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_2023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서로의 자부심이 되도록!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창립대회
연윤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간사이자 회원들의 수줍은 팬. 탈시설연대 회원들과 더 자주 많이 얽히고 싶다.
안녕하세요, 새싹 조직 탈시설연대입니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아래 탈시설연대)는 진보적 장애인운동계의 샛별이다. 전국 단위의 장애인단체 중 가장 신생 조직이다. 탈시설연대는 바로 작년, 2022년 420투쟁의 현장에서 출범식을 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양대 법안의 제정을 촉구하는 여의도 컨테이너 농성장 2층 무대에서 함께 모인 동지들 앞에 출범을 선언했다.
‘마로니에 8인’ 중 한 명인 김진수 동지와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 박경인 동지가 공동준비위원장으로 처음 선을 보였다. 탈시설 당사자로서 두 위원장은 단 한 사람도 시설에 남겨두지 않도록 투쟁하겠다고 동지들 앞에 출사표를 던졌다. 탈시설연대는 탈시설을 경험한 장애인 당사자만이 정회원이 될 수 있다. 탈시설에 연대하는 누구나 준회원으로 함께할 수 있지만, 오직 탈시설 당사자만이 임원으로 추대된다.
나는 작년 2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정책실에서 장판 활동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청소년에게도 집이 필요하다는 청소년 주거권 운동을 했다. 원가정에서 살아가길 원치 않거나 그럴 수 없는 청소년에게 국가가 대안이라고 제시하는 방안은 쉼터나 양육시설과 같은 시설뿐이다. 여러 이유로 시설에서 쫓겨나거나 뛰쳐나온 청소년은 거리에서 갖가지 위험을 감수하며 생존해 나간다. 장애인운동이 낯선 내게 가장 친숙하고 관심 있는 주제가 ‘탈시설’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탈시설연대의 간사 역할을 맡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탈시설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 홍길동의 아버지 격이다. 감히 그 이름을 부를 수 없다. 작년 ‘탈시설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사업이 올해는 ‘시설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시범사업’으로 탈바꿈했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누구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보다 재선이 목표가 되어버린 국회의원들은 탈시설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뒤로 숨기 바쁘다.
정치의 부재 속에 장애인을 ‘효율적, 경제적’으로 관리하려는 예산 당국, 사업권을 유지하려는 시설과 종교계, 장애인 가족을 시설에 의탁하는 부모의 목소리만이 과도하게 대표되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정작 탈시설 당사자의 자리는 없다
작년 9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발표한 「탈시설 가이드라인」(Guidelines on deinstitutionalization, including in emergencies)은 시설을 유지하려는 자가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가 탈시설 과정을 주도해야 함을 명시했다. 시설은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없고, 시설 정책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다중적 위반이며, 그 자체로 차별이고 범죄라 천명했다. 소규모 시설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시설을 폐지하고, 시설에 대한 투자를 금지해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했다. 또한 국가는 ‘시설수용 생존자’에게 시설수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를 배·보상해야 한다는 내용 또한 담아냈다.
탈시설연대는 전국적으로 이미 오랫동안 존재했던 탈시설 당사자들의 운동을 모아내는 그릇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모아 세상에 널리 퍼지도록 하고, 적재적소에 당사자의 이야기를 전하는 창구가 되려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이행하고, 시설에 있는 장애인이 모두 지역사회로 나와 함께 살 수 있도록 당사자가 주체로서 힘차게 투쟁해나갈 것이다.
노들 활동가들과의 떨리는 만남
지난 1년간 탈시설연대 간사로서 장애인 한 분 한 분에게 직접 인사드리며 회원으로 가입해주실 것을 제안하고 요청했다. 장애인 동지들은 처음엔 많이 낯선 느낌이셨을 것 같다. ‘이 조직은 대체 무슨 조직이지? 탈시설장애인당인가? 그건 가입했는데 또 어디에 가입하라는 말이지?’ 또 ‘대체 이 사람은 누구지?’라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대체 누가 탈시설하신 분인지도 헷갈리고,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탈시설연대는 무엇이고 앞으로 무얼 할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 어느 자리에서든 누군가가 시설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귀가 쫑긋해졌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접점이 많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노들장애인야학 활동가분들을 먼저 알게 되었다. 한 분 한 분에게 인사드릴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탈시설 당사자가 지닌 삶의 서사는 어마어마한 무게감과 힘이 있기에, 한 분, 두 분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늘어갈 때, 마치 백 명, 이백 명이 늘어나는 것처럼 든든했다. 초반에는 회원 명단을 보고 또 봤다.
공동준비위원장과 회원들은 탈시설 당사자의 목소리가 필요한 곳엔 언제든 ‘짠!’하고 등장했다. 탈시설 시범사업의 미흡함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할 때,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 정치인이나 종교계 혹은 거주시설 이용자 부모들이 탈시설 권리를 왜곡하고 부정할 때, 또 각종 토론회와 행사에서 탈시설 정책의 필요성을 논할 때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냈다.
최근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지난 4월 26일, 서울시 탈시설 장애인 전수조사표에 관한 기자회견이다. 올해 2월 서울시에서 난데없이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갑자기 탈시설 사업의 성과를 평가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그 조사항목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에 대해 이수미 회원님이 발언하셨다. 노들야학과 노들센터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오셨지만, 그 자리에서는 탈시설연대 회원이라고 본인을 소개하셨다. 누구도 주의 깊게 듣지 않았을 수 있지만 간사로서 감동을 만끽했다. 어떤 대목에서는 살짝 떨리는 호흡으로 숨을 고르시고, 또 어떤 대목에서는 아주 강하고 단호하게 조사의 문제점을 짚으시는데,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찌릿찌릿 가슴을 울렸다.
서울시 탈시설 장애인 전수조사표에 관한 입장표명 기자회견
이수미 회원 발언문(2023. 4. 26.)
안녕하십니까?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회원 이수미입니다. 투쟁! 저는 집안에서 41년, 시설에서 15년을 살았습니다. 지역사회 안에 장애인 서비스 지원체계가 되어 있었다면 결코 장애인 시설에도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전수조사표를 보았습니다. 22페이지에 달하는 전수조사에 응해야 하는 겁니까?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탈시설 장애인들을 왜 불안하게 하는 겁니까? 전수조사표를 보니까 향후 시설 환경이 개선된다면(예: 1인실 사용, 특화서비스 제공 등이 된다면) 다시 들어가실 생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감옥에도 독방이 있고 다수가 사는 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곳에 들어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 있는 비장애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런 감옥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시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장애인도 그런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1인실을 준다고 한다면 1인실을 장애인에게 다 줄 겁니까? 특화서비스가 무엇입니까? 그것도 궁금합니다. 그것을 지역사회에 있는 장애인들에게 돌리면 안 됩니까? 장애인들은 시설에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시설에 들어갈 때도 죽고 싶은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또 10항에는 ‘시설 재입소를 원할 경우 이유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여기서 재입소에 대해 묻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몇 가지의 설문조사가 있습니다. 한 가지씩 답하겠습니다.
‘지역사회에 살다 보니 시설보다 더 불편해서?’ 더 좋습니다. 지역사회에 살기가 시설보다 좋습니다. 먹고 싶은 거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가고 싶은 데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날 수 있습니다. 외딴 시설에서 갇혀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혼자 사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하고 사는 것이 좋아서?’ 혼자 살고 싶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지역사회 안에서는 내가 원할 때 전화도 할 수 있고,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또 싫으면 안 만날 수도 있습니다. 시설 안에서는 그런 자유가 없습니다. 시설 안에서는 싫어도 같이 살아야 하고, 같은 방에 있어야 하고,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도 같은 방 안에서 싸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곳이 좋습니까? ‘나를 돌봐줄 가족이나 도와줄 사람이 없거나 부족해서?’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면 서울시가, 국가가 지원체계로 활동지원 시간을 확보해주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 서비스 체계는 마련해주지 않으면서 왜 장애인에게 이런 것을 묻는 것입니까? ‘나에게 맞는 서비스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지금 서비스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가, 나라가, 정부가 예산이 부족하다고 서비스 시간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활보시간을 더 주시죠. ‘혼자 뭐든 해결해나갈 것이 힘들어서?’ 장애인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비장애인도 혼자 살아가는데 왜 장애인이라고 혼자 못 살아갑니까? 저를 지지하는 동료도 있고, 제가 고민되면 활동지원사나 동료상담가도 있습니다. 우리를 지지하는 세 지지망이 있습니다. 혼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탈시설 장애인에게 이 전수조사표는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차별입니다. 장애인들을 차별하지 마십시오. 배제하지 마십시오. 지역사회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장애인들에게 권리를!
이외에도 수많은 회원분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탈시설을 배워가고 있다. 앞으로도 회원들과 함께 어떤 이유로든 이 사회에서 격리된 채 시설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는 없음을 이 지독한 시설사회에 똑똑히 알려주고 싶다.
2022년 5월 '장애인탈시설지원법 및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촉구를 위한 탈시설 당사자 편지 국회 전시회'에 전시된 조상지 회원님의 편지 인두 작품
드디어 그날이 왔다-탈시설연대 창립대회!
이토록 자랑스러운 동지들에게 탈시설연대 또한 그들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창립대회를 열심히 준비했다.
가장 먼저 행진 깃발을 만들기 위해 로고 제작에 돌입했다. 프랑스에서 온 연대자 박채달 님께 그림을 부탁드렸다. 프랑스에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예술가인데 장애인언론 〈비마이너〉를 통해 전장연의 투쟁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 들어오는 일정을 일부러 맞추어 지하철 선전전에 참여했다.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에 직접 찾아가진 못했지만 SNS로 본 채달 님의 작품은 따뜻하고 편안했다. 채달 님이 프랑스로 귀국하신 후에 연락을 드렸고 막연히 떠올렸던 이미지를 말씀드렸다. 탈시설하면 하늘색, 자유로운 새와 하늘, 자연 풍경이 떠오른다고. 마침 한국에 오기 전 새에 꽂혀서 새를 그리고 계셨다면서 사진 몇 장을 보내주셨다.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게 담겨있어서 깜짝 놀랐다. 채달 님은 그렇게 산, 강, 하늘과 구름, 해가 담긴 탈시설연대만을 위한 새를 그려주셨다. 피플퍼스트성북센터 남태준 활동가가 써주신 글씨가 더해져 로고가 완성되었다.
창립대회 식순은 연간 투쟁 일정 중 가장 큰 420투쟁 본대회처럼 각 정당 대표들의 축사를 조직했다. 직접 「탈시설 가이드라인」 제작에 참여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 유럽과 미국에서 탈시설 운동을 해나가고 있는 글로벌 탈시설연대 활동가의 축하 인사도 받았다. 외국인보호소 폐지 운동, 청소년 주거권 운동처럼 다른 영역에서 탈시설 운동을 추동하고 있는 단체와 여러 인권운동 단체, 노동계의 발언도 조직했다. 무엇보다 탈시설 당사자들이 각종 공연과 발언, 퍼포먼스로 자리를 빛냈다.
창립대회를 통해 온 세상에 탈시설연대의 존재를 드러내고, 탈시설 의제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원들이 탈시설연대를 자랑스럽게 느끼고 많은 이들에게 축하받는 자리가 되기를 바랐다. 자신의 삶을 던져 탈시설하신 회원들, 십수 년 넘게 당사자분들과 탈시설 운동을 꾸려온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장에 참석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에 따르면 탈시설 당사자로만 구성된 조직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세계 최초라고 한다. 앞으로도 서로가 뻐근하게 자랑스러워지는 자리들을 많이 지어가고 싶다. 올해는 인천지부를 시작으로 대구, 경기, 서울 지역의 지부 출범식과 더불어 각종 이야기대회, 증언대회를 추동해보려 한다. 회원분들과 좀 더 자주 만나고 좀 더 크게 목소리를 모아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날이 오면
언젠가 ‘그날’이 온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존재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여겨지는 그날이 반드시 올 거라 믿는다. 강한 낙관에 기반한 말이지만, 이미 수십 년을 시설에서 살아왔고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겨 시설에 계신 분들께는 가혹한 말임을 안다. 전장연 임소연 사무총장은 창립대회를 마친 밤, 먼저 떠나간 동지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길 수 있도록 함께 힘차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날에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는 누구보다 빛나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웃어 보일 것이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창립대회
박경인 공동준비위원장 발언문(2023. 4. 13.)
안녕하세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창립대회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면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인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지도 않는데 23년간 대규모 시설과 소규모 시설에서 살아왔습니다. 이리저리 시설을 옮겨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무도 저의 생각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24살에 그룹홈을 나와 자립했습니다. 그룹홈에서는 자립을 반대해서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걸 저 혼자 준비해서 나왔습니다. 서울시가 그룹홈을 시설로 보지 않아 정착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탈시설을 했을 때 너무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자립만 하면 모든 게 다 잘될 줄 알았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쉽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마음만으로 모든 게 다 잘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혼자서 내가 모든 걸 다 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특히 내가 아플 때는 너무 외롭고 무서웠습니다. 사람들을 믿지 못하니까 친구들이 있어도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자신 있게 시설을 나오겠다고 해놓고서는 막상 나와서 잘 살지 못하니까,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용기를 잃은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친구도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니까 어느 정도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났습니다. 내 방도 있고, 일도 있고, 활동지원도 받고, 내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가 채워지니까 덜 무섭습니다. 아직도 천둥번개 치는 밤은 무섭지만, 예전보다는 덜 무서워요. 그 밤이 죽고 싶을 만큼 무섭지는 않아요.
사람이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됐기 때문에, 저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외롭게 혼자 고통받고 있을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시설 밖을 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또 시설에서 나와 자립했지만 여전히 혼자라고 느끼는 장애인들에게 다시 시설로 돌아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오래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그 활동을 통해 나도 힘을 받고 싶어서입니다. 내 삶의 마지막을 시설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시설을 나와 자립한 장애인 여러분, 그리고 지금 시설 안에서 살아가는 장애인 여러분, 그리고 우리의 투쟁에 함께하고 있는 모든 시민 여러분, 우리 함께 목소리를 높여 탈시설을 외칩시다.
앞으로는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나처럼 힘들게 시설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탈시설 로드맵이 잘되어서 좀 더 안전하고 덜 힘들게 지역사회로 나와서 함께 자유롭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물론 지역사회로 나오면 힘든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자유가 있는 삶을 선택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합니다.
더욱 많은 이들이 지역사회에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같이 알아갑시다. 우리들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앞장서서 우리의 권리를 외칩시다. 국가는 우리가 시설에서 살 수밖에 없도록 우리의 삶을 정해버린 것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해야 합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국가는 지원주택과 임대주택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습니다. 장애인이라고 무시 받지 않고 가난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내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함께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폭력이 일어나지 않고 함께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는 사람의 권리를 비용의 문제로만 이야기하는 사회의 시선에 맞서 싸우겠습니다. 장애인도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 사회가 깨달을 수 있게, 앞으로 더욱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앞으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의 투쟁에 함께해주세요!
P.S. 『노들바람』의 지면을 빌어 노들에서 활동하시면서 탈시설연대 회원으로 함께해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투쟁!