로 들어오고 느껴지는 모든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움직임에 대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연극 놀이는 거울 놀이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시집 제목처럼, 세상에 다시없을 소중한 존재로 찬찬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를 들여다보는 내가, 어느덧 내 안의 나를 보는 네가 되어 1초의 시차도 없이 똑같이 움직이는 순간의 희열. 나를 비우고 채우며 제안과 수용의 경험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기존의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을 즉흥적으로 모두가 같이 드러내어 보이는 훈련을 통해, 서로를 한 번 더 찬찬히 바라보고 한 번 더 귀 기울여 들어보려고 합니다.
두 번째 학기가 되면서 요즘은 동작과 소리 위주의 훈련에서 조금씩 대사도 시도하고 호흡이 긴 장면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감정이든 사물이든 어떤 것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서툴고 두려울 때도 있지만, 우리 노들극장의 배우들은 기꺼이 도전하고 즐거이 함께 오늘도 연극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소리 내어 말할 이야기로 가득 빛나는 배우들이니까요.
※ 플레이백 씨어터(Playback Theater)란?
플레이백 씨어터는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들과 악사가 즉석에서 몸짓과 음악으로, 곧 연극으로 펼쳐 보이는 즉흥극입니다. 이야기를 제공한 당사자에게는 물론 모든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과 치유의 순간을 선사하며, 공연 현장의 모든 이들을 유대와 공동체의 장으로 이끌어 줍니다. 사람들은 모두 고유한 역사와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플레이백 씨어터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곧 예술의 주제이며, 평범한 삶의 이야기야말로 예술적으로 대우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플레이백 씨어터를 시작한 조나단 폭스의 말로 소개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저는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연극을 믿습니다. 저는 어디에서든 펼쳐질 수 있는 연극을 믿습니다. 저는 누구든, 모든 이를 위한 연극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